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적이고 행정편의적인 운영행태에 농민 불만 고조

농업인들이 쉽게 장만하기 어려운 농기계들을 싼 값에 임대해 농가의 생산비 부담을 줄여주고자 도입된 ‘농기계은행’ 제도가 일부 지자체의 행정편의적이고 고압적인 운영 행태로 되레 농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천시 농업기술센터는 지역 농업인들에게 사용 빈도가 낮거나 고가인 농기계들을 싼 값에 임대하는 ‘농기계은행’ 제도를 널리 홍보하면서 농업인들이 적극 이용해 줄 것을 권장 중이다. 시 농기센터는 약 50여 종 300여 대에 달하는 각종 농기계들을 완비하고, 희망 농가에는 기종에 따라 1만 원에서 20만 원 수준의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를 받고 있다. 이 중에는 농사용 로우더와 굴삭기 등 고가의 중형 농기계들도 즐비하다.

▲ 제천시 농기계대여은행 전경. 시 농기센터가 농업인의 편익이나 실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행정편의적이고 고압적으로 운영해 농업인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우수한 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임차할 수 있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계를 이용해 본 농업인들은 이런저런 불만을 쏟아내며 한 목소리로 개선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농업인들은 선불제로 운영되는 현재와 같은 농기계은행 운영 방식을 후불제로 전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농기센터에 신청서를 접수함과 동시에 임차료를 선입금해야 하는 현재의 방식은 농기센터를 사실상 절대 ‘갑’의 지위에 서게 하기 때문에 농업인들은 각종 불이익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농업인이 특정 농기계를 3일 간 임차했다가 강우와 같은 기상재해로 이틀을 놀리더라도 농기센터는 사용하지 못한 만큼의 임대료를 해당 농가에 돌려주지 않는다. 그동안 수많은 농업인들이 일기불순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사용치 못한 일수만큼의 임차료를 환불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미 선금을 받아버린 농기센터가 선뜻 돈을 돌려줄 리는 만무했다.

실제로 백운면에서 농사를 짓는 A씨는 농기계은행을 먼저 이용했던 지인의 추천으로 기계 대여를 결심했다. A씨는 농기계를 빌리기 하루 전에 대여를 신청토록 하는 농기센터의 규정을 모르고 당일 대여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연히 농기계를 빌릴 수 있을 줄 알고 해당 날짜에 10명의 인부까지 고용한 상태에서 뜻 밖의 낭패를 겪게 된 A씨는 농기센터 관계자에게 사정도 하고 읍소까지 해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나 A씨는 결국 당초대로 원하는 날짜에 농기계를 사용할 수 있었다. A씨가 급박한 사정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자 “기계를 수리 중”이라며 버티던 농기센터 관계자도 결국에는 해당 농기계를 내주었던 것이다.

A씨는 이틀 간의 사용료로 6만 원을 선지불했다. 그런데 일은 A씨의 짐작과 달리 단 하루에 모두 끝이 났다. 첫째날 일을 모두 마친 A씨는 작업이 끝나자마자 농기계를 반납하고, 기계를 사용하지 않은 나머지 하루치 대여료 3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시 농기센터는 규정을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A씨는 “농업은 특성 상 기후와 날씨, 주변 환경 등 여러 변수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제조업처럼 계획대로 일이 착착 이뤄지는 게 아니다”며 “농기계은행이 영리단체나 기업 차원에서 운영되는 것이라면 몰라도 농업인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되레 자기 이익 챙기기에만 혈안이 된 듯한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기계은행의 예약 시스템이 인터넷 예약 위주로 이뤄지는 것도 농업인들에게는 불만거리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대다수인 농촌의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시 농기센터가 인터넷 예약제도를 강행해 혼선만 부추겼다는 것이다.

현재 제천시 농기센터는 센터 홈페이지에 농기계 대여를 접수하거나 직접 방문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여 신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농업인 중 상당수는 컴퓨터 조작에 서툴러 혼자 힘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시 농기센터를 방문하기가 어렵다. 방문을 한다 해도 회원가입과 검색, 예약 등 절차가 워낙 복잡해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도시의 젊은 세대가 아니라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시 농기센터는 컴퓨터에 무지한 농민을 위해 직접 방문 신청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또한 농업인 입장에서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한시가 바쁜 농번기에 읍면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농업인들이 일부러 시내까지 찾아와 농기센터를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방법으로 신청 접수를 한다 해도 다음날에는 농기계를 받으러 또다시 시내를 찾아야 한다. 시 농기센터가 농업인의 편익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농기센터 관계자는 “신청서를 접수한 다음날 농기계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사용 후 반납된 농기계의 사전 점검과 수리를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인터넷 접수는 대여 실태를 농민들이 직접 확인해 농사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는 순기능이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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