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중 귀농인 조례 최초 제정한 강진군…40년 만에 인구증가
주택수리비 및 빈집 정보 제공, 영농정착지원금 최대 2000만원까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강진군을 ‘남도답사 1번지’라 칭했다. 지난 16일 방문한 강진군에서도 손쉽게 남도답사1번지라는 글귀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최근 강진군은 남도답사1번지에서 귀농1번지로 변화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중 귀농자 지원조례를 가장 먼저인 지난 2007년 5월 제정한 강진군은 매년 귀농인구가 늘고 있는 지역이다. 충청북도의 귀농인 지원 조례가 2010년 1월에 제정된 것과 비교한 하면 매우 빠르면 조치다.

전라남도 다른 지자체인 장성군과 나주시, 곡성군, 해남시, 장흥군도 귀농귀촌인구도 빠르게 늘고 있지만 아직은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강진의 인기만큼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곳 농업기술센터의 판단이다. 강진군의 귀농업무는 강진군농업기술센터가 맡아서 하고 있다.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귀농한 인구는 조례가 제정된 2007년 17가구를 시작으로 매년 증가추세라는 것이 담당자의 말이다. 강진군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2008년 66가구 166명에서 2009년 113가구 308명, 2010년 101가구 292명, 2011년 114가구 294명 등 귀농을 택했고 올해는 지난 7월까지 70가구 181명이 강진군에 정착했다.

▲ 강진군이 남도답사 1번지에서 귀농 1번지로 변화하고 있다. 강진군의 적극적인 귀농인유치를 계기로 40면만에 인구가 증가하기도 했다.

김희복 강진군농업기술센터 인력육성팀장은 “지난 2007년 인구 배가운동의 일환으로 귀농자지원조례를 제정하는 등 귀농인 유치에 적극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강진군은 인구가 1967년 최고 13만명의 인구를 나타내던 때도 있었으나 지난 2002년 5만 명이 무너진 뒤 2008년에는 인구 4만명 선을 위협받기도 했다. 계속 해서 줄기만 하던 강진군의 인구는 40년만인 지난 2010년 소폭 증가추세로 접어들었고 현재는 4만 2000명 선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증가에는 강진군의 적극적인 귀농인유치가 한몫했다는 평가다.

빈집 DB 소진할 정도…
귀농을 희망하는 이들 사이에서 강진군이 인기지역으로 거듭나게 된 배경에는 영농정착지원제도와 귀농인 주택수리비지원제도의 힘이 컸다. 강진군은 지난해까지 귀농인들에게 3000만원을 보조해주는 사업을 폈다. 이 사업이 한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며 강진군에 이사오면 3000만원을 준다는 식으로 소개돼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현재는 2000만원으로 금액이 줄어든 상태다. 이 같은 지원은 국비나 도비 지원없이 100% 강진군 예산으로 진행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강진군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지원이다. 귀농 영농정착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64세 이하 가족단위 구성원이 귀농해 농업인 자격을 취득하고 전입 후 5개월이 지나야 신청이 가능하다. 단순히 20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아닌 영농자금을 보조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지원정책은 귀농인 주택수리비 지원이다. 5년 이상 임대한 농촌주택이나 전입전후 매매한 농촌주택을 수리하고자 할 때 500만원까지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와 동시에 강진군농업기술센터에서 군 내 빈집정보를 수집, 귀농인들에게 소개해 주기도 한다. 현재는 수집한 강진군 내 빈집을 모두 소진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또한 미처 주택을 구하지 않은 농가들에게는 6개월 간 ‘귀농의 집’이라는 임시숙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빈집알선’은 담당 공무원이 직접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과 군내를 누벼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이러한 정성이 쌓여 결국 많은 귀농가구를 유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 김희복 팀장의 말이다.

김 팀장은 “아직까지 기술센터를 통해 귀농한 사람 중 적응하지 못해 돌아간 사람은 없다. 기술센터에서 매월 귀농인연구회와 평가회를 지원하는 등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귀농, 전원생활을 생각했다면 큰 코 다칩니다”
강진군에 귀농한 김충근씨

멀리 두륜산과 월출산이 보이고 반대편에는 강진만이 굽어보이는 곳. 지난 2010년 10월 강진군으로 귀농한 김충근(45)씨가 살고 농사를 짓는 주변의 풍경은 가히 절경에 가깝다. 가끔 농사일을 쉴 때 주변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김씨는 현재 열무와 고추, 블루베리와 함께 오리를 사육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귀농하기 전까지 살아온 김씨는 귀농컨설팅과 온라인교육 등을 받으며 약 4년간 착실하게 귀농을 준비해왔다. 많은 준비를 했지만 아직까지 농사일은 힘에 부치기 마련이다.

김씨는 “귀농학교에서 교육받을 당시 졸업생이 120명이었다. 하지만 실제 귀농한 사람은 10명이 되질 않는다”며 귀농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강조했다.

김씨는 충남 공주와 경북 영주 등 다양한 도시를 둘러봤지만 결국 강진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강진군의 귀농정책에 호감이 갔고 전임 군수와의 면담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강진군농업기술센터 신창민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김씨는 “귀농은 전원생활이 아니다.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한다. 마을주민과의 화합도 중요하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마을주민과의 화합에 실패하면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주민들과 쉬이 친해지지 못했지만 현재는 원주민들과의 오해를 극복하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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