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이웃, 원수로 만든 구도심 정비사업

2020 청주시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안’을 수립중인 청주시가 현재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된 구도심 13곳에 대해 해제할 방침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주시 관계자는 “현재 용역을 의뢰한 상태며 해제 예정지역 주민에 대한 설문까지 마쳤다”고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사진/육성준 기자
90년대 전국적인 흐름이기도 했던 재개발·재건축 바람은 청주를 휩쓸었다. 그 사이 뿌린대로 거두는 노동의 신성함과 자연의 엄준함을 일컫는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은 부동산 투기의 지침이 됐다.

벼락부자들이 넘쳐났다. 청주 외곽에서 1000여평 농사를 짓던 농부가 10억대 부자가 되는 일이 평범하게 느껴졌다. 이런 간접 경험들은 재개발 예정지구 주민들로 하여금 재개발만 되면 금방이라도 부자가 될 것이라는 헛된 꿈을 갖도록 만들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청주지역에는 38개 구역이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급변했고, 더 이상 재개발은 재산증식의 확실한 방법이 아니다. 개발조합이 설립되고 시공사만 선정되면 금방이라도 큰돈을 손에 쥐는 재개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조철주 청주대 교수(도시계획학과)는 “청주시가 38개 구역을 지정한 것이 정말로 서민들의 주거환경이나 주택 취득의 기회를 높여주기 위한 정책이었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재개발 정책은 투자 목적으로 구도심 주택을 구입한 자산가와 개발업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청주시는 예정지구로 지정된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추진위조차 구성하지 못한 13개 구역에 대해 해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추진위가 구성됐거나 더 나아가 조합설립 인가까지 마친 나머지 20여곳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그 이유는 주민들이 재개발을 원하고 주민 스스로가 진행하는 민간개발이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청주시가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긴 한 것일까. 개발사업 진행에 필요한 주민 75% 동의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30년 이웃, 원수로 만든 구도심 정비사업
주민 간 갈등 고조…사모 2구역

▲ 40년이 지난 이 집은 담장이며 옥상이며 손볼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 부술지 모를 집에 돈을 들일 수 없어 담장은 철사로, 비가 새는 곳은 비닐로 임시방편만 해놓았다. 사진/육성준 기자
청주지역 38개 도시·주거환경정비사업 구역 곳곳에서 주민간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사직동 국보제약 골목에서 모충동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우측에 위치한 사모 2구역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수년 사이에 인접마을에는 3599세대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섰고, 이 곳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2007년 추진위가 구성됐다. 하지만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조합설립인가까지 순조롭게 진행됐던 사모2구역은 만 3년 동안 시공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시나브로 주민들 간의 반목과 갈등은 커져갔다.

최근에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청주시의 직권으로 재개발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주민은 “처음에는 다 잘될 줄 알았지. 다 쓰러져가는 50평짜리 집을 내주면 30평짜리 아파트를 준다고 하기에 그런 줄만 알았지. 헌데 지금 보니 조합이 추진하는 대로라면 셋방살이도 못하고 쫓겨날 판이야”라고 말했다.

주민 반대 동의 38% 넘어
취재진이 마을을 찾아간 21일에도 법원의 판결문 한 통이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신 모씨의 집에 도착했다. 내용은 500만원을 조합관계자인 원고에게 지급하라는 명령. 신 씨가 2010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조합사무실을 찾아가거나 전화로 조합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남의 재산 훔쳐 먹으려는 사기꾼”들이라며 폭언을 해 조합사무실 관계자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취재진을 만난 신 씨는 “재개발 돼봐야 마을사람들이 얻는 혜택은 아무것도 없다. 조합이 감언이설로 주민들을 농락한 것이다. 결국 그들의 뜻대로 된다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성난 얼굴로 조합사무실로 향했다.

사모 2구역 반대주민들은 2009년에도 조합설립 인가 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원고 패소하기도 했다. 주민 권해방(68) 씨는 “조합장은 재개발이 추진되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사이다. 하지만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으로 나눠져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사모2구역은 1036세대가 모여 살고 있다. 이 가운데 75%의 개발 동의를 받아 추진위가 구성됐고, 조합이 설립됐지만 반대모임에 따르면 38%의 반대 동의를 받았다. 반대모임의 주장대로라면 당초 찬성했던 조합원 가운데도 13%가 반대로 돌아섰다는 계산이 나온다. 반대모임 강소원(68) 씨는 “언제 될지도 모르는 개발때문에 집수리도 제대로 못하는 집들이 허다하다. 간단한 수리야 가능하지만 큰 공사는 법의 제한때문에 할 수도 없어 많은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셋방살이 11번만에 장만한 ‘나의 집’
아내는 30년 이웃과 노래방에, 10원 짜리 화투도

강소원(68) 씨는 요즘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누가 무엇하나 주는 것도,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지만 열심이다. 경기도에서 공무원을 하다 청주시청으로 옮겨와 청주에 터를 잡은 강 씨는 청주생활 10년만에 집을 장만했다. 이곳에서 자녀들 시집, 장가를 보내고 지금은 부인과 단둘이 생활하고 있다.

강 씨는 “이 집을 얻기까지 11번이나 이사를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재산가치도 없는 오래된 집이지만 나에게는 보물 1호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2평 남짓한 화단을 가꾼다. 40년이 다 되어가는 집은 곳곳에 페인트칠이 벗겨졌지만, 실내는 신축 아파트 못지않게 깔끔했다. 옥상은 파란색 방수자재로 코팅을 해 더 이상 물이 새지 않는다.

강 씨는 “이제와서 어디로 옮겨가나.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도 그렇고…. 또 이 집은 내 힘으로 처음으로 장만한 집이고, 30년을 살아온 집이다. 아내는 30년 이웃들과 모임을 만들어 노래방이며, 10원짜리 화투판이며, 즐겁게 지낸다. 이대로 살고 싶다”고 바람을 말했다.

 

“우린 행복한데…우리가 불행해 보이나요”

‘나서는 자’ ‘막는 자’ 사직3구역

아파트는 중산층, 개인주택은 빈민층?…이상한 논리
대부분 30년 이상 거주한 토박이…“떠날 생각 없어”

▲ 사직3구역 재개발 반대저지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김영선 씨. 김 씨의 집에는 가족의 역사가 30년 세월동안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무심천을 앞에 두고 멀리 우암산이 올려다 보이는 사직 1동은 예부터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이미 사직 1동의 한 축은 무너졌다.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추진되고 있는 사직4구역은 곳곳이 쓰레기더미가 쌓여있는 폐가로 변해버렸다. 부지를 매입한 랜드마크홀딩스는 재산권 행사를 위해 멀쩡한 집의 절반을 허물고 출입구를 막아버렸다. 흉물스럽게 폐허가 돼버린 곳곳에는 어디서 나왔는지 쓰레기만 수북이 쌓여있었다. 쓰레기가 내뿜는 악취는 한여름 무더위까지 더해져 불쾌지수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재개발저지위원회 ‘발족’
인접한 사직3구역은 개발을 코앞에 둔 사직4구역과 달리 2008년 12월말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추진위가 조합설립 인가를 받기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마을은 아직 달라진 게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훼손되지 않았다.

연초부터는 지금의 개발방식에 문제를 인식한 주민들이 재개발을 막기 위해 하나둘 뜻을 모으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사직3구역재개발저지위원회’를 구성하고 동사무소에서 발족식도 가졌다. 발족식에 하루 앞서 사직3구역을 찾았다.

저지위원회 간사를 맡았다는 김영선(54) 씨는 이 동네 토박이다. 열네 살이었던 40년전 사직1동으로 이사와 25년전 지금의 집으로 옮겨왔다. 취재진을 마주한 김 씨는 매실주스 한잔을 건넸다. 첫째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기념해 마당에 심은 매실나무 열매로 만든 것이라고 한참 자랑을 늘어놓는다.

김 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3대가 25년째 이집에서 살고 있다. 이곳은 우리 가족의 역사”라고 말했다. 매실나무 옆에는 둘째인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심었다는 자두나무와 영동 포도넝쿨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오래된 감나무는 가지가 뻗어 이웃집 2곳을 침범해버렸다. 그 덕분에 해마다 감이 열리면 이웃집에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감을 선물한다.

김 씨의 집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과실나무나 꽃나무가 심어져 있어 ‘어느 시골에 와 있나’하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김 씨는 “전원주택이 따로 있나. 우리 마을은 도심한복판에 있지만 정이 넘치는 시골마을같다”며 “요즘 사람들은 개인주택에 산다고 하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한 논리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신이 보기에도 내가 불행해보이냐”고 취재진에 반문했다. 굳이 취재진의 답변이 필요하다면 단연코 “아니다.”

그늘 생기면 모이는 ‘아지트’
인근 손두원(74) 씨 댁 대문 앞에는 동네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오후 3시쯤 되면 대문 앞에 그늘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때가 우리 모이는 시간”이라며 즐겁게 웃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손 씨의 대문 앞에는 낡은 4인용 의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매일 이곳에서 모여 담소를 나눈다. 

▲ 재개발저지위원회 김영선 간사의 집. 표구사를 운영하는 김 씨의 글 솜씨로 김 씨의 집은 물론 마음이 맞는 인근 이웃집 5곳의 벽에 벽화가 재미있는 글귀를 써놓았다. 사진/육성준 기자
골목 안쪽에는 폐지 등을 사고파는 고물상이 있다. 이 곳 주인인 최용진(57) 씨는 재개발을 막기 위해 앞장서는 사람 중 하나다. 고물상 앞 골목에서는 동네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고, 고물상 한편에서는 “마을을 지켜야 한다”고 설득이 한창이다. 이곳에 사는 노인들은 골목골목, 또 공원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40년간 이곳에서 살았다는 이병태(80) 씨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강단있는 목소리로 “재개발이 되면 원주민은 하나도 정착하지 못한다. 서민들을 위한 개발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때 공직생활을 했다는 서정우(82) 씨는 “15평 연립주택에 아내와 둘이 살고 있다. 자식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고, 개발이 돼서 나아질 것이 없다”며 “이제 얼마나 살지 모르는데, 언제 할지 모르는 개발계획때문에 노후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며 마을이 사라질 것을 우려했다.

10일 발족식을 가진 사직3구역재개발저지위원회는 앞으로 마을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계획이다. 저지위원회는 전체 600여 가구 가운데 현재 100여 가구에서 동의서를 받았고,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 상당수가 재개발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사진/육성준 기자
"오늘은 무슨 이야기 거리가..."

매일 만나는 이웃,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도 많은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30년이상 함께 살아온 이웃들은 가끔 찾아오는 친척보다 가까운 사이. 그들에게 비밀이 없다.

사진/육성준 기자

“장 받아라~ 옛다 멍이다”

마을 골목 한편에서 두 노인의 장기 대전이 벌어졌다. 한나라 붉은말을 잡은 노인이 고수란다. 막걸리라도 걸고 하느냐는 질문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시크하게 “그냥 두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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