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위 경부역전마라톤 15년간 14차례 우승
선택과 집중의 훈련방식 더하기 선수들의 애향심

한때 전국체전에서 종합순위 3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충북체육은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체육인들의 고군분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올해 전국체전에서 종합순위 11위에 오른 것이 위안거리다.

충북체육의 추락은 이유가 있다. 인구가 적어 그렇지 않아도 선수층이 얇은데다 우수한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해도, 좋은 조건을 갖춘 타 시·도 대학과 실업팀이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는 격이다.

▲ 마라톤 충북대표팀이 지난 1일 폐막한 경부역전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이 대회 7연패를 기록했다. 사진은 1일 열린 환영식.
● 출전선수 명단

▲남자=△류지산(청주시청) △박요한·최병수(제천시청) △김준수·김재민(옥천군청) △조세호(음성군청) △김상훈(대우산업개발) △문정기(경찰대학) △김상훈(대우산업개발) △손명준(건국대) △이민현(한양대) △피승희·황종필(충북체고) △김승종(단양고) ▲여자=△김성은(삼성전자) △임은하(청주시청) △안별(제천시청) △장은영(서원대)

그런데 이런 시류와 정반대로 가는 종목이 마라톤이다. 마라톤은 여전히 전국 상위권의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전국체전에서는 종합 2위를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4위를 차지했다. 특히 마라톤 종목 단일대회로는 전국체전만큼이나 권위가 있는 경부역전마라톤대회에서 7연패를 달성했다. 놀라운 사실은 2005년 경기도에 밀려 2위를 차지하기 전에도 7연패를 했었다는 점이다. 지난 15년간 단 차례를 제외하고는 이 대회에서 왕좌를 내놓은 일이 없다.

부족한 실력, 투지와 전략으로

마라톤이라고 해서 타 시·도와 선수경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내 상위랭커 상당수는 도세가 강한 서울과 경기도에 편중돼 있다. 선수 개개인만 보자면 분명 우승 전력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충북대표단은 28시간 08분 37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한 서울(28시간 19분 05초)을 10분여 차로 따돌렸다.

이쯤 되면 비결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특별한 비결이 있다면 다른 종목에서도 벤치마킹이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 1일 충북도는 제58회 경부역전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충북대표선수단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는 환영회를 열고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했다. 환영회 자리에 참석했던 이 지사는 3일 직원조회에서 마라톤대회 선수단을 언급했다. 이 지사는 “충북선수단의 우승은 부족한 실력을 투지와 전략으로 극복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 지사의 말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올해 충북은 우승을 장담할 수 없었다. 충북 마라톤의 간판인 신현수(한국전력) 유영진 박명현 정복은(청주시청) 등 핵심전력 4명이 부상 등의 이유로 전력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전선수 17명이 고른 활약을 펼치며 빈자리를 메웠다. 엄광열 감독은 “경부역전마라톤은 우리가 전통을 이어온 대회다. 가장 신경을 쓰는 대회 가운데 하나”라며 “올해도 예전처럼 합숙훈련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충북은 15년 전에도 합숙훈련을 했다. 20년 전에도 그렇다. 대회를 앞두고 한 달여를 앞두고 합숙훈련에 돌입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하지만 소속팀을 한 달여 기간 동안이나 떠나야 하는 것을 환영할 만한 팀이나 선수들은 흔치 않다. 20년간 빠짐없이 합숙훈련을 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엄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노력과 선수들의 애향심이 있다.

엄 감독은 “대개의 시·도 대표팀에서는 감독이라고 해서 자신의 요구를 모두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소속팀 이상으로 충북대표팀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있다. 선수들이 모든 지시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기 때문에 짧은 기간이지만 대회에 필요한 다양한 주문이 가능하다”고 선수들의 애향심을 높이 평가했다.

수년전부터는 다른 팀들도 합숙훈련에 돌입했지만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충북선수단은 20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회 당일에 맞춰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정신력 강화를 위한 훈련 등을 통해 영원한 승자가 없는 스포츠현장에서 최고의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한마음으로 따르는 선수들이 있어 행복”
최고 성적 내고 지휘봉 내려놓는 엄광열 감독

▲ 경부역전마라톤 첫 출전부터 14회 우승이라는 업적을 일궈낸 엄광열 감독. /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7연패 뒤 다시 7연패. “나가기만 하면 우승”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잘되는 집안에 근심이 있을까 싶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코칭스태프들은 해마다 가시방석이다.

“단 한 번도 편한 적이 없었다.” 충북대표팀의 경부역전마라톤 첫 출전부터 14회 우승의 순간을 일궈낸 엄광열(53) 감독의 소회다.

엄 감독은 부상 등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1984년 도체육회 순회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의 충북대표 대부분이 엄 감독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이다. 1999년부터 청주시청 감독직을 맡은 엄 감독은 20년 전부터 충북대표팀을 코치직을 겸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이종찬 전 감독에 이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엄 감독은 제58회 경부역전마라톤에서 우승을 확정짓던 날, 감독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엄 감독은 “현재 코치들도 후배이고 제자들이다. 이젠 넘겨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세월동안 믿고 따라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엄 감독은 “대회를 앞두고 선수단을 구성하는 일은 항상 힘들었다. 기대치는 높아졌고, 항상 최고의 선수로 구성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타시도 팀 감독을 찾아가 선수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기본이고, 선수 개개인의 1년간의 성적은 물론 최근 경기를 검토해 선수단을 꾸려야 한다.

최고의 성적을 내고 감독직을 내려놓지만 걱정이 앞선다. 대표팀을 떠나더라도 여전히 청주시청 감독으로, 마라톤 전문가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지만 열악한 인프라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엄 감독은 “대회를 마치고 서울이나 경기가 ‘내년에는 두고 보자’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해마다 도전을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이 참여하는 실업팀 창단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엄 감독은 “선수들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서울이나 경기에 미치지 못한다. 언제까지 애향심만으로 선수들을 붙잡아 둘 수도 없는 일”이라며 “도민들의 관심과 지자체와 기업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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