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호 충북사람연대 대표, 장애인과 청소년의 자립을 꿈꾸다
야학 교사로 시작한 활동, 15개 시민단체 키워낸 저력 돋보여

“함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비장애의 구분이 없는 곳. 다사리는 다 말하게 하고 다 참여하게 하는 배움과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다사리는 다함께 말하고 다함께 살자는 뜻입니다.”

송상호(44) 다사리 학교 교장이자 충북사람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그의 명함에 적힌 말이다. 다사리 학교는 청주시내에서 유일한 장애인 평생교육시설이다. 충북대 천문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학생운동에 몸담았다. 90학번인 그는 학생운동이 정점을 찍을 때 입학했다.

“2학년 때 후배와 함께 청주에서 광주까지 도보여행을 했어요. 학생운동을 할지 말지 결정한 후에는 돌아보지 않았어요.” 청주에 돌아온 후 그는 운동권 학생으로서 세상과 부딪히며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98년 졸업 후에도 당시 청년진보당(현 노동당) 사무국장을 맡으며 연을 이어갔고, 학원강사를 하면서 밥벌이를 했다.

▲ 사진=육성준 기자

“저녁시간 가치 있게 써볼까”

학원강사를 하면서 주 3일 정도는 저녁에 시간이 났다. 송씨는 “그냥 저녁시간을 흘러 보내기보단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1999년 늘푸른 야학을 알게 됐고, 교사로 시작하다 교장이 됐죠”라고 말했다. 그런데 수강생 중에는 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도 있었다. 그는 송씨에게 계속 부탁했다. 남편도 장애를 갖고 있는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장애인들을 위한 야학을 운영해달라고 거듭 말했다.

“2004년 늘푸른 야학 지하 사무실에 장애인들을 위한 다사리 학교를 냈어요. 야학에서도 가장 소외된 계층이 바로 장애인과 비행청소년이었어요. 소년원에 갖다 오기 전에 아이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죠. 2005년 수곡동에서 등대야학을 시작했어요.”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났고, 장애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시설과 연대는 점차 확장됐다. 2007년 송상호 대표는 충북사람연대를 발족한다. 사람, 자연, 평화를 테마로 인권, 생태 평화운동을 하는 단체에는 그동안 송씨가 태동시킨 단체들이 모였다. 그간 15개 단체들을 발족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다사리 학교를 시작으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사리 장애인 자립생산센터, 다사리 돌봄센터, 사회적기업 사람플러스가 탄생했다. 직지시민학교, 직지장애인자립센터, 직지돌봄센터가 만들어졌다. 청소년과 마을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으로 산남주공아파트 2단지에 등대공부방과 마을카페가 만들어졌고, 도시농부 사업을 아파트 주민들과 벌이고 있다. 이밖에 (사)평화캠프 충북지부를 맡아 풀씨인연맺기학교, 비누방울, 행동하는 예비교사모임 등을 조직했다.

이들 단체들은 모두 회비로 자립하는 형태다. “처음부터 이 모든 단체들을 만들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장애인 야학을 만들어놓으니 이후 갈 곳이 없더라고요. 장애인 일자리를 고민하게 됐고, 중증장애인들에게 휠체어를 대여해주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했죠. 계속해서 필요에 따라 단체를 만들고, 이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했죠.” 이들 단체들과 함께하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만 해도 연간 100여명이라고 한다.

그는 2006년에 사회당 시의원 후보로도 출마했다. 그는 수곡동에서 장애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많은 활동을 했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낙선했다며 웃어보였다.

“돌이켜보면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사람 만나는 게 좋지 않나요. 후회는 없어요.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게 제 목표였고,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해요.”


시의원 출마 낙선하기도

정작 그가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월급을 가져가는 것은 2년 전부터라고 한다. 주5회 하던 학원 강사일이 지금은 주1회로 줄었지만 오랫동안 개인의 일과 사회적 실천을 병행한 것이다. 그게 좀 무리였을까. 그는 2008년 한쪽 귀가 갑자기 들리지 않는 병에 걸렸다. 2010년에는 혈관이 수축되는 병도 생겼다. 좀 쉬라는 몸의 계시였는지도 모른다.

송씨는 그마저도 시민들과 연대활동을 모색하는 것으로 돌렸다. 바로 도시공부였다. 산남주공 2단지에서 아파트 내 텃밭 100평을 무상임대해줬고, 송씨를 비롯한 충북사람연대 식구들은 농사를 지었다. “게으른 농사에요. 비료, 비닐, 농약 등을 전혀 쓰지 않으니까 유기농이긴 한데 그렇다면 땅의 토질을 바꾸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아요. 배추를 길러도 묶어주지 않으니까 본성대로 옆으로 뻗어나가죠.”

주민들과 농사짓고 나눈다

농사를 짓고 난 뒤 수확물은 주민들과 나누고 있다. 감자 한 봉지에 1000원, 김치는 직접 키운 배추와 무로 담가 팔았다. “원가 이하로 팔아요. 처음에는 무상으로 나눠줄 까 했지만 그것보다는 시중보다 저렴한 값을 받고 판매할 때 소비주체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아요. 가난한 동네이다보니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이 많이 없어요. 저소득층의 건강문제와 먹을거리 운동을 접목하고 싶었어요. 봄이 되면 텃밭상자를 무료로 나눠줄 계획이에요.”

이날 인터뷰는 산남주공아파트 2단지 상가건물 내에 있는 마을카페에서 이뤄졌다. 한쪽 테이블에선 장애인 여성들이 모여서 체스게임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이자 빈 점포에 치킨가게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최근 그가 제일 관심이 가는 것은 ‘기본소득네트워크’운동이라고 했다. “전 국민에게 조건없이 정해진 소득을 지급하자는 게 기본소득 의제에요. 모두가 번만큼 같은 비율의 세금을 내면 되는 일이죠. 이게 상식적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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