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생산 국보제약 청주산단 이전, 골목이름은 남아
청주 유일 외국인학교 화교학교 문닫고 ‘653예술상회’ 변신

지난 5월, 서울 경복궁 북쪽 인왕산자락에 볼 일이 있어 다녀 온 일이 있다. 가는 길목에 사직단이 있는 사직공원에 들어가 관리인이 잔디 깎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제단이 정갈하게 가꿔져있어 나무 하나없는 사각 제단이 한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북쪽 문으로 왕이 출입하고 동편 문으로 神이 들고나는 神道가 박석으로 나 있어서 가운데 설치된 제단까지 이어져 있었다. “종묘와 사직”은 곧 국가를 의미하는 말이다. 조선시대는 도성인 한양과 지방도시까지 사직단을 만들어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다. 땅의 神인 社와 곡식의 神인 稷을 모시는 의미는 생명을 존중하는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이었다.

물론 청주의 사직동도 그런 의미의 연장선상에 있다. 관리들의 고약한 이름짓기 때문에 이상한 이름을 얻은 청주의 공원은 도심 가운데 있다하여 중앙공원, 서쪽에 있다해서 서공원 동쪽엔 물론 동공원이라는 숫자와 방위를 넣어짓는 작명중에서도 한참 유치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아무튼 언제인지 모르게 사직동의 사직단은 없어졌고 그 후 충혼탑이 세워져 나라를 위해 죽은 이들의 제를 현충일을 정해 매년 지내고 있다.

▲ 1920년대 청주여중, 75년이 넘은 충북 최초의 여학교인 청주여중은 명문인데다가 시설도 좋았다.

여성 인재 산실 청주여중고, 전쟁후 분리

사직단의 동쪽, 산자락 아래 개교한지 75년이 넘은 충북 최초의 여학교인 청주여중이 있다. 우리집 세 여동생들이 하나 졸업하면 동생이, 그 뒤를 이어 막내까지 줄줄이 다니던 여학교라서 그 학교 다니는 다른 학생들까지 동생으로 살갑게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명문인데다가 시설도 좋아 교내에 야외수영장도 있었던 게 생각난다.

6.25 전쟁 통에 중·고 분리정책에 따라 중학교는 그 자리에 남고 청주여고만 무심천을 건너 지금의 상당공원 옆으로 옮겨갔었다. 며칠 전 시내의 한 시장에서 중학 동창생을 반갑게 만났는데 마침 그 친구가 청주여중 교장이라며 자기소개를 했다.

▲ 지난 2008년까지 아이들을 가르쳤던 청주유일의 외국인학교인 청주화교학교.

동공원의 서쪽엔 살충제등을 생산하던 국보제약이 있었는데 국보제약은 청주산업단지가 생기면서 그리로 이사를 가고 골목 이름만 국보제약로로 남겨놓았는데 언젠가 청주공단을 지나다보니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국보사이언스라는 세계화된(?)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국보로 653번지는 청주화교 학교의 주소지이다. 1996년부터 수동에 있다가 이곳으로 이사하여 화교 아이들을 가르치던 청주유일의 외국인학교였는데 학생 수가 줄자 지난 2008년 문을 닫았다. 지금은 번짓수를 이름으로 삼은 ‘653예술상회’라는 예술단체가 이 건물을 빌려 지역공동체 복원운동을 예술로 풀어가고 있다.

▲ 1970년대 충북대학교는 청주시내 초등학교의 단골 소풍지였고 한 여름엔 지금의 중앙도서관자리에 있었던 대운동장과 높은 다이빙대를 갖춘 수영장도 명물이었다.

충북대학교, 청주 초교생 단골 소풍지

1971년, 나는 그해 3월 충북대학교에 입학했다. 햇수로 43년전 이다. 청춘은 덧없이 지나고 어느 결에 노년의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흠짓 놀란다. 충북대는 1951년 도립청주농과대학(2년제)로 설립되어 53년엔 4년제로, 56년엔 충북도립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62년엔 충남대학과 합병하여 국립충청대학교 청주캠퍼스가 되는데 1년 후 다시 분리되어 국립충북대학으로 제자리를 찾게 된다.

통계를 보면 1970년 초 전국대학 정원은 초급대 통신대 포함 19만명이었다. 45년이 지난 지금은 335만명으로 17배 늘었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충북대 입학생이 400명을 넘지 않았다. 유별난 우리민족의 높은 교육열 탓이겠다. 그 시절 이후에도 대학입학정책은 자주 바뀌었다. 연합고사- 단독고사-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 등등.

당시의 명분은 지금껏 유효한데 참 신기한 노릇이다. “대학교육과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OECD중 학생자살율 1위, 가장 불행한 교육현실이라는 오명은 대체 어디서 생겨나온 것 일까?

학교가 세워지기 전 충북대학교는 충북도 임업시험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러 종의 나무들이 잘 가꿔져 있어서 청주시내 초등학교의 단골 소풍지였고 한 여름엔 지금의 중앙도서관자리에 있었던 대운동장과 높은 다이빙대를 갖춘 수영장도 명물이었다. 30만평이 넘는 방대한 학교부지에 수년전엔 ‘한국의 아름다운 건축물군’으로 선정되는 등의 멋진 건물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지금은 지도를 찾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으로 변해버렸다.

40여년 전 정문을 지나 연습농지인 넓은 논을 지나고 한참을 더 가서야 나타나는 본관까지 천천히 걷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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