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은 필요하다.

글 : 오신정란 (청주여성의전화 대표)

 

 

세상은 남성 전용공간이다.

남자들은 윗옷을 벗어도 가래침을 뱉어도 심지어 돌아서서 소변을 봐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이다.

반면, 집은 여성 전용공간이며, 헌신과 사랑, 자발성을 요구받은 가사 돌봄 노동 일터다.

여성은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다시 출근한다.

산책하거나 운전을 하다 보면 돌아서서 소변을 보는 남성들을 자주 목격한다.

미동이 없이 등이 보이는 남성들은 부르르 몸을 떨며 영역을 표시한다.

세상의 모든 공간에서 자유로운 남성들은 별도의 공간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최근 여성가족부 폐지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나는 노상에서 소변을 자유롭게 보는 남성들의 등이 떠올랐다.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부러우면 그렇게 해’, ‘너희들도 군대가’였다.

공적인 공간 역시 남성들의 차지였다.

그래서인지 여성들이 공개적인 공간에 보이면 낯설다. 대표적인 공간이 국회의사당이며,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의원들은 남성들이다.

정치 공간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전히 국회의 유리천장은 견고하다.

바깥일과 집안일로 구분되는 성 역할 고정관념은 여전히 남성들이 세상을 운영하는 데 유용한 지침서다.

참으로 치밀하고 견고한 신념체계이다.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고, 이제는 묶여있는 것도 아니고, 선거권도 있고, 배울 수도 있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남녀의 기회가 균등한데 여성 차별이 말이 안 된다고 한다.

‘우리 집은 마누라가 왕이고, 딸이 아들보다 공부를 더 잘하고, 좋은 식당과 카페에는 여자들이 득실거리는데 무슨 말이냐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이 기준은 과거의 기준에 한해서다. 한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었던 그 시대에 비하며 여성의 지위 향상은 분명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법과 제도 앞에 평등한가?

임신 출산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리고 일상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여성 노동력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산업 일꾼으로 지위를 인정한다.

여성의 몸은 국가의 필요에 따라 재생산의 도구로 임신 출산을 통제한다.

여성은 바깥일과 집안일, 곧 일ᐧ가정양립을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 한다. 슈퍼우먼은 언제나 여성에게 강요된 현실이다.

얼마 전 내담자로 오셨던 분이 상담을 통해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베란다 한쪽을 막아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거실 생활자였던 남편이 오히려 그 공간을 더 자주 이용하더란다.

긴 시간 여성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소망해 왔다.

그리고 대한민국 여성들의 대표성을 가진 방을 쟁취했다. 무수한 여성운동의 헌신적인 투쟁으로 생긴 방이 ‘여성가족부’ 다.

 

가정폭력, 성폭력, 직장 내 성희롱을 견뎌내면서 응당 그러한 일들은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일에서 그것이 은밀하고도 지속적인 폭력이었음을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젠더 폭력 예방을 위해 우리는 사회는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곳이다.

정치 사회적 환경을 바꾸는 일은 주로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여성주의를 아직도 성별 대립구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여성주의’에서 여성은 성별을 의미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들, 규정하는 자들에 맞서 스스로 주체로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보편의 이름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차별로 인해 고통 받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방이 여성가족부이다.

그런데 그 방을 빼라고 한다.

마치 자신이 집주인 양 행세하며 말이다. 세상의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은 말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확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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