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덕동 저류시설 설치로 본 국비 사업 진행의 문제점
일정 규모 이상 정책 사업은 공청회 통해 사전합의해야
[국비확보의 딜레마]
국비를 받으면 반납할 수 있을까. 물론 예기치 못한 민원 및 외부변수에 의해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 하지만 국비 사업이 반납됐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청주시 관계자는 “불용처리가 된다고 해서 행정상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업예산이 확보된 후 진행이 안 되면 나중에 기획재정부가 행정사무감사에서 지적을 당하는 등 복잡해진다. 힘들게 딴 예산을 반납한 후에 다시 받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국비확보 절차는 대략 이렇다. 각 부서에서 사업을 계획한 후 국비신청 전에 지방투융자심의를 연다. 총 사업비 규모와 사업 내용에 따라 충북도와 시 자체에서 지방투융자심의위원회를 열고 심의위원들은 조건부, 적정, 재검토 등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는 예산확보를 위한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 여부만을 가린다. 문제는 심의를 거쳐 국비를 받은 후 사업이 시행될 때 나타난다. 주민들은 사업이 진행될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주민들이 반발해도 시 담당자들은 “국비 예산을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답변한다.

주민들 반발해도 대책 없어
지난해 내덕동 주민들은 5월 경 청주시 재난관리과에서 ‘우수저류시설 설치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시가 벌인 1차 사업 설명회 현장에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은 주민들은 당황했다. 주민들은 내덕로는 상가지역이기 때문에 당장 공사가 시작되면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류시설이 놓이다보면 악취 및 벌레가 꼬일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렸다. 주민들은 내덕저류지설치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렸다.
그 때부터 청주시와 비대위는 갈등을 겪었다. 청주시는 8월 13일 시간당 38ml, 15일에는 48.5ml가 내렸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내덕우수저류시설 설치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비대위는 “관계 공무원이 수문을 조작해 물을 방류했다. 모든 자료가 허위다”라고 반발했다. 결국 이 싸움은 지금 청주지검에서 진위여부를 가리게 됐다. 비대위 관계자는 “주민 1500여명이 내덕로보다는 향군로에 설치해달라고 민원을 요청했고, 386명은 감사원 요청을 했다. 일부 상가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안이 아니다”며 “내덕동은 상습침수지역이 아닌데 시가 데이터를 조작했다. 감사원에서는 이틀 동안 조사했지만, 수사중인 사안이라 감사를 종료하겠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청주시 관계자는 “타당성 조사를 거쳐 사업을 진행했다. 1순위가 신봉지구였고, 2순위가 내덕지구였지만 내부 검토 및 실사를 통해 내덕지구가 선정됐다. 올 9월경에는 충북대 정문에 저류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국비신청을 할 계획이다”고 답했다. 내덕 저류시설은 올 1월 착공해 내년 6월에 완공된다. 2만톤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이 사업은 총 140억원이 소요되며 소방방재청에서 받은 국비는 78억원이다.
시 관계자는 “기상이변으로 자연재해가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 빗물을 저장했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방류하는 시설이다. 냄새가 난다고 주장하는 데 사실과 다르다. 내덕동뿐만 아니라 시기를 고려해 사업을 확대할 것이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최대한 영업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주변 식당 및 상가를 이용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업은 국비신청 전 절차인 지방재정투융자 심의를 받지 않았다. 자연재해시설 설치는 제외대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익은 침해받아도 된다는 논리 앞에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럴 경우 청주시 행정에서는 완충장치가 너무 약하다.
신희선 비대위원장은 “국비를 받아서 사업을 포기 못한다는 얘기를 수차례 들었다. 사업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과정 자체에 허위서류 작성 등 문제가 많았다. 민원 발생이 뻔히 예상되는 일이다. 타 지역은 공원, 학교 등을 이용해 설치했고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시는 1월 안에 공사를 할 예정이고, 비대위 관계자들은 물리적인 충돌도 감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국비 신청 후 사업 진행이라는 지금의 행정 시스템은 앞으로도 이러한 충돌을 막을 길이 없다.
열악한 지방행정 독립이 필요해
4대강 사업, 야당 단체장들 하나도 못 막았다
“지방정부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예산이 없다면 재정분권, 지방분권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현재 국비와 지방비 비율은 8대 2로 중앙정부에 의존해야만 큰 규모의 사업을 벌일 수 있다. 중앙정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로비’를 해야 하고, 각 부처에서는 선심 쓰듯이 예산을 갖고 지방정부 길들이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송재봉 충북NGO센터장은 따라서 지방세 자체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짜야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부가가치세의 5%만이 지방재원으로 잡히지만 10%로 늘려야 한다는 것. 박원순 서울시장은 부가가치세액의 20%까지 지방재정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세에서 지방세로 자동 편입되는 비율이 높아지면 중앙정부 쳐다보기가 줄어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야당 단체장들이 전혀 막지 못했다. 경남, 충남, 충북에서 4대강 사업은 정부안대로 진행됐다. 예산을 갖고 통제하기 때문에 단체장들 또한 말을 잘 따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지자체는 약자의 입장이지만 연대 체제는 공고하지 않다. 기초단체장협의회 등이 구성돼 있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국회의원 또한 중앙정부가 쓰는 예산이 곧 권력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무관심하다.
이러한 재정 여건 상황에서 국비는 공짜돈과 다를 바 없다. 국비가 지역사회의 합의 없이 결정되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국비는 무조건 따오면 좋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송 센터장은 “5년 중기 재정계획을 수립하고, 지역주민들에게 공개적으로 공포해야 한다. 국비를 확보하고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이 너무 폐쇄적이다.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이 생략돼 있다”며 “형식적인 예산심의 절차인 투융자심의 대신에 일정 규모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에 대해서는 공청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청주시와 충북도는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주민들에게 예산편성의 기회를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있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된다. 보통 예산을 편성해서 집행, 결산까지는 최소 3년이 걸리지만, 주민참여예산심의위원들의 임기는 1년 남짓이다. 송 센터장은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아이디어를 내는 수준에서 벗어나 시민예산교육 등을 통해 예산 편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