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 비현실 속에서만 덴버, 제이크에게 공감할 뿐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근대적 소유의 철학을 정초한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노동을 투여하여 대지에 울타리를 치고 개량을 하면 그 대지는 자신의 정당한 소유가 되고 누구에게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여전히 많은 토지가 남아 있고, 아직 토지를 가지지 못한 자가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토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아메리카 내륙의 빈 땅에 정착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취한 소유물로 인해 여타 인류가 피해를 입거나 불평을 하거나 그 사람의 침입에 의하여 손해를 받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 존 로크의 통치론 中

로크에게 아메리카 백인의 서부개척의 역사는, 인간이 살지 않고 있는 광활한 빈 땅에 대한 개량의 서사였고, 타인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소유를 시작하는 서사였다.

▲ 늑대와 춤을 영국·미국 | 서부·어드벤처·드라마감독: 케빈 코스트너배우: 케빈 코스트너, 메리 맥도넬
그러나 그 땅에는 이미 다른 인류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광활한 대지에서 마음껏 말을 달리고, 바람, 물, 새가 전하는 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숲이 전하는 조상들의 온기를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로크 같은 백인들에게 그들은 그 대지에 권한을 주장할 수 있는 자들도 아니었고 심지어 인류(인간)도 아니었다.
시간이라는 덕분에 로크보다 조금은 계몽의 혜택을 누린 미국의 14대 대통령인 피어스는 1885년 인디언인 시애틀 추장에게 땅을 사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시애틀 추장은 말한다.

“당신의 제안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들이 총을 가지고 와서 우리들의 땅을 빼앗아 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당신은 하늘과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습니까. 그런 생각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합니다. 우리는 신선한 공기나 반짝이는 물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그것을 우리에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구석구석은 우리들에게는 매우 신성합니다. 저 빛나는 솔잎들이며 해변의 모래톱이며 어둠침침한 숲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은 우리들의 성스러운 추억과 경험일 뿐입니다.”

미국의 자유지상주의 철학자 노직(Robert nozick)은 가난한 자를 위한 분배정책은 정당한 소유를 빼앗는 강도행위라고 하였지만, 역으로 그가 말하는 소유는 이렇듯 원초적 강취와 학살의 역사를 감추고 있다. 영화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은 그 감추어진 원초의 속내를 처절히 보여주고 있다.



덴버 중위(케빈 코스트너)는 남군과 북군이 서로 총부리를 겨눈 전장의 한복판에서 두 팔을 벌린 채 말을 달린다. 그리고 남군의 총부리가 불을 뿜는다. 그가 왜 그랬을까?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현실에 ‘절망’해서? 아니다. 추악한 현실로부터 절단되고 싶은 ‘희망’에서 그랬을 게다. 그러나 그 당시의 그의 행동은 죽음을 통하여 현실과 ‘절단’하고픈 치기였을 뿐이다.

희망을 못 이룬 덴버는 서부국경지역 파견을 자원한다. 그는 처음에는 드넓은 서부의 작은 오두막에서 혼자만의 삶을 즐기는 월든 호숫가의 아나키스트 철학자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였으나, 인디언들을 만나고는 그들의 공동체를 동경하게 되고 그들과 어울리며 진정한 희망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 희망은 흔들리는 촛불처럼 불안함은 덴버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영화<아바타(Avatar)>의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는 그 희망을 이루었지만, 덴버는 곧바로 들이닥친 동료 백인들의 학살을 지켜봐야만 하는 비극적인 시애틀 추장이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덴버와 제이크의 편이 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만 그럴 것이다. 소유하라고 외친 로크는 시애틀 추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땅을 사겠다던 피어스 대통령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식도 로크와 피어스로부터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우리에게 소유하지 못한 삶은 불안하고, 소유하지 않는 삶은 위험할 뿐이다.

우리는 영화라는 비현실 속에서 덴버와 제이크, 시애틀 추장과 나비족에 공감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인디언과 나비족을 내쫓는 미국 기병대와 지구 용병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추악한 현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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