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흥덕구 주공아파트 공용공간에 행복 우물을 판 ‘함께 사는 우리’ 이야기
2009년 비영리단체 결성, 아파트 4개단지 스며들어 8명 상근

옥천 보따리장수 권단의 풀뿌리 이야기

사는 집은 어느새 그 자체로 계급이 되었지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너무도 적나라한 롯데캐슬의 몰상식한 광고도 있잖아요. 부끄럽고 부끄럽지만 그런 걸 모르는 세상이 된 건지도 모르지요. 적은 평수,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짓는 주공아파트라는 이름은 요즘 시대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멍에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사는 곳을 왜 부끄러워야 하는지 참 모를 일이지요.

▲ 성화동 주공아파트 5단지의 공용공간이 함께 사는 우리의 거점이다. 다양한 물감을 얹어 놓은 ‘파레트’가 그곳의 명칭이다. 파레트 도서관에서 모인 상근자들만 모여서 찰칵.

“작은 평형 아이들과 섞이기 싫다. 주공아파트 아이들이 들어오면서 학군관리에 실패해 교육여건에 대해서는 다른 아파트에 다소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 아이가 평범한 아이들과 같이 놀게 할 수 없다’”
이는 지난 5월12일자 헤럴드 경제라는 신문에 ‘학군관리 실패로 명성퇴색-아무리 멀어도 좋은 학교 찾아 삼만리’라는 기사에 나온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강남의 부촌 타워팰리스 학부모들 이야기를 다룬 내용입니다. 이것이 비단 강남만의 일일까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너무도 담담하게 이 소식을 다룬 언론은 무엇일까요? 안타깝고 안타깝지요.

어느 한 신문기사를 더 찾아볼까요? 대전 유성에는 주공아파트가 있는 곳에 민영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원래 아파트 단지 이름에서 다른 이름으로 바꿨답니다. 주공아파트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그랬다는 군요. 주공임대아파트와 차별화를 꾀해 가격상승을 꾀하기 위한 속사정이 있다고 기사는 분석했습니다. 2007년 일이지요. 오마이뉴스 기사인데 그 멘트를 한번 다시 인용해보겠습니다. 임대 주공아파트 사는 오아무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안 그래도 같은 학교 학생들간에 주공아파트 거주 아이들을 임대로 불러 차별하고 있는 상태에서 아파트 이름까지 바꿔 이를 심화시킨 이웃 주민들의 처사에 가슴이 아프다”

또 다른 김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인 아이가 예비소집일에 아파트 단지 이름 앞에서 줄을 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같은 사람을 민영과 임대로 나누고 임대아파트마저 혐오시설 취급하는 사회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아! 어찌해야 할까요? 이렇게 답답하고 안타깝고 분개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우리 주변에 이웃에 상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거기서부터 풀어내려 합니다. 오늘의 풀뿌리 이야기는 주공아파트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마음의 꽃을 피워내려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 수익사업으로 효소 판매도 하고 있다.

함께사는 우리, 주공아파트 이야기

청주 흥덕구 성화동, 죽림동, 개신동에 스며든 ‘함께 사는 우리’라는 단체 이야기입니다.
주공아파트 공용공간은 잘 사용이 안 되지요. 방치되기 일쑤지요. 돈 많은 아파트야 초기 건축단계부터 커뮤니티 공간입네 하며 도서관, 수영장, 영화관, 헬스장 등 삐까번쩍하게 만들어 놓지요. 아파트 안에 학교까지 있다보니 그네들만의 커뮤니티가 자연스레 형성되지요. 그런데 어디 주공아파트 그렇습니까?

특히 분양이 아닌 30년 임대 주공아파트의 경우에는 사실 정주의식이 별로 없지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흐르는 그런 불편하고 부끄러운 기류때문에 아이들이 크면 다른 곳으로 이사가려 하는 곳이지요. 학교 가기 전에 말이에요. 그렇게 이사 갈 사람 이사 가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요.

주민자치라는 말이 참 좋긴 한데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버거운 걸요. 공용 공간에 신경쓸 여유가 없지요. 300세대 이상 아파트에는 공용공간을 만들어 놓으라고 법으로 정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만들기 하는데 그 법이 설치하라는 규정은 강제했는데 운영하라는 규정을 강제하지는 않았다네요.

그러니 얼렁뚱땅 만들어놓고 그냥 내방쳐 두는 게 일쑤지요. 주변의 아파트를 살펴보셔요. 헬스기구 몇개 갖다놓고 새마을문고랍시고 읽지도 않는 옛날 책 몇권 갖다 놓고 흉내만 내고 이용 안 한다고 자물쇠 걸어잠그기 일수일 걸요. 그랬지요. 남아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일어설 힘도 빠듯했고 협동할 힘도 여의치 않았지요.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스며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투를 조금 바꾸겠습니다. 다음은 ‘함께사는 우리’가 결성되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삶과 교육’ 고민하고 실천하기까지

다른 것은 필요없었다. 하고 싶은 의지를 모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그러면 어떻게 실천할까? 논의는 이 지점까지 모아졌던 것 같다. 때마침 주공아파트가 곳곳에 세워졌다. 영구임대주택이나 다름없는 주공아파트에는 9평. 15평 조막만한 그 공간에 둥지를 튼 가족들은 따뜻한 둥우리에 감사했지만 매일 새벽별보고 달맞이하기에 바빴다. 임대주택이라 입주자 대표회의 하나없이 모일 수 있는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루살이 인생에 여력도 없었다.

▲ 성화 청개구리 지역아동센터에서 재미나게 노는 아이들.
그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 그런 지역에 대한 고민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 모였고 교육과 문화로 이를 극복할 수는 없을까 수차례 이야기 했다고 했다. 이름하여 ‘삶과 교육’. 이 단체는 청주 청원에서 지역 교육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온 단체였다. 그 단체는 2009년 현장 실행 실천조직으로 ‘함께사는 우리’라는 비영리단체를 세상에 나오게 했다. 지역에 대한 고민이 뭉쳐지고 뭉쳐져 험한 산고끝에 나온 것이다.

이 단체는 새로 지은 주공아파트의 공용공간을 활용하기로 하고 주공과 관리사무소를 차례로 두드리고 대화했다. 공용공간을 공간만 제공해주면 스스로 운영하겠다고 한 것이다. 운영비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떻게든 운영해보겠다고 한 것이다. 관리사무소나 주공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법적으로 만들어야 할 공간. 그대로 놓아두면 방치될 터인데 스스로 운영해준다니 얼싸 좋다 했겠지. 그네들은 그렇게 스며들었다.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4단지, 성화동 1,4단지, 죽림동 5단지에 말이다. 이 곳은 30년 임대 주택으로 9평, 10평, 15평의 규모가 전부다. 도시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어렵게 안착한 곳이다. 홀로 사는 노인, 돈 없이 독립적인 삶을 시작한 신혼부부,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 각각의 인생에 험난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 곳이라 했다.

이들은 함께 살자 외쳤고 함께 살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먼저 지역아동센터와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직접 목재를 구해 와 책장을 만들고 작은 도서관. 청주 도서관 등에서 책을 기증받았다. 교원대 미술교육과에서 멋진 벽화도 그려주었다. 다행히 아파트 관리소장과 토지주택공사에서도 전향적으로 마음을 열고 도와주기도 했다. 이렇게 얼키설키 엉성하지만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

그렇게 4개 아파트 단지에 스며들었고 상근자가 무려 8명이나 됐다. 돈 벌자고 한 일이 아니었다. 이들의 지나친 낙관과 신념은 그들을 지금까지 서게 만들었다. 최저 임금을 감수하면서 각종 재단에 응모해 비용을 받아 일부 인건비를 보조했다. 꿈꾸었던 것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성화, 개신, 죽림동에 공공성을 심다

무에서 유를 만들었고 백지장에 같이 더불어 그림을 그렸다.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 개신동 죽림동에 높다란 콘크리트 주택이 정감없이 들어섰으나 이들은 누구나 언제나 들려 목을 축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우물을 파냈다. 아이들이 먼저 왔고 주민들도 따라 왔다. 좀 더 일해 좀 더 큰집으로 가려고 정붙이지 않은 주민들이 이제 삶의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정을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는 삼주년 기념 마을축제도 10월13일 열린다.

▲ 함께하는 우리 대표 박만순씨
‘함께 사는 우리’ 박만순 대표를 지난 17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충북 대책위 대표’를 맡아 우리나라의 굴절된 현대사를 기록하는 것을 자임했던 박만순씨는 역시 궂은일을 또 찾아나섰다. 그는 돈은 안 되지만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지난하게 일치시키며 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박만순 대표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이 곳은 정주의식, 주인의식이라는 것을 기대하기 많이 힘들었지요.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잖아요. 이사가라고. 여기는 오래 머물 곳이 아니라고 말이지요. 그런 인식들이 사방팔방 벽으로 둘러쌓여 있지요. 이 벽을 허물고 이곳도 뿌리내리면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었지요.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 더 좋은 곳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는 정확히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이리 말하는 듯 했다.

“일단 후원회를 통해 매달 삼백여만원을 받아요. 근데 이것으로는 턱없지요. 아무리 최저임금을 준다해도 여덟명 인건비를 주려면 한 달에 1000여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참 지난하지요. 근데 다 각자 주체가 되어 어떻게든 지속가능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제 주민들이 마음을 열었으니 곧 그럴 날이 오리라 생각해요. 우리도 여기로 이사오려는 활동가도 있고 주민들 사이에서 활동가가 나오길 바라지요”

그는 상록수를 꿈꾸는 계몽 활동가는 아니었다. 이 곳의 자리가 바로 여기 사는 주민들의 자리라는 것을 언제든 그리고 반드시 주민들이 주인이 되서 자립해 운영해 갈 날을 꿈꾼다면서 주민들을 만나고 있었다.
박만순 대표의 이런 바람은 멀지 않아 실현될 듯도 하다.

▲ 박만순씨가 도서관과 공부방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월 주민사서양성을 위한 도서관학교에 오십여명의 주민이 모여 10회 동안의 교육에 몇 사람 안 빠지고 수료를 다했단다. 또 가경동 4단지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서관을 운영하기로 했고 각종 사업에 사업비를 받더라도 공동운영경비로 쓰자고 의견을 모았단다.
마음에 하나둘씩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방문한 성화 청개구리 지역아동센터에 아이들의 얼굴이 유난히 환하다. 태풍이 비를 잔뜩 몰고 온 오후 임에도 아이들의 얼굴은 활짝 개어있다. 다연(성화초1)이와 하나(성화초5)가 서로 볼을 잡아당기며 즐겁게 장난을 치고 하우리(성화초2)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공책에 무언가를 몰입해 쓴다. 이들을 바라보는 수빈이도 참 즐겁다. 이 아이들 많이 이런 것들이 생기지 않았다면 어디에 가 있었을까?

‘함께사는 우리’의 성원으로 청개구리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박정은(31)씨가 말한다.

“마음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한 일이지요. 이제 지역아동센터도 올해 10월이면 만 2년이 되어 지원금을 일부 받을 수 있지요. 숨통이 조그나마 트인 거지요. 아이들 매일 29명이 와서 간식과 저녁도 여기서 먹고 가요. 같이 놀고 공부도 하구요. 이렇게 스스럼 없이 노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흐뭇하고 뿌듯하지요.”

빼곡한 콘크리트 건물에 화수분 같은 우물하나 떡 하니 생기더니 목을 축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촉촉한 수분 귀하게 받아 사람들은 그 꽃을 오래오래 피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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