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우리 집 전기를 몰래 쓰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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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우리 집 전기를 몰래 쓰고 있다면?
  • 김다솜 기자
  • 승인 2020.01.03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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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이동통신사 ‘전기 도둑’ 행태 여전하다
© 김다솜 기자
© 김다솜 기자

 

건물 아래층이 소란스러웠다. 건물관리인 임현상 씨(73)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아래층을 내려다봤다. 건물 통신단자함 앞에 설치기사가 보였다. 그가 떠나고 난 자리에는 검은색 기계가 하나 들어서 있었다. 임 씨는 KT통신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KT통신 직원은 여유롭게 응대했다.

“그래봤자 (전기세) 얼마 안 나와요.”

임 씨는 직접 KT통신을 찾아갔다. 직원은 그에게 ‘전기사용협정서’를 내밀었다. 건물 소유자가 전기공급자(이하 갑)로, 주식회사 케이티가 전기사용자(이하 을)로 명시돼있었다.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 을은 갑에게 다음과 같이 약정한 전기료를 후납으로 (월, 분기, 연납) 별 지정된 계좌로 납부한다. 

- 을은 갑에게 본 협정체결 이전 전기사용분에 대하여 월평균 사용량 ___ Kwh을 기준으로 한 다음의 미납요금을 20__년 _월 _일까지 납부한다. 

전기사용협정서를 받아 본 임 씨는 곧바로 따졌다. 

“그동안 내 전기를 몰래 쓰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KT통신 직원은 전기사용분을 계좌로 넣어주겠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연락도 없었다. 나중에 계좌를 확인해보니 한 달 전기 사용료로 2,000원이 입금돼있었다. 여기까지가 임 씨의 기억이다. KT통신 측에서는 “고지를 다 했고, 협약서를 먼저 제안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임 씨는 제 발로 걸어서 KT통신 건물까지 찾아가 협약서를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임 씨가 받아 본 전기사용협정서. 임 씨는 "먼저 항의하기 전까지는 협정서의 존재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 김다솜 기자
임 씨가 받아 본 전기사용협정서. 임 씨는 "먼저 항의하기 전까지는 협정서의 존재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 김다솜 기자

 

“전기세가 천 원이 됐든, 일 원이 됐든 남의 전기를 말없이 쓰는 건 ‘도둑질’ 아닙니까. 그게 괘씸한 거지. 허락도 없이 남의 전기를 쓴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죠. 더군다나 KT가…. 내가 먼저 말 안 했으면 몰랐을 거 아니요?”

임 씨 건물에 설치된 검은색 기계 이름은 스위치. 이걸 하나 달게 되면 인터넷 모뎀 여러 개 역할을 한다. KT통신  입장에서는 하나 설치해두면 추가로 모뎀을 달 필요가 없어지는 장점이 있다. 오주헌 KT새노조 위원장은 “통신 사업자 필요에 의해 설치하는 장비기 때문에 이거에 대한 부대비용은 KT가 부담하는 게 맞다”고 전했다. 

국정감사 단골손님이 된 전기 도둑

이동통신사의 전기 도둑은 흔한 일이다. 국정감사 때마다 이동통신사의 도전(盜電) 행위가 적발된다. 2016년 당시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현 경남도지사)이 받아 낸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전기 도둑 사례는 1만 230건, 피해액은 385억 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충북 지역은 △2011년 116건 △2012년 172건 △2013년 48건 △2014년 62건 △2015년 86건으로 484건의 도전 행위가 적발됐다. 위약금은 6억 7,500만 원 상당이다. 속이는 방식도 다양하다. 인터넷 중계기 설치 시 전기 사용 허가를 받지 않거나, 전기 설비를 개조하거나 조작해 사용량을 속여 왔다.

안전도 우려된다. 무단으로 전기를 끌어 쓰는 과정에서 화재나 감전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는 통신사들이 전봇대에서 무단으로 전기를 끌여 다 쓴 사실이 적발됐다. 2012년부터 2017년 7월까지 전봇대 전기 무단 사용 적발 건수는 총 27만 8,131기에 달했다. 지난해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에서 발생한 전신주 추락사고도 허가 없이 작업하다 벌어진 사고였다. 

임 씨가 통신단자함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임 씨는 "이런 사례가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제보했다"고 전했다. © 김다솜 기자
임 씨가 통신단자함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임 씨는 "이런 사례가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제보했다"고 전했다. © 김다솜 기자

 

이통사가 전기 훔쳐도 한전은 ‘뒷짐’ 

임 씨의 사례처럼 이동통신사가 자신의 전력을 무단 사용하는 걸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오주현 KT 새노조 위원장은 “초창기에는 인터넷 유무에 따라 아파트 분양가가 결정될 정도로 인터넷 공급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며 “몇 년 뒤부터 이 사실이 문제가 되면서 전기협약을 맺고 사용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으나 다세대주택은 여전히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도전 행위를 사전에 감시할 수 있는 기구가 없다는 점이다. 소유주가 직접 도전 행위를 확인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한국전력공사에서도 사후 대책만 제시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충북지부 요금관리부 최건규 씨는 “사전에 점검하는 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도전 행위가 접수되면 현장으로 나가 진위를 살펴본다”며 “이후 도전 행위가 확인되면 일반 전기세 3배에 달하는 위약금을 청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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