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인문학을 총점검하는 <싸우는 인문학>

김수정
성공회대 NGO 대학원 실천여성학과 재학

전국적으로 인문학 열풍이 드세다. 관 주도의 인문학아카데미도 성황이고 민간단체 주도의 인문학강의도 성황이다. 이 광풍같은 인기의 원인으로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의 바람으로 불어닥친 인간 소외 현상을 겪는 개인들이 인문학으로 치유받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이 책의 대표저자 서동욱은 머리말에서 “우리의 수많은 생각과 욕망이 지나가는 길에 서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을 멈춰 세워 과거의 소크라테스처럼 묻고 싶다. 네가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인가, 너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인문학은 붐을 타고 풍성해지지만, 이미 인문학과는 거리가 먼 처세나 실용 또는 사교 모임의 둥지가 된 것 같은 현실에서 이 책은 정말 인문학이 무엇인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날카롭게 우리에게 질문을 되돌린다.

팔리는 인문학/ 잃어버린 인문학/ 싸우는 인문학/ 가능성의 인문학으로 나뉘어 편집된 이 책은 22명의 저자가 25개의 주제로 융합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문학을 구석구석 파고들어 분석하고 있다. 그 분석은 힐링의 따스함을 내동댕이치며, 인문학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분석한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분야로 포장되어 팔리는 인문학을 조목조목 따지고, 흥행되는 현재 인문학의 시장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준엄하게 꾸짖는다.

그런 연후에 우리가 만나는 인문학은 싸우는 인문학이어야 하며,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는 인문학이어야 하며, 노동과 상생하는 인문학이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제 그 비판의 토대위에서, 말랑말랑한 유희처럼 전유된 이 시대의 인문학이 무엇을 가능케 하는지 모색하게 한다.

25개의 소주제는 짧은 지면에 철학자들의 논점을 정리하느라 철학공부의 밑바탕이 되어있지 않다면 개념정리가 되지 않아 쉽게 읽히지 않는 구석도 있다. 혹은 독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김태환의 “학문 언어로서 독일어는 사라졌는가” 같은 경우는 독일어의 중요성에 대해 논리적 비약이라는 생각이 드는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잡스, 안철수, 프랑스철학, 동양고전, 인문학 교실 붐, 사회과학, 심리학, 과학, 역사소리, 비평, 여성학, 시, 한국영화까지 전방위적으로 살펴 본 주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는 선을 해부하여 보지 못한 이면을 그대로 내 앞에 들여대는 듯해서 당혹스러우면서도 읽는 내내 즐겁다.

▲ 제목: 싸우는 인문학 지은이: 강양구 외 출판사: 반비
인문학은 교양이 아닌 삶을 고찰하는 학문

나는 강양구의 ‘인문학이 노동자의 무기가 될 수 있는가’를 제일 와닿게 읽었다. 대기업의 간부가 인문학에 열광하여 수 백권의 책을 직원들에게 선물한다고 자랑질을 하면서도 정작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정리해고는 자본주의의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한 윤활유예요. 온정주의에 휘둘려서 정리해고를 부정하면 자본주의가 곧바로 멈춰서고 맙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멈춘다.

저자는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함께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신영복이 말하는 ‘관계론’은 이런 냉혹한 인식의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가? 톨스토이를 따라 “바둥바둥 살아도 결국 땅 한 평에 묻힐 인간의 숙명”을 얘기하면서, 한국 사람의 더불어 사는 지혜 없음을 탓했던 인문주의자는 그 순간 어디로 간 것일까?( 216p)라고 냉소한다.

지금의 인문학은 교양으로 치장되는 인문학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삶을 고찰하게 하는 그야말로 ‘싸우는 인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동감한다. 같은 의미에서 ‘여성주의’를 앞에 달고 현재 지역에서 행해지는 인문학교실(충북여성발전센터, 생활정치여성연대, YWCA)에 대해 기대를 걸어본다.

여성이 주체적 인간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도록 재해석된 인문학 교실은 지적 토대를 바탕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겪은 억압의 기억과 폭력의 경험 속에서 ‘왜 여성은?’ 이라는 자기 질문에 직면하게 한다. 그 의문 속에서 스스로 공부를 위해 모여드는 자율적 속성은 허세나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주체로서의 여성’을 자각하는 싸우는 인문학의 포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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