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충청리뷰대표

진실은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지만, 애초 정치자금 수수의혹이 드러난 과정이 흥미롭다.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인의 자가용 운전자가 중앙선관위에 제보했다는 것. 5000만원 현금 뭉치를 사진까지 찍어 신고했다니 내부고발자의 위력(?)이 새삼 느껴진다.
지난 8월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현재 무소속)이 공천 대가로 돈을 뿌렸다는 의혹을 중앙선관위에 제보한 신고자도 수행비서 겸 운전기사였다. 운전기사는 주군의 동선을 누구보다 잘아는 최측근이다. 전화통화 내용까지 엿들을 수 있으니 가장 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 부정한 금품을 전달할 때는 유일한 목격자가 될 수 있다.
특히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부당거래’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입장이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로비스트 박모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것도 “내가 직접 골프채 2개와 골프세트 1개, 골프가방을 전달했다”고 말한 박씨의 운전기사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운전기사의 양심선언이 아니라면 도저히 밝혀질 수없는 은밀한 불법행위, 따라서 이들의 제보는 수사기관 입장에선 영양가 99%의 최고급 정보인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제보를 사법기관에서 외면하면 ‘달보고 짖는 개’ 꼴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충북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박덕흠 의원이 4·11 총선 이후 운전기사 박모씨에게 건넨 1억원에 얽힌 수수께끼다. 박의원이 대표로 재직 중인 W업체 소속이었던 박씨는 4·11 총선을 앞두고 회사를 휴직, 자원봉사자로 박의원 카니발 승용차를 몰다 지난 6월 퇴직했다는 것.
그러자 박 의원은 퇴직 전후인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5000만원씩 1억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씨는 총선 이후 야당 후보의 운전기사 오모씨와 술자리에서 “총선 승리 대가로 1억원을 받았다. 박의원의 불법 정치 자금 내용을 수첩에 적어 놨다”는 등의 얘기를 오씨에게 털어놨고, 오씨가 이를 녹취해 검찰에 넘겼다는 것. 하지만 검찰은 선거법 위반 사범 공소시효 한달을 남겨둔 시점까지도 결론을 못내리고 있다.
최근 선거법위반 혐의로 구속된 새누리당 청주권 총선 예비후보 S씨의 운전기사도 놀라운 고백(?)을 했다. 2년전 지방선거때 도지사 후보의 최측근이었던 S씨가 지방의원 후보자들에게 1000만원의 돈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본보에 상세히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혐의없음으로 내사종결했다.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되나”라는 S씨의 독백까지 보도했지만 수사는 한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운전기사를 두고 생활할 정도면 최고위급 공직자이거나 잘나가는 기업의 대표 또는 임원급이다. 한국사회의 명망가로 존경과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결국 운전기사에게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분간을 못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