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인간 니모의 기억을 쫓는 영화 <미스터 노바디>

감연희 설치작가

어느 날 아침 문득 눈을 떠보면 어느새 이렇게 나이 들어 여기 누워있는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대부분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때 그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와 같은 생각을 한 번 쯤은 해보게 된다. 과거의 추억도 일대기처럼 체계적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뜬금없이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이 기억 속에서 팝콘 튀어 오르듯 툭툭 튀어 나온다. 이 영화는 그러한 기억의 과정을 영화적 문법으로 활용했다.

니모 노바디는 1975년 2월 9일 생이다. 2092년 죽음을 눈앞에 둔 118살의 니모 노바디는 세포 재생술로 더 이상 인간이 죽지 않는 이 지구상에서 노화로 죽는 마지막 인간이다. 그는 지금 기억의 혼란 상태이고 “미스터 노바디”라는 이름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자”이다. 그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시간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일 뿐이며 그의 기억은 그가 34세였던 2009년에 멈춰있다.

118세 니모의 진술

▲ 미스터 노바디 (Mr. Nobody, 2009) 캐나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 2013.10.24 판타지, 로맨스/멜로, SF 15세이상관람가 | 138분 감독 자코 반 도마엘 출연 자레드 레토, 다이앤 크루거, 사라 폴리, 린 당 팜
상자 안에 갇힌 비둘기의 행동을 통해 보는 조건반사에 관한 심리학적 용어인 “비둘기 미신”을 설명하는 타이틀 신에 이어 시체 공시소에 시체로 누워있는 34세의 니모와 물속에 잠긴 자동차 안에서 탈출하려는 니모, 그리고 욕조에서 총을 맞고 죽는 니모의 인서트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2092년, 뉴욕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118세의 니모가 그를 치료하는 박사의 최면으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몽환적인 프롤로그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젊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지는 노인 니모의 진술은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모든 전제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있다. ‘그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흔한 상상을 계속 돌이키며 다른 전개로 이어 간다.
어린 시절 이혼하는 부모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던 9살의 니모!

영화는 니모가 누굴 선택했는지를 말하는 대신 어머니를 선택한 삶과 아버지를 선택한 삶 모두를 이야기한다. 그 후 소꿉 친구였던 안나와 엘리스, 진과 각기 결혼하는 장면을 기점으로 그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야했던 그의 아홉 가지 삶이 펼쳐진다. 니모는 순간의 선택을 돌리면서 각각의 인생들을 바라본다.

어머니를 선택한 니모는 15세 때, 새아버지의 딸 안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어른들의 반대로 이별을 겪게 되고, 아버지를 선택한 또 다른 니모 역시 앨리스와 진을 만나 설레면서도 가슴 아픈 첫 사랑을 경험한다.
어른이 된 34살의 니모는 어린 시절에 헤어졌던 안나를 찾아 헤매는 수영장 관리인, 앨리스와 결혼한 다큐멘터리 진행자, 진과 결혼한 성공한 사업가의 모습으로 여러 가지 인생을 살게 된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니모와 안나. 니모가 헌신적으로 사랑하지만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앨리스. 니모를 사랑하지만 니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진, 니모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누구이며 가장 행복했던 삶은 어떤 삶이었을까?

남녀 관계에서 가능한 모든 사랑의 구조를 통해 세 번의 사랑과 9개의 각기 다른 삶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아니면 단지 니모의 상상인지 명료하지 않은 118세 니모의 기억만큼이나 관객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9개의 복잡한 니모의 삶을 통해 모든 가능성을 드러내면서 과거와 현재, 환상과 실재,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관객들로 하여금 끝까지 반추하게 한다.

존재에 대해 묻는다

“이 영화는 선택에 대한 영화다. 우리가 선택할 때 운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용할까? 우리는 왜 다른 선택이 아니고 그 선택을 했는가? 나는 선택이 가지고 있는 모든 다양성과 복잡성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선택을 할 때 결과가 두 가지만 나오지 않는다. 거기서 파생될 수 있는 결과는 무한대다. 결과들은 가지를 치듯 펼쳐진다. 나는 관객들이 무한 가지의 경우의 수를 느끼도록 만들고 싶었다.



거기에다,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자신의 미래를 보는 아이의 시선과 이 아이의 미래인 노인이 자신의 과거를 보는 시선이 만났으면 했다. 나는 선택이 가지고 있는 모든 다양성과 복잡성,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선택의 중요성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라도 자연스러운 선택이며 어떤 인생도 가치가 있다고 역설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118세의 니모의 회상인 동시에 15세의 니모가 쓴 소설이며 9세의 니모가 펼친 상상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는 기억의 문제 뿐 아니라 비둘기 심리 이론부터 나비효과(카오스 이론), 빅크런치, 끈이론(다중우주론), 엔트로피 법칙 등이 중간 중간 등장하며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인지, 진일보해 존재론적 질문도 던진다. 삶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나비효과가 동양에서 시작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인생에 적용될 때는 불교 ‘업’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삶은 셀 수 없이 많은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선택으로 인해 누군가의 존재 여부가 결정되는데 어쩌면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예측처럼 “미스터 노바디”는 제목처럼 존재했을 수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결정은 관객의 몫이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