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일 청주직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뇌병변 장애인 이종일(56세·청주직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씨는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를 통해 변화된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소장이 말하는 어제와 오늘이 다른 삶은 단순하다. 정해진 시간되면 밥을 먹어야 했고, 정해진 시간에 생리현상을 봐야 했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망에 의해서 이것을 내 맘대로 하는 것이다. 어제의 기분과 오늘의 욕구가 다른 대로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이 소장은 만 49세 되던 2006년도에 처음으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자립하기 전까지는 올해 83세인 어머니와 함께 탑동의 연립주택 4층에 거주했다. 자립하기 전까지, 이 소장에게 “하늘을 보고, 도로에서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는 바깥 외출은 꿈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몸무게가 40㎏ 정도인 작은 체구였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연립주택이어서 고령의 어머니에겐 천근보다 더 무거운 무게였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창밖을 보며 어머님이 주시는 밥을 먹었다. 친구도 없었다. 그가 사회와 바깥세상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자원봉사자들의 방문이었다. 인연이 된 교회집사님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방문해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수동휠체어를 타고, 길을 걸으며 창문이 아니라 하늘을 보는 것은 살아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49세에 첫 자립생활 시작
그런 그에게 충북장애인권연대(현 충북장애차별철폐연대)와 만남은 전환점이 됐다. 이 단체에서 2006년에 진행한 ‘장애 홈스테이’ 체험행사에 참여했다. 만 49세에 처음으로 집을 나와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3일 동안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 보고 그 물건으로 요리를 해서 식사를 했다. 본인이 가고 싶은 곳을, 비장애인들과 그날그날 결정해서 같이 거리를 누볐다. 만49세에 처음으로 경험해본 자립생활의 경험은 놀라웠다.
태어나서 1번도 학교에 가본 경험이 없는 이 소장은, 인권연대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장애인 야학 ‘다사리’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단 2달 만에 검정고시 초등시험에 합격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 끝에 현재는 방통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기 까지 이르렀다. 자신감이 생긴 이종일 소장은 과감히 결단했다. ‘자립’을 결정한 것이다. 인권연대의 도움을 밑바탕 삼아 용암동 주공아파트에서 첫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이 소장은 이때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이전까지 매일 똑 같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자립생활을 시작하고 전동휠체어를 가지고 내가 오늘 가고 싶은 곳을 정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간다는 게 너무나 행복했다. 하늘을 보고 싶으면 나가면 되고, 나가기 싫으면 안 나가면 된 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난생 처음 나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활동보조 없으면 시간도 정지
2008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제도가 시작됐다. 인권연대의 도움이 아니라 이제 떳떳하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또 다른 자립생활이 시작됐다. 활동보조인과 전동스쿠터는 이 소장이 자립생활을 영위하는 쌍두마차다.
그러나 그에게도 현재의 활동보조서비스제도 또한 반쪽이다. 충북에서 가장 많은 매월 32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받는 그였지만 활동보조인이 없는 시간은 여전히 두렵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12시간을 받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팔순을 넘긴 어머니가 오신다. 그에게 이 시간은 다시 정지된 시간이다. 본인 뜻대로 무엇인가를 할수 없는, 고 김주영 씨를 죽음으로 내몰지 모를 두려움의 시간이다.
“혼자서 생활하는 자립생활보다, 장애인시설이 더 안전하지 않냐”고 물어봤다. 이 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외출하고 싶을 때 외출할 수 없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매일 똑같은 생활이 싫다”고 했다. 무섭고 때론 외롭지만 자립생활은 이 소장이 인간임을 느끼는 유일한 활력이란다.
이 소장은 “활동보조시간이 좀 더 늘어나서 더욱 안전한 자립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일 소장의 詩
구월의 시
구월에 그대가 오는 날에는
산초 검붉게 익는 둑 아래
하늘이 가라앉는 강물이
그대가 바라볼 강이라면
애달픈 시라도 띄우겠노라
구월이 그대를 맞는 날에는
어렴풋한 먼 그리움에
억새풀 몸 비비는 길섶이
그대가 지날 길목이라면
서글픈 시라도 뿌리겠노라
구월이 영그는 날에는
풀잎을 스치는 바람목이
그대가 지날 고샅길이라도
잊혀질 마음 가다듬고
초름한 시라도 쓰겠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