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사내의 꿈’…주형민 노무사

마흔살의 사내는 새로운 꿈을 꾼다. 틀에 박힌 일상을 벗어나 좀 더 다이나믹하게 살고 싶다. 꾸역꾸역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노동자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를 위한 노무사가 되기로 했다.

주형민(40)씨는 말수가 적다. 필요한 말 외에는 농담을 하지 않을 것만 같다. 살면서 왜 3번의 직업을 택하고 바꾸었는지 담담하게 설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 3년 넘게 일했다. 경영을 전공했지만 했던 일은 주로 기계를 뜯고 조립하는 엔지니어의 일이었다. 조직의 기계 부속품 같은 느낌,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대로 사는 것 같았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첫 직장을 3년 넘게 다닌 뒤 사표를 냈다. “이후 막연히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알아봤다. 그런데 갑자기 집안 사정이 나빠져서 고시원 생활을 해야만 했다. 3년 가까운 시간을 방황도, 고민도 많이 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기 위해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고 2007년 말에 서울지방병무청에 임용돼 지난해 11월까지 일했다.”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그는 책을 많이 봤다고 했다. 책을 보면서 ‘노동’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었고, 데이빗소로우의 ‘월든’,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으면서 인생에 대해 성찰했다.

주씨는 9급 공무원이 되면서부터는 예비군을 담당했다. 산업기능위원, 전문기능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대체 근무자들에 대한 일종의 감시도 하고 점검도 하는 게 주 업무였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설 무렵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단이라서 무언가 일을 기획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내 신분이 국가공무원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안전행정부에서 공무원들은 집회에 나가지 말라는 공문이 계속해서 내려왔다. 조직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를 받는 기분이었다. 집회에 나가도 싶어도 단속이 될까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주씨는 틈틈이 노무사 공부를 시작했다. “딱히 특별한 계기라는 건 없다. 없는 계기를 만들수도 없고.(웃음).” 인터넷을 우연히 서치하다가 노무사 직업에 대해 알게 됐다고. “사실 학생운동, 정당생활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꾸준히 읽어오기는 했다. 노동에 관련한 일을 하겠다고 하니 사람들이 먼저 정체성에 대해 묻더라.”

노동에 관련한 문제는 어쩌면 우리들의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씨는 “직업적, 일상적인 삶에서 노동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또 삶으로 구현하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있지 않나. 아침에 눈뜨면 회사를 가기 위해 세수를 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많은 이들이 오늘도 일상을 반복했을 것이다. 좀 더 신나게 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주말에 오롯이 공부에 매달려 그는 3번의 시험 도전 끝에 지난해 11월 노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노무사는 해마다 전국에서 250명을 선발한다. 지금은 노무법인, 노무사사무실 등에 근무하면서 실무를 익히는 수습시간이다. 그는 청주노동인권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습 노무사 동기들은 노무사로서 사용자를 위한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를 위한 삶을 살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한다. 노무사도 노동자이기 때문에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부분 사용자 편에 서는 것도 그 이유다. 개인적으론 애초부터 노무사를 하게 된다면 노동자 편에 서고 싶었기 때문에 고민은 많지 않았다.”

그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주최하는 ‘노동자의 벗’프로그램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이는 수습노무사들이 자발적으로 회비를 내 만든 단체인데 전국의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무사들을 방문하고 연대를 기획한 다. 그는 올해 설 연휴 전날 청주노동인권센터 조광복 노무사를 찾아오게 됐고, 센터 활동에 반해 이곳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청주노동인권센터는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변호 뿐만 아니라 각종 단체와 연대해 노동인권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법률적 지식에 의한 사건만 다루다 보면 노동에 대한 가치관이 무뎌질 것 같다. 현장에 가서 투쟁도 하면서 연대의 힘을 느껴보고 싶다.”

노동은 한국사회에서 특히 불온시 된다. 외국에서는 사회교과서에서 노동조합의 문제에 대해 다루고, 학생들이 수업과정으로 노사합의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보지만 우리나라에서 노동은 특정집단의 이기주의로 내몰린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주씨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러한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대와 세대를 전승해서 투쟁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투쟁이 승리 했던 패배했던 간에 그것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씨는 한 철학자의 말을 인용한다. “더 나은 쪽으로 실패하라”고. 그가 예비 노무사로서 첫발을 내딛으면서 곱씹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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