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비밥
마녀(馬女), 문화를 쇼핑하다
“소개팅 그 남자는 어디가고”
작년 봄 소개팅 자리에서 남자가 말했다. “뮤지컬 비밥 볼 기회가 있었는데…”라고. ‘비밥? 처음 듣는 건데. 뭐지?’ 그 이후 쭉 궁금해 하던 비밥. 간혹 찾아보니 비밥전용관도 있고, 계속 오픈런하는 작품이었다.
난타같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아무때나 봐도 된다는 거다. 급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기간이 정해진 다른 공연에 밀리고, 이거 보러 서울까지 가야하나? 하는 생각, 또 왠지 이 공연은 청주에 언젠가 내려올 듯하다. 그때 봐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제목만 기억하고 있던 공연이었다.

이러던 중 마침 공짜표가 생겼다. 어찌나 좋던지(역시 공짜는 언제라도 좋다) 아는 언니와 같이 갔다. 비밥을 알려준 그 남자 대신, 내 옆자리엔 재산세 2000만원 내는 부르조아 언니가 있었다.
공연장은 서울 종로에 위치한 비밥전용관. 바로 예전 시네코아 자리이다. 언제 바뀌었지? 티켓을 받고 좌석을 확인한다. 앞에서 4번째 열 가운데 자리. 좋다. 무대 규모는 약 350석 정도의 중규모. 관객과 호흡하면서 대여섯명이 공연하기에는 딱 좋은 규모이다.
“부치 치, 부치 치, 부치 치, 부치 치.”
드디어 공연 시작. 비트박스 2명이 들어오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나 역시 어깨와 발장단으로 리듬에 몸을 맡기며 1시간 20분 동안 실컷 즐길 모드에 돌입한다. “저 놀 준비 다 되었어요~!”
슬슬 배우들이 등장하고 본격적으로 공연이 진행된다. 비밥의 메인 스토리는 요리경연대회로, 두 명의 메인 세프가 번갈아 가면서 4가지 요리를 한다는 이야기다. 짐작하겠지만, 요리 과정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각 요리 코너마다 생각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
먼저 너무 너무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수족관 연출. 어찌 물도 없는 공연무대를 수족관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렇다고 촌스럽게 물고기 복장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파란색 열대어가 유유히 헤엄치는 환상의 나라, 동화의 나라로 간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뭐랄까, 풋풋한 순수함이 살아있는 순정만화 같다고 할까? 뒷열에서 관람하던 일본 관광객들 역시 감탄을 연발했다. 일본인의 감수성에도 적중. 성공이다. 암튼 이거 너무 좋다. 좋아~!!
거기다 이태리 피자 만들기 코너 역시 엄청 웃기는데, 여기서는 핵심이 즉석 소개팅이다. 객석의 두 남녀를 불러놓고 연기자들은 자리를 비운다. 결국 무대에 남겨진 관객 2명이 상황을 스스로 알아서 진행해야 하는데 완전 코메디였다. 엄청 웃긴다. 심장이 밖으로 뛰어 나올 거 같다. 이렇게 웃으면 갈비뼈 아픈데 걱정이다.
다음 코너. 어라~. 갑자기 한 배우가 베개 한 개를 어느 관객에게 던진다. 한 개. 두 개. 처음엔 한명에게만 공격하더니 모든 관객에게 베개 폭탄이 떨어진다. 베개 폭탄을 맞은 관객은 그것을 다시 무대 위 배우들에게 던진다. 공연장은 완전 아수라장, 베개싸움 경기장이 되버린다. 이거 완전 재밌다. 앗싸~. 여기요~. 여기~!이쪽으로 베개 던져요! 열광한다. 마치 사춘기 수학여행 온 기분이다.
이렇게 웃고 즐기는데 벌써 무대인사를 한다. 뭐야~. 벌써? 안돼~. 아잉~. 좀 더 하지, 벌써 끝났어?난 아직도 더 웃고, 더 박수치고, 더 엉덩이를 들썩들썩할 수 있단 말야~. 쩝. 아쉽다.

“숨 돌릴 틈 좀 주시와용~~”
뮤지컬 비밥은 전반적으로 뮤지컬이라고 하기 보다는 연극적 요소가 많고, 대학로 컬투쇼나 개그콘서트 분위기도 살짝 풍긴다. 거기다 각 스토리마다 길이가 짧아서 집중하기도 좋고, 분위기 전환이 빨라 관객 역시 정신없다.
비보이와 비트박스. 여기에 수족관과 베개싸움. 그리고 즉석 소개팅 같은 연극적 요소. 1시간 20분 동안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주기로 작정한 공연이다. 관객은 본전 뽑고도 남는다. 대신 배우들은 바쁘고, 관객들은 딴 생각할 틈을 가질 수 없다. 정신을 그냥 그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비트박스 오빠들도 너무 멋있다. 오예~! 완전 멋있어. 근데, 많이 힘들어 보인다. 이 공연에서 비트박스는 잠깐 하는 게 아니라, 장장 1시간 20분 동안 메인 반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와~. 이게 가능하다니. 거기다 마지막엔 그들만의 비트박스 공연도 있다. 그저 놀랍기만 하다. 강약도 조절해야 하고, 장단도 조절해야 할 텐데. 그들의 폐활량에 감격한다. 공연 끝나면 자장면 곱빼기에 곱빼기는 먹어줘야 할 듯.
비보이들의 팔근육은 역시 장난이 아니다. 특히 키 큰 아이롱 쉐프, 즉 철의 주방장. 오늘 캐스팅은 정윤호. 이분 정말 대박이다. 얼굴은 주먹만한데 어깨와 팔근육이 슈퍼맨이다. 마치 만화에 방금 뛰쳐나오는 듯한 캐릭터이다. 2004년도의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의 미스터 인크레더블(아빠 역)과 완전 판박이다. 즉, 귀여운 근육맨이다. 피트니스 센터에 와서 자기 가슴 때리면서 운동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근육맨들과 차원이 너무 다르다.
오늘 나의 영웅으로 뽑을 만한 배우는 바로 살아있는 표정의 배우 우영욱. 녹색 주방장(그린 쉐프)으로 나오는데, 뭔가 해 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 어설픈 연기가 일품이다. 멋있게 보이고 싶어 의도하면 잘 안되지만, 어쩌다 의도하지 않은 대박을 맞이하는 1박 2일의 김종민 같은 캐릭터다.
뮤지컬 비밥은 큰 공연의 화려함이나 웅장함은 없으나 작은 무대만이 가질 수 있는 친밀감과 아늑함이 있다. 그리고 관객이 배우가 되는 공연이었다. 그저 맛있는 뮤지컬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섭섭. 연극, 비트박스, 비보이, 노래가 어울린 판타스틱 스테이지(Fantastic Stage)라고 할까.
다시 봐도 매번 느낌이 다른 그런 공연.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고, 재방송이 불가능한 생생한 생동감의 현장스케치이다. 잘 짜인 극본대로 이루어지는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공연이 절대 아니다. 극본 없이 즉흥적인 시츄에이션에 대응하는 공연, 예측 불가능한 현장감 있는 공연을 만끽했다. 배우들의 노련함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그런 공연이다.
간만에 오락성이 제대로, 그리고 맛깔스럽게 요리된 공연 한편을 온몸으로 즐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터지고, 갈비뼈가 아플 정도로 웃다보니 엔돌핀이 마구 쏟는다. 나의 눈가에는 주름은 더 생성되었지만. ^^
끝나고 배우들과 한 컷. 난 나의 영웅 우영욱 배우 옆에서! 흐흐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