글 : 오신정란(청주여성의전화 대표)

 

소리 내어 읽는다. 둘이서 혹은 셋이서.

줌으로 연결해 핸드폰 화면을 통해서 목소리를 들으며 눈으로 같이 따라 읽는다.

올해 내가 새로 시작한 일은 줌으로 책 읽기다.

코로나로 모든 대면 활동이 중단되었던 시기였기에, 토요일 오전에 책 읽기 모임이 중단되는 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회의와 교육만 줌으로 할 것이 아니라 책도 줌으로 읽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데 줌으로 책 읽기는 또 다른 신세계였다.

먼저 이동 시간을 절약한 것은 물론이고, 각자의 공간에서 책을 펼쳐서 읽을 수 있다는 점, 곧 자신의 공간 어디서든 집중할 수 있는 곳이면 바로 연결하여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줌으로 처음 읽은 책은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오랜 시간 동안 책장을 장식했던 책, 몇 군데 밑줄이 쳐진 것으로 보아, 그 시절에 읽었을지도 모를 그러나 전혀 내용이 기억나지 않은 책이었다.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270쪽의 분량의 책을 2주 만에 읽었다.

혼자서 읽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사진 뉴시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사진 뉴시스)

책 읽기는 책을 펼쳐 읽기까지 이러저러한 상황에 밀려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일 수였다. 그런데 시간을 정하고 약속한 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 페이지가 자동으로 넘어갔다.

깊이 있는 독서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으나, 미흡한 부분(표시해 두기)을 혼자서 정독하면 되는 것이기에 문제 될 게 없었다.

책을 한 권씩 읽어나가며 완독한 책들이 늘어나자 재미가 붙였다. 독서가 진정 즐거운 일이 되었다.

다음에는 무슨 책을 읽을까. 책장에 꽂아 둔 먼지가 가장 많이 앉아있는 책부터 읽기로 작정했다.

누구와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정하고 그 책에 딱 맞겠다 싶은 사람에게 ‘줌으로 책 읽자’ 제안했다.

다행스럽게도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다만 읽을 시간이 나지 않아 숙제처럼 쌓아둔 채 언젠가 읽어야지 생각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줌 독서 제안은 성공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코로나로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과 만남 자체가 불가했기에. 친구들과도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

단체 카카오 톡으로 특별한 일상을 전하기도 하지만 좀 더 의미 있는 행위를 하고 싶었다. 친구들과 안정적인 시간을 조율하기는 쉽지 않았다.

시간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그나마 가능한 시간이 새벽이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사진 : 뉴시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사진 : 뉴시스)

그런데 새벽은 나에게는 ‘진입 불가의 시간’이다. 새벽 한 두시까지 무한의 자유 시간을 누렸던 습관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결혼하고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밥을 얼마나 챙겨주었는가가 부부싸움의 단골 메뉴였으며, 아이들이 입학하고 등교 시간 전에 일어나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고통스러웠던 기억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로서는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그러나 내가 기댄 곳은 나이 듦이었다. 몇 년 전부터 부쩍 잠이 줄고 새벽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까지 부단한 몸부림이 있었기에, 오지 않는 잠과 싸우기보다는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삶의 투쟁 영역 확장은 타자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익숙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행동으로 가져간다면 자기 확장을 꾀할 수 있기에 그것도 함께 읽을 책동무가 있는데 무엇이 문제 될까 싶었다.

어떤 일을 꾸준히 하며 그 일에 작게라도 성취감을 느낀다면 일상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새벽 줌 독서는 3개월을 지나고 있다. 여전히 알람이 나를 깨운다.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하는 날도 많아 전화 호출을 받은 날도 많지만, 다정한 음성을 책으로 만나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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