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윤이주

우리는 언제나 잊는다. 우리에게 할머니가 있(었)다는 것을.

가뭄 탓인지 기후가 이상한 건지 벌써 한 여름이다. 참기 어려운 폭염에, 노처녀가 그것도 이제 막 실연을 겪은 이 노처녀가 어찌어찌 마련한 숙소를 떠나는 참인데, 우리 할머니, 일을 할 땐 날래지만, 그 외엔 정물이라 그 곁을 스쳐가도 우리 거친 눈에는 안 보이기 십상이다. 무릎 장딴지를 포개 접어 딱 가슴에 붙이고 앉았던 단아한 이 노인네가 지나가는 노처녀에게 말을 붙인다. 마늘 밭 옆에 마련한 평상이랄 것도 없는 평상에 앉아서.

“어디 나가시나? 어디? 읍내?”
이런 비단 같은 목소리가 저 연세에 나올 수가 있구나. 제 텁텁하게 삭은 목소리를 감추며 노처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평상에 삼단 침대 라꾸라꾸처럼 가만히 접혀있는 할머니를 발견한다. 파마 끼가 풀린 커트 머리에 흰색 차양모자, 녹색 모시적삼에 보라색 몸빼바지 차림이다. 평상 아래엔 할머니 샌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읍내 병원에 갈 때나 신을 법한 굽 있는 샌들이다.

▲ 일러스트=조경 국

“네.”
“걸어서 나가려고? 이 볕에?”
“네……. 읍내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 장정들은 삼십 분에도 간다고 하드만.”
“두 시간쯤 걸릴까요?”
“뭐 그렇게나 걸릴라고.”

할머니는 진즉부터 노처녀를 눈여겨보았던 모양이다. 마을에 흔치 않게 노처녀가 들어온 보름 전부터. 마침 노처녀는 할머니의 마늘 밭가에 있는 허름한 간이 농막 같은 집을 골라 숙소로 삼고 있었다. 노처녀가 할머니를 두어 번 지나친 적이 있을 거였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살갑게 말을 붙여오리란 걸 몰랐다.
“잘 다녀와요.”

그 말에 노처녀 눈물이 핑 돈다. 다녀와. 여기로 다시와. 자네가 진즉부터 여기에 있는 줄 알았어. 잘 왔어. 좀 쉬어. 그 말이었다. 그제서야 이 볕에 삼십리 길을 걸어내려 가려는 제 의도에 흠칫 놀라며.

산촌(山村). 굽이굽이 난 길을 노처녀가 내려간다. 길가엔 이미 쇤 엉겅퀴, 아직도 씩씩한 개망초가 여전하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싸리 보랏빛 꽃들, 이미 진즉에 술병에 담아놓은 오디를 아직도 매단 산뽕나무들, 새로 보이는 나리꽃, 말라버려 축 늘어진 산딸기 덩굴, 후끈 달아오른 뱀딸기들, 지지도 않고 오래 피어 있는 애기똥풀의 노란 빛들. 그리고 사진기에도 잡힐 듯한 생생한 바람소리, 새소리가 들려온다. 뻐꾹새 우짖는다. 음뻐국. 호뻐국.

건강이 나빠 귀농한 젊은 부부의 양옥집 앞에 화들짝 피어난 밤꽃들을 노처녀는 지나간다. 그니들이 가꾸는 200평 고추밭과, 그 정갈한 밭가에 심겨 벌써 쑥쑥 키를 키워낸 옥수수를 지나간다.

이 고장은 감자밭이거나 고추밭이거나 마늘밭이다. 이 고장 밭은 다 그렇다. 기계가 오는 값이 너무 그래서 비탈밭을 아직도 소가 간다. 소들은 가끔 차가 다니는 길로도 나서서 그때마다 주인들이 아주 애를 먹는다. 소의 주인 하나가 워워- 소를 달래는 행길도 지나와 노처녀는 잠시 다리쉼을 한다. 등골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싱그러운 솔바람이 그녀의 상한 몸과 마음을 위무한다.

떠나간 그 남자 같은 바람이다. 시원하고 아쉬운.

탈탈대며 올라가던 트랙터가 헉헉 숨소리를 내며 잠시 멈추어 묻는다.

“올라가는 길이면 타시우.”
“아! 저는 내려갑니다.”
노처녀의 대답을 듣고 있는 트랙터 주인의 낯은 이렇다. 이 더위에 제 정신이 아니구먼.
노처녀는 내려간다. 내려간다. 내려가며 바람을 찍고 뻐꾹새를 울음을 찍는다. 가만가만히 흘러나오는 제 읊조림도 찍어둔다.

우리오빠 말 타고 장에 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제가 살던 강마을이 눈에 들어오자 노처녀는 몸이 굳고 마음이 닫힌다. 여기까지 왔다. 이제 어쩔 것인가. 노처녀는 다시 할머니의 배웅을 떠올린다. 그럴 수 있다니! 어찌하면 그토록 자연스러울까. 생로병사. 아직 할머니는 ‘로’일 뿐이다. 잘 주름진 늙음이다. 노처녀는 그런 삶을 알지 못했었다.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 그도 아니면 자폭! 그런 게 노처녀의 팍팍한 삶이었다.

잠깐 한 눈을 팔았다고 그 나이에 연인을 내차놓고는 산속에 스며들어 열흘 넘게 눈물만 짰다. 태어났으니 늙을 것이고 병들 것이고 죽을 것이지만 지금 노처녀는 잘 주름진 ‘로’에 이르기 훨씬 전에 벌써 ‘병’이 깊어 거의 ‘사’에 임박해 있다.

수십 개의 깃발이 펄럭이는 다리에 이르러 노처녀는 다시 노인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는다.

“잘 다녀와요.”
길을 떠나는 처녀에게 할머니는 맑고 순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었다. 다녀오라고. 잘 다녀서 오라고. 다시 오라고. 훌쩍 가지 말라고. 영영 가지는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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