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침 따라 ‘안전총괄과’ 신설했으나 방재안전직렬 공무원 ‘無’
중앙정부 변화 맞춰 과 통합·분리 반복, 사고 터지면 대책회의만

여객선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정부의 ‘안전’이 땅에 떨어졌다.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인가를 국민들은 이번에 똑똑히 확인했다. 이름만 ‘안전’으로 바꾸면 되느냐는 국민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국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겠다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이에 따라 전국의 광역지자체도 행정관련 국 이름을 대부분 ‘안전행정국’으로 바꿨다. 이후 지난해 7월 1일에는 일제히 안전총괄과를 신설토록 했다. 안전행정부로부터 ‘안전한사회 구현을 위한 시·도 안전관리조직개편’ 지침이 시달된 것이다.

각 정권마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있다. 이는 곧바로 지방자치단체로 시달되고, 지자체는 조직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조직의 역사만 봐도 각 정권마다 중요시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박 정부 들어 신설된 조직은 안전총괄과와 규제개혁추진단. 충북도와 청주·충주·제천시는 안전총괄과, 나머지 군단위는 안전건설과 혹은 재난안전과를 신설했다. 그리고 박 정부가 규제개혁에 손을 대면서 충주·단양을 제외한 충북도와 나머지 시·군은 규제개혁추진단을 설치했다. 충주·단양은 규제개혁추진 TF팀을 신설했다.

▲ 충북도는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건이 터진 뒤인 4월 21일 수급기관장·주요기관·단체장 대책회의를 열었다.

충북도 안전총괄과의 역할은 안전에 관한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는 것이다. 기존 치수방재과에서 하던 사회재난 업무와 상황실 및 안전예방 기능 일부를 안전총괄과로 이관한 것. 안전총괄과는 안전기획·안전관리·비상대비민방위·안전상황실·민생사법경찰팀 등 5개 팀으로 구성됐다. 주요 업무는 물놀이 안전관리, 동절기 재난관리 추진, 민방위, 원산지 단속, 환경분야 수사, 재난상황실 운영 등.

한 관계자는 “재난은 크게 사회재난과 자연재난으로 나뉘는데 안전총괄과는 사회재난, 기존에 있던 치수방재과는 폭설·홍수·해일·지진 등 자연재난을 담당한다. 긴급한 사회재난이 발생하면 안전총괄과에서 총괄 역할을 하고, 각 해당 과에서 사태수습에 나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각의 재난관리를 담당하는 과가 있어 중복되는 경향이 있다. ‘옥상옥’인 것이다.

하지만 도 공무원들 중에는 아직도 안전총괄과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재난안전 부서를 통합했다 분리했다 여러 번 반복한 동시에 이름을 자주 바꿨기 때문이다. 충북도에 따르면 민선5기 들어 건설방재국 하천과·재난관리과는 곧 균형건설국 치수방재과로 통합됐다. 그러더니 약 3년 후에는 다시 안전행정국 안전총괄과와 균형건설국 치수방재과로 분리했다. 그런데 이런 통합과 분리는 지자체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앙정부 변화에 따라 움직인다. 그것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하는 게 아니라 느닷없이 이뤄져 지자체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하는 일을 되풀이한다.

“안행부, 업무는 가져갔는데 전문지식은 없어”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에는 자연재난과 인적재난은 소방방재청, 국가기반체계재난은 안전행정부에서 맡았다. 그런데 인적재난과 국가기반체계재난을 사회재난이라고 묶어 안전행정부가 가져가고, 자연재난만 소방방재청이 맡도록 했다. 국가기반체계재난은 에너지·정보통신·금융 등 국가기반시설에 관련된 재난을 말한다”며 “안전행정부는 이렇게 중요한 업무를 가져가긴 했는데 전문지식은 없었다. 이 게 문제였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가 터졌으나 재난관리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핵심을 꼬집었다.

▲ '세월호' 희생자 추모 리본
실제 취임한지 얼마 안되는 강병규 안행부장관은 국민들 앞에서 망신을 제대로 당했다. 중앙정부가 이런 식으로 조직을 개편하니 지자체도 당연히 따라가야 한다. 충북도도 안전총괄과는 안전행정부, 치수방재과는 소방방재청의 지시를 받는다. 이 교수는 또 “안전총괄과를 신설했다고 하나 재난을 관리하는 전담 공무원은 없다. 다른 업무를 하면서 재난관리도 함께 하는 식이다. 평상시에는 예방업무를 하고 안전사고가 나면 재난구조에 나서야 하나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2012년 방재안전분야 전담공무원 양성 추진계획을 발표했지만 총액인건비제에 묶여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전국의 안전총괄과에는 방재안전직렬 전문 공무원이 없는 것이다. 충북도 역시 마찬가지다. 충북도는 지난 4월 21일 도지사·교육감·청주지법원장·충북지방경찰청장 등 수급기관장과 안전문화운동추진충북협회장 등 주요기관·단체장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은 시·군 부단체장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큰 사고가 터지자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갈지는 미지수다. 도민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얼마안가 곧 잊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장 후보들, 재난안전분야 정책공약 갖다쓰세요”
희망제작소 재난안전연구소 5대 분야 37개 공약 제안

희망제작소 재난안전연구소(소장 이재은 교수)는 재난분야 싱크탱크다. 이 교수를 비롯한 20여명의 재난안전분야 전문가들이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소는 지자체의 제1 책무가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6·4 지방선거에서 자치단체장 후보들이 지역 특수성을 고려해 적극 활용하라며 재난안전분야 정책공약을 제시했다. 누구든지 이 공약을 가져다 쓰라는 것이다. 여기 제시한 공약은 모두 5대 분야 37개. 이들은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이전부터 준비했는데 마침 이 시기와 겹쳐 시의적절한 제안이 됐다.

연구소는 우선 현 지자체 재난관리 시스템이 중앙정부 지침에 의해 피동적으로 설치됐기 때문에 주민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이제라도 지역실정에 맞는 재난관리 전담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지자체 중심의 재난 및 안전관리 시스템분야에서 광역단체장 위기관리 보좌관 신설·운영, 재난안전 전담부서 지자체장 직속화 설치, 학생·시민대상 안전관리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을 제안했다.

또 재난안전 위기예방·대비전략 분야에서는 재난안전 시민지도자 양성, 유해화학물질 위험 감시를 위한 지역시민환경감시단 운영·지원, 재난안전 산업화를 위한 재난안전산업진흥원 설립 등을 제안했다. 이어 재난안전 위기대응 전략분야에서는 지자체 재난안전 공무원 위기대응 업무 전담화, 위기대응 매뉴얼 작성, 방재안전직렬 공무원 우선 선발 등을 들었다. 그리고 시민중심 재난안전 관리 분야에서는 지자체 재난안전지표 개발, 재난안전실버감시단 운영, 재난피해자를 위한 응급구호 체계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시민생활안전확보 분야에서는 4대악 세부전략 수립, 범죄예방을 위한 지자체 조례 제정 등을 검토해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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