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최시영
충북녹색당 사무국장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자주 표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중에 누가 더 사랑에 대해서 잘 알까?

매일 잔소리로 바가지를 긁는 아내와 그렇지 않은 아내 중에 누가 더 남편을 사랑하는 걸까?
여전히 사랑에 대해 뭐라고 딱 부러지게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사랑에 지대한 영향을 준 영화가 바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다.

진짜 사랑이 뭘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내게 있어 영화는 가장 인상적인 어느 한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는 포스터의 너무나 절망적인 슬픈 눈의 니콜라스 케이지 얼굴과 엘리자베스 슈가 술을 끊지 못하는 니콜라스케이지에게 근사한 알루미늄 술병을 선물하는 장면이 제일 선명하게 떠오른다.

악덕 포주에게 매여 매일 밤 몸을 팔아야 하는 절망적인 여자 엘리자베스 슈와 알콜중독으로 직장도 잃고, 가족도 떠나고, 술만 마시다 죽으려고 라스베가스로 온 니콜라스케이지는 우연히 만나 서로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이 시작되면서 여자는 남자에게 술을 끊게 하려고 하다가 크게 싸운다. 화해의 선물로 여자가 근사한 포켓용 알루미늄 술병을 남자에게 선물한다. 남자도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자에게 몸을 팔지 말라고 말하지 못하고, 여자도 남자에게 술을 끊으라고 말하지 못한다. 서로의 절망을 그저 함께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알루미늄 술병을 선물하는 장면에서 어김없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엘리자베스 슈가 니콜라스케이지에게 술병을 선물하는 마음이 난 뭔지 좀 알거 같다.

술 한 잔 올리고 싶었던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다

간경화로 일주일 만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응급실에서 꼬박 이틀만에 정신이 돌아오셨을 때, 초췌한 얼굴로 누워있던 아버지에게 엉뚱하게도 소주를 한잔 올리고 싶었다. 의사가 술 때문에 얼마 못 사실거라던 아버지에게 왜 소주를 한 잔 올리고 싶었었는지 이제야 조금 알겠다. 엘리자베스 슈가 알콜중독으로 죽어가는 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 술병을 선물한 마음이 그 마음이지 싶다.

지금 내 또래의 40대 후반 남자들이 아무렇지 않은거처럼 살지만 삶을 살수록 절망적인 현실이 너무 버겁고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은 요즘이다. 이럴 때 특히 돌아가신 아버지가 많이 생각난다. 사춘기 어린 내 생각으로 아버지는 오직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사람인데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드셨을까 원망스럽기만 했었다.

아마도 사춘기에 어린 나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만을 내가 사랑하고 존경할 아버지로 보고, 그런 아버지만을 사랑했었는지도 모른다. 내 중심적으로 다른 아버지들처럼 아내와 자식,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 오직 나와 가족들에게 자상한 아버지, 어쩌면 내 안에 내가 만들어 놓은 아버지상에 현실의 아버지를 꿰어 맞추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응급실에서 의사가 이제 얼마 못사시고 돌아가신다고 하니 술 한잔 올리고 싶었던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면서 사랑이라고 한다

몇 년전 정목스님이 진행하던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어 주면서 전하던 말씀중에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한참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보다 지금은 훨씬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고, 듣고 살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더 살가워지고 깊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왜 그런 말들을 많이 하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말이 갖는 무게가 너무 가벼워 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정말 사랑하는지 모르는 걸까? 고맙다는 사랑한다는 감정은 말할 때 그 때 뿐이고, 누군가에게 고맙고,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냥 고맙다고 나도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면 그만인 걸까?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말 해버리면 그냥 미안했던 일 잘못했던 일들이 없던 일이 되어 버려 또 다시 똑 같은 실수를 해도 그냥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말만해버리면 그만 인걸까?

오히려 고맙다는 사랑한다는 말없이 따뜻하게 바라보고만 있는 누군가가 더 미덥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건 나만 그런걸까?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프랑스, 영국, 미국 | 로맨스/멜로, 드라마
1996.03.01 | 청소년관람불가 | 111분
감독 마이크 피기스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엘리자베스 슈, 줄리안 샌즈, 리차드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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