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강희 편집위원

우리나라처럼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나라도 없을 것 같다. 뭔가 유행할 때 그 유행을 거부하거나 미처 따라가지 못하면 낙오되기 십상이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전국민의 절반을 넘어선 지금, 스마트폰이 없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다. 모두가 싸이 말춤을 출 때 못 추면 바보이고, 모두가 카카오톡을 할 때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한 때 웰빙열풍이 불어 무엇이든 웰빙, 웰빙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상당히 심했다. 웰빙은 결국 잘먹고 잘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는 건강관리로 이어졌다. 얼마전부터 주변에서는 운동 안하면 야만인 취급을 한다. 물론 좋다. 운동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므로. 그러나 과도한 웰빙열풍이 이 도시에 남긴 것은 도처에 깔린 운동기구들이다.

최근 2주간 이런 것들을 취재하기 위해 청주·청원지역을 둘러보았다. 공원·놀이터·산책길·관광지·공한지 어디를 막론하고 들어선 게 운동기구였다.

이 또한 한국인들의 쏠림현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웰빙을 외치는데 나만 운동 안하면 안되기 때문. 그래서 주민들은 동 주민자치센터, 구청, 청주시, 각 기관 등에 운동기구 설치를 요구했다. 다른 동에는 있는데 왜 우리동네는 없느냐고 항의하면 설치해주곤 한 것이 운동기구 천국을 만들었다.

아파트 주변을 한 번 살펴보라. 집에서 나오면 산책길, 운동장, 근처 공원에 운동기구가 있다. 조금 나가 청주 용정동 용정산, 금천동 호미골체육공원, 우암산, 오창 호수공원, 오창 송대공원, 문의 청남대에 가도 이런 기구들을 볼 수 있다. 조용히 산책하며 자연을 감상하기에 좋은 소박한 공원에도 운동기구는 빠짐없이 들어서 있다. 하루에 몇 명이나 지나갈까 싶은 산 속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밑져야 본전’이다. 한 달에 딱 한 번 운동기구를 잡아봐도 손해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걸 설치하는데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기구 한 대당 200~300만원 정도이지만, 개중에는 300만원 넘는 것도 있다고 한 공무원은 말했다. 거기에 관리비까지 들어간다. 인적이 뜸한 공한지에 설치된 운동기구 중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녹이 슨 게 많다.

공원이나 놀이터 같은 다중시설에는 적게는 5~6개, 많게는 10개 이상 운동기구가 설치돼 있다. 이렇게 하려면 몇 천만원의 돈이 들어간다. 청주·청원 지역을 모두 합쳐보면 이 또한 큰 예산이다. 청주 상당·흥덕구청에서 집계한 운동기구는 모두 3777개였다. 이것만 따져봐도 75~114억원이다.

지난주 인적이 뜸한 곳이나 공원·놀이터에 경쟁적으로 설치된 운동기구에 관한 고발기사를 내보내자 한 시민은 “관리가 안되고 활용되지 않는 체육시설을 사회복지기관에 전달해 여가활동과 맞춤형 복지에 쓰이도록 하자”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고보면 공원과 산책길의 경관을 오히려 해치고,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천덕꾸러기가 된 기구들을 꼭 필요한 곳으로 옮기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 기초·광역의원들의 재량사업비, 지자체 예산, 기업체 예산 등 각종 예산으로 동네마다 설치된 운동기구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아니, 화가 난다. 머지 않아 시내 곳곳에서 고철 덩어리로 전락한 운동기구들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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