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표 편집국장

반전은 6학년이 돼 새로운 담임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새 담임은 급장 선거에서 몰표를 받은 석대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일제 고사 성적이 발표되던 날 석대의 비밀이 낱낱이 드러난다. 시험지 바꿔치기를 통해 높은 성적을 얻었음이 밝혀지는 것이다. 석대의 권력은 그렇게 선생님의 매에 의해 무너졌다. 김이 빠진 것은 작품의 말미다.
세월이 흘러 사설학원 강사로 자리를 잡은 병태가 휴가를 얻어 강릉으로 가는 길에 기차를 탔는데 거기에서 사복형사에게 붙잡혀 수갑이 채워지는 잡범(雜犯) 석대와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초등학교가 당시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면서도 ‘일그러진 영웅’의 최후는 너무 보잘것없었다.
당시 일그러진 영웅들은 국민 위에 여전히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석대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무너진 것도 그에게 도전했던 병태도 다수의 학생들도 아닌 담임의 매에 의한 것이었다. 이문열의 소설은 그만큼 허무하다. 책을 읽는 중간에는 담임에게 고자질하는 병태의 행위는 정당한 것인가라는 의식의 혼란에 빠졌을 정도로.
사실 역사의 흐름을 뒤바꾼 일대의 사건은 폭로에서 시작됐다. 우리사회는 석대가 급장으로 있던 그 교실처럼 권력의 씨줄과 날줄로 짜여있고 우리 모두는 그 구성원이다. 공직사회든 사기업이든 위계가 없는 조직은 없다. 그리고 속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연히 그 조직의 구성원들이다.
1990년 공무상 기밀누설혐의로 구속된 이문옥 감사관은 재벌의 로비로 감사원의 감사가 중단된 사실과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비율이 은행감독원이 발표한 1.2%보다 훨씬 높은 43.3%에 달한다는 것을 언론에 제보한 내부고발자였다.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및 불법로비 사건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도 양심고백 이전까지는 협조자였다. 어떤 폭로는 서로 짝짜꿍이 되어 일을 도모하다가 갈등관계가 형성돼 다른 일방을 궁지로 몰아넣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정의와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이 역시 역사발전에 순기능을 하는 폭로임이 분명하다. 폭로의 주체가 상대적으로 약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지난 호 기사에서 한때 자신이 정치적 멘토로 따랐던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관련한 각종 불·탈법 비리를 폭로한 손인석 전 새누리당 청년위원장도 그런 경우다. 그는 자신이 청년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당의 불법선거에 가담한 사실까지 털어놓았다.
그는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된 상태이며, 일련의 폭로가 향후 법적쟁송에서 유리할 리도 없다. 다만 폭로의 기저에 정치지망생으로서 최소한 자신이 잘못 배운 정치에 대한 반성은 깔려있으리라 믿는다. 그러고 보면 고자질과 폭로의 차이는 권력에게 일러바치느냐, 아니면 국민에게 드러내느냐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