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강씨 집성촌 왕암마을 18여가구 수용
“조상 땅 떠나도 조상 모시는 일 못 떠나”
화계동 왕암마을 사람들 강무구(71)씨는 아버지 때부터 살던 집을 고쳐서 살고 있다. 군대 다녀온 후 외지생활을 10년 정도 하다가 고향집으로 다시 왔다. 화계동 왕암마을에 있는 이 집은 그가 태어난 집이다. 강씨는 이곳에서 4남매를 뒀다.
강씨는 고향에 돌아와 통장을 맡아 일하다가 3년 전 그만뒀다. 첫째 강병학(46)씨는 직장이 쉬는 날 부모님을 보기 위해 고향집에 왔다. “아직 마을은 떠나지 않았지만 많이 서운해 하셔서 와 봤다.”
강무구씨는 이곳에서 5대째 살고 있다. 아버지 대 이전에는 원화계에서 터를 잡고 살았는데 아버지 때 왕암마을로 왔다. 화계동은 원화계, 왕암마을, 새터말로 나뉜다. 청주테크노폴리스 개발로 화계동에서는 왕암마을만 18여 가구가 수용됐다.


“개발된다는 데 반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법이 바뀌어서 보상이 너무 까다롭고 손해보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대처를 못해서 그런 거니까 억울해도 어쩔 수가 있나. 법이 그렇다는 데 약자는 항상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강씨는 집을 떠나기 전 아쉬운 마음에 휴대폰으로라도 사진을 남기려고 했다. 화계동에는 진주강씨 강득룡의 묘와 부인 경주김씨의 충렬각이 세워져 있다. 진주강씨 문중은 강득룡 묘 앞에서 1년에 한번 10월 9일 시향제를 지낸다. 그는 현재 진주강씨 충정공파 회장을 맡고 있다. “봉명동 주택으로 이사를 간다. 이사를 가더라도 시향제를 맡아 치러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올 예정이다.”
화계동은 진주강씨 집성촌이다. 90%가 진주강씨다. “정들었던 사람들이 다 여기에 있다. 새로운 곳에 나가면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가 힘들다. 노인이 대부분인데 많이 아쉽다.” 아내인 변지수(68)씨는 “마을 사람들끼리 계를 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떠나면 자주 얼굴 보기가 힘들다”라고 말했다.
왕암가든은 12년 전 왕암마을에 터를 잡았다. 도시에서는 가게를 구하지 못해 왕암마을 시골집을 헐고 식당을 냈다. 정용준 씨는 “외곽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모른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시골스러운 맛을 내 인기가 좋았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됐는데 2007년 LG화학이 일부 이사를 가면서 타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왕암가든이 소개해서 왕암마을에 온 공장만 6곳이라고 자랑했다. 왕암가든은 이번에 수용된다.
왕암마을 일부분은 4차선도로와 인접해 있다. 그러다보니 앞으로의 개발가능성을 보고 땅을 산 이도 있다. 이른바 외지인이지만 이들도 이곳에서 농사짓고 10여년을 보냈다. 백기춘(66)씨는 갈지 못한 밭을 호미로 파고 강낭콩을 심고 있었다. 그는 1998년 도로에 인접한 땅 350평을 샀다. 이곳에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고 사는 것이 노후대책이었다. 하이닉스에서 30여년 간 일했던 그는 하이닉스 정문 앞을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보상을 평당 8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마을 안쪽 땅보다 겨우 10여 만원 높게 받았을 뿐이다. 백씨는 “이 돈을 받고 어떻게 4차선 도로에 인접한 땅을 다시 살 수 있겠는가. 왜 80만원을 받았는지 최소한 청주시는 설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의신청을 했는데 다시 재결신청하라는 통보만 받았다. 왜 가격이 그렇게 나왔냐고 따져 물어도 서로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개발제한구역이 풀려서 땅을 샀지만 15년 동안 건축허가도 형질변경도 되지 않아 집을 짓지 못했다. 또 테크노폴리스가 개발된다고 7년 전부터 얘기가 나와서 어떻게 하지도 못했다. 텃밭만 가꾸고 있다. 수년동안 시에서 허가를 안 내줬는데, 최근에 보니 벌써 공업용지로 형질변경까지 다 돼 있더라. 아무런 설명도 받지 못한 채 국가에 자기 땅을 헐값에 내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벽부터 나와 강낭콩을 심고 있다는 그는 계속해서 땅을 팠다.
청주테크노폴리스, 청주시 지도가 바뀐다
서청주 IC이전, 북청주역 신설 계획도 나와
청주문화재단, 사라지는 동네 기록집 발간
청주테크노폴리스는 2017년까지 청주시 외북동, 송절동 인원 152만7천575㎡를 도심형 첨단복합산업단지로 개발한다. 지난달 18일 기공식이 열렸다. 청주시와 산업은행, 대우건설, 신영 등 8곳이 주주사로 참여한 ㈜청주테크노폴리스는 현재 85%의 토지 보상률을 보이고 있다.
협의 보상이 완료되지 않은 토지는 수용재결 절차를 밟게 된다. 부지 곳곳에는 노란 깃발과 빨간 깃발이 꽂혀져 있다. 노란 깃발은 문화재 시․발굴 조사 작업 깃발이고, 빨간 깃발은 실제 수용되는 땅을 표시하는 것이다.
테크노폴리스에는 20여개의 기업, 3300여 가구의 아파트, 상업시설·학교·관공서 등이 들어선다. 이미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공동주택 용지(3개 블록)분양에 307개사가 신청해 블록별로 평균 10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저렴한 공급가가 메리트로 작용하고 있다.
통합 청주시의 지도를 보면 테크노폴리스가 ‘센터’가 된다. 청주시는 서청주 IC이전 용역을 벌이고 있는 데 내곡동과 상신동이 입지로 꼽히고 있다. 테크노폴리스에서 오창산단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2015년 준공되고, 2016년말 완공을 목표로 3차 우회도로도 현재 시공 중이다. 문암동 인근에 북청주역 신설도 거론되고 있다.
7년여 동안 지지부진했던 이 사업은 PF자금 3500억원을 대출받게 되면서 탄력을 받게 됐지만 청주시내 남아있는 마지막 농촌이라고 할 수 있는 강서2동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청주시문화재단은 강서2동 외북·화계·송절 마을의 발자취를 담은 책을 오는 6월께 출간할 예정이다. 마을 토박이 어르신 12명이 들려주는 생생한 옛이야기와 사진을 기록으로 담는다. 이를 위해 재단은 ㈜청주테크노폴리스와 함께 역사와 민속, 한국고전 등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을 꾸렸다. 이병수 문화재단 문화예술부차장은 “1970년부터 꾸려진 마을의 변천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주민들의 육성을 통해 시대별로 기록한다. 철도, 신작로, 시내버스, 서부산업단지, 대농 등 동네를 둘러싼 마을 안팎의 이야기를 담는다”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