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건설 하청 받아 공사대금 받고도 4개월째 임금 체불
9월부터 일제히 임금 지급 중단…고의적 미지급 의혹 제기

지난달 26일 음성군 충북혁신도시 조성사업 현장 내 LH공사 현장사무실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LH공사가 혁신도시 내 건설 중인 공동주택건설 사업장에서 수개월간 일해 온 건설노동자들이 체불임금을 달라고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현장에서 팀장을 맡았다는 한 노동자는 “다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사람들이다. 수개월째 임금을 안주고 나 몰라라 하면 우린 죽으란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LH공사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LH공사 관계자는 “원청에 정상적으로 공사대금을 지급했고, 원청도 협력업체에 대금을 지급한 것으로 안다.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일이라 우리가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 동부건설은 조양개발 측에 공사비 전액을 지급했지만 자금난을 겪고 있는 조양개발이 건설노동자 200여명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건설노동자들이 일한 음성 충북혁신도시 내 아파트건설현장.
조양개발 파산 임박설 퍼져
2011년 11월 착공한 혁신도시 내 B1공구 공동주택건설공사는 LH공사가 발주해 동부건설이 낙찰받은 공사다. 동부건설은 이 가운데 철근·콘크리트공사를 지역업체인 조양개발에 의뢰했고, 조양개발이 맡아 공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조양개발이 법정관리 중인 기업이고, 관계자에 따르면 파산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임금체불 중인 노동자들은 모두 조양개발 소속으로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형틀을 담당했다는 염운걸 씨는 “우리 팀만 30명이 된다. 서울에서 내려와 지난 2월부터 9월까지 일했는데 임금을 받지 못했다. 지금은 광주현장에서 일하는데 이렇게 항의하러 온 것만 수차례다. 못 받은 돈이 9000만원이 넘는다”며 “다들 돈 달라고 아우성인데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의 따르면 조양개발이 체불한 임금은 총 8억 3000만원에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만 2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조양개발이 현재 법정관리 중인 기업으로 인건비를 지불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채권단이 합의한 채무유예기간이 임박했다. 당장 20여억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사실상 파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혁신도시 현장에 철판 등을 납품했다는 A씨는 “1억 3000여만을 받지 못했지만 조양개발은 법대로 하라는 식”이라며 “조양개발 담당자 말로는 파산절차를 밟게 될 것이고, 돈을 줄 수 없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더라”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혁신도시 현장에서 자재를 받고 대금을 받지 못한 금액도 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양개발은 철근콘크리트를 전문으로 하는 건설업체로 수 년 동안 시공능력평가순위 1위를 달렸던 중견기업이다. 조양개발 대표 H씨는 지난해까지 충북전문건설협회장을 맡은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최저가 입찰과 불공정한 하도급 등 건설산업 현장의 고질적 문제들이 더해지면서 2009년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2010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2009년까지도 연간 500억원대 공사를 수주했던 조양건설은 법정관리 후 200억원대 공사를 수주하는데 그쳤지만 업계에서는 재기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 조양개발의 요청으로 혁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수개월간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건설노동자들이 지난 26일 발주처인 LH공사를 항의 방문해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현장 노동자, 불법하도급 피해
하지만 최근 파산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수개월 전부터 인건비 지급을 중단한 점을 들어 일부에서는 고의적인 파산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LH공사 혁신도시 담당자는 “임금문제로 수차례 연락을 해봤지만 조양개발 대표는 수개월째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이미 파산준비를 하고 가족 명의로 새로운 업체를 만들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취재진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H대표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휴대전화는 물론 사무실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혁신도시 사업장에서 인건비를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불법하도급의 희생양이다. 동부건설은 정상적인 절차에 의해 일부 공정을 조양개발에 맡겼지만 조양개발이 직접 노동력을 투입하지 않고 사실상 개개의 사업주들을 팀장이란 이름으로 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OO팀장으로 불린다는 B씨는 “지난해 6월부터 현장에 투입됐다. 비계팀장, 활속팀장, 견출팀장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노동인력을 데려와 일을 했다. 한결같이 조양개발이 먼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고, ‘다음 달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겠다’고 달래며 수개월을 끌어왔다”고 말했다.

조양개발이 임금을 수개월째 지불하지 않자 노동자들은 원청인 동부건설과 발주처인 LH공사를 상대로 체불임금을 요구했다. 결국 지난달 말 동부건설이 체불임금의 80%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일단락됐다. 

활석팀장을 맡았다는 이성호 씨는 “합의서를 쓴 것은 아니고 동부건설 본사관계자가 내려와 구두로 약속했다. 일단 설 명절 전인 27일까지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철근팀장을 맡았다는 박오수 씨는 “당장 명절을 쇠려다보니 동의는 했지만 80%를 받는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나머지 20%는 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10일을 일하고 8일치만 받으라는 것인데 우리 입장에서는 이것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도내 업체 체불임금, 건설업계 ‘최다’

도내 기업체 체불임금 현황에 따르면 2013년 11월말 기준으로 건설업계 임금체불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주노동센터에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기준으로 도내 업체 가운데 임금을 체불한 업체는 2405개에 달하며 이 가운데 490개 업체는 체불임금을 청산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총 체불임금은 95억 53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청산업체를 업종별로 살펴보면 건설업이 가장 많은 153개로 집계됐으며, 제조업(133개) 도소매업(89개) 금융·부동산 및 서비스업(27개) 운수창고 및 통신업(21개)이 뒤를 이었다.

청주고용센터 정지혜 근로감독관은 “전체적으로는 지난해보다 체불임금 발생 사업체 수나 노동자 수 모두 2012년보다 감소했다. 하지만 건설경기 침체로 건설현장의 임금체불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과 2013년 1월부터 11월까지 동일기간동안 임금을 체불한 사업장수는 2012년 2646개 업체였던 것이 2013년에는 2405개 업체로 전년대비 9.1%가 감소했으며 근로자수는 14.5%, 체불액은 18.7%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평균 체불임금은 506만원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근로자수가 많은 업체일수록 1인당 체불임금액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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