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쇄박물관 개관 20주년, 대한민국의 ‘직지’로 발전시키는 것 관건
박물관 위상 높이고 직지전문가 육성·관련논문 생산 등 과제 절실

  1.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지난 17일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기념행사는 하루 앞서 지난 16일에 있었다.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었던 행사가 그래도 의미있었던 것은 오늘의 박물관을 있게 한 7명 인사들의 공로를 되돌아본 것이다. 이 날 감사패는 기관장이나 지역유지들에게 선심쓰듯 나눠준 게 아니라 요소요소에서 직지의 가치를 발견하고 입증해낸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천혜봉·김영진·김광식·신용석·남권희·남윤성·임인호. 이들의 업적과 성인이 된 고인쇄박물관의 해묵은 과제들을 취재했다.

    ▲ 고인쇄박물관이 대한민국의 고인쇄문화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기관이 되려면 중앙정부의 지원을 끌어내고 고려시대와 직지에 관한 심도있는 논문, 직지전문가 육성 등이 필요하다. 사진은 개관20주년에 열린 사진전.

    현존하는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것을 확인한 뒤 92년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세워졌다. 이후 김현수 청주시장은 고인쇄박물관을 증축하고, 나기정 시장은 2001년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한다. 9월 4일 이 날을 기려 만든 것이 ‘직지의 날’이고 격년제로 직지축제를 열고 있다. 또 한대수 시장은 2004년 유네스코와 공동으로 ‘직지상’을 제정해 격년제로 시상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남상우 시장은 흥덕사 주변 일대를 직지문화특구로 지정하고 현재 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럼 한범덕 시장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직지 원본을 빌려 청주에서 전시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반재홍 전 고인쇄박물관장과 황정하· 학예연구실장은 프랑스국립도서관을 방문하고 이같은 뜻을 타진했다. 현재는 도서관측에 직지 단기임대에 관한 서류를 제출하고 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올해 20세가 된 고인쇄박물관이 직지의 세계화를 실현하려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가장 중요한 게 국가의 지원을 끌어내는 것이다. 직지는 청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기 때문. 그래서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와 직지의 중요성을 제대로 담아 초·중·고 교과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이를 널리 알리자는 것이다. 아직도 금속활자 발명술을 수많은 발명술 중의 하나로 밖에 인식하지 않는 중앙정부를 움직여 고인쇄박물관의 위상을 대폭 높여야 한다는 게 많은 사람들 얘기다. 남윤성 청주MBC 편성제작국장은 “독일정부는 지난 2005년 부시 미국대통령을 구텐베르크박물관이 있는 독일 마인쯔시로 초청해 양국정상회담을 했다.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지만, 구텐베르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을 보고 느낀 게 많았다”고 말했다.

    국제행사 있을 때만 직지가 대표상품?
    지난 2005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당시 한국은 주빈국으로 초청을 받았다. 이 때 정부가 가지고 간 것이 직지였다. 전세계 문화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에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직지였고, 고인쇄박물관팀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자 이럴 때만 직지를 찾느냐는 불만들이 지역에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모 씨는 “정부차원의 획기적인 지원이 없는 한 고인쇄박물관은 청주의 박물관 역할 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직지문화협회 등을 통해 어떻게 해서라도 정부가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예산이 없어 쩔쩔매는 청주시가 고인쇄박물관에 쓰는 1년 예산은 인건비와 운영비·사업비 등을 합쳐 40~50억원 정도. 게다가 지난해부터는 유물 및 도서구입비가 아예 없다.

    그리고 직지전문가에 관한 문제다. 직지가 우리나라 역사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서양의 금속활자 인쇄술과는 어떻게 다르며,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 등에 관한 석·박사 논문 하나가 없다. 김성수 청주대 교수는 오래전부터 직지에 대한 학술연구용역 축적을 직지세계화 전략을 위한 정책적 제언으로 내세운다. 황정하 학예연구실장은 “국내에 서지학 전공자들이 20여명 밖에 안된다. 그래서 2020년이면 퇴직하고 학계에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누가 직지나 고인쇄문화에 대해 연구를 할 것인가”라고 걱정했다.

    또 직지가 어떻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고, 한국이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논문도 없다. 언론보도와 구전돼 오는 얘기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故 박병선 박사가 ‘직지 代母’로 과장되게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서지학자와 고인쇄박물관 측의 얘기다. 박물관 측은 이번에 박병선 박사 사진전을 열면서 ‘代母’라는 표현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직지 실물을 사진으로 찍어 한국에 가져온 공로는 인정하지만, 직지를 혼자 발굴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 대한 정확한 논문이 있어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오늘의 ‘직지’를 만든 사람들

    ▲ 천혜봉
    천혜봉 교수 - 박물관 이름짓고 직지해제 작성
    서지학계의 권위자인 천혜봉(86)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개관당시 박물관 이름을 짓고 전시관내 각종 설명문구까지 일일이 자문했다. 당시 ‘충북도 흥덕사지관리사무소’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박물관에 “청주에서 한국의 고인쇄문화를 다 다루라”며 고인쇄박물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박병선 박사의 공로는 72년 프랑스에서 직지 원본을 사진으로 찍어 한국에서 영인본을 발간하고, 학자들이 직지를 연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반해 천 교수는 ‘고려금속활자와 직지심체요절’ 등 여러 편의 논문을 남겨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는 박 박사가 가져 온 사진이 청와대를 거쳐 문화재관리국으로 넘어오자 여러 학자들과 연구한 끝에 직지 하권에 대한 해제를 썼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직지에 대한 상식은 그의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또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금속활자장’이라는 인간문화재를 신설해 직지활자를 복원하는 장인을 탄생시켰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청주시로부터 어떤 상도 받지 못했다.

    ▲ 김영진
    김영진 교수 - 직지 청주에 첫 선, 흥덕사발굴 지휘
    김영진(75) 청주대 명예교수는 직지를 발간한 흥덕사가 청주 운천동에 있는 바로 그 흥덕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공은 서지학이 아닌 민속학이지만, 직지와는 인연이 깊은 학자다. 김 교수는 지난 75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갔다가 영인본으로 된 직지를 발견하고 처음으로 청주사회에 직지의 존재를 알렸다.

    이후 김 교수는 운천동 택지개발이 이뤄지자 청주대 박물관장이면서 흥덕사지발굴단장으로 연당리사지발굴조사를 지휘한다. 발굴팀은 흥덕사라는 절터를 확인하기 위해 고생하던 중 포크레인에 찍힌 금구조각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갑인오월일 서원부 흥덕사 금구일좌(甲寅五月日西原府興德寺禁口壹坐)’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당시 문공부는 즉시 흥덕사지역 일대를 사적지로 지정하고 정밀조사를 실시해 청동 용머리와 청동불발자 뚜껑 등을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뚜껑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발굴지가 흥덕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김 교수는 이외에도 고인쇄와 관련된 논문을 다수 남겼다.

    ▲ 김광식
    김광식 전 관장 - 초대 박물관장, 업무따라 신분도 바꿔
    김광식 초대 고인쇄박물관장(76)도 직지에 관한 한 애정이 깊다. 충북도 문화재계장이던 그는 흥덕사지관리사무소장으로 인연을 맺어 92년 고인쇄박물관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갖게 된 후에는 초대 박물관장이 됐다. 그러던 중 박물관이 충북도 소유에서 청주시 소유로 넘어가게 되자 이 업무를 따라 자신도 청주시공무원으로 신분을 바꾼다. 소유가 넘어간 것은 나기정 전 청주시장이 박물관 운영을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이다.

    김 전 관장은 신분이 충북도에서 청주시 공무원으로 바뀌면 1계급 강등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감행했다. 그 뒤 그는 5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박물관장을 역임했다. “초창기라 할 일이 태산같이 많았음에도 보람 있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공직에서 정년퇴직하면 고인쇄박물관 자원봉사자로 일하겠다는 소원은 이루지 못했으나, 애정이 많은 그는 박물관 기틀을 만드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 신용석
    신용석 전 특파원 - 佛에서 직지존재 첫 보도, 세계 最古알려
    신용석 전 조선일보 파리특파원은 직지의 존재를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인. 현재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대외협력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 72년 5월 28일 ‘고려 금속활자 세계최초 공인’이라는 기사로 특종을 했다. 직지가 프랑스국립도서관 주최 ‘책’ 도서전에 출품된 사실을 보도하고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5년이나 앞섰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다.

    당시 그는 “직지가 처음에는 ‘직지심경’으로 알려졌으나 원명은 ‘직지심체요절’이며 ‘한국서지’에 청주 흥덕사에서 발간된 금속활자본으로 소개돼 있다”고 썼다. 이어 프랑스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장인 셰귀여사로부터 “한국이 구텐베르크보다 75년 가량이나 앞서 금속활자 인쇄술을 창안, 실용화한 것은 세계문화사에서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번 도서전을 계기로 모든 세계의 문헌·교과서·백과사전을 정정토록 통보, 조처할 의무가 있다”는 발언을 이끌어냈다. 프랑스에서 직지의 가치를 인정한 첫 보도였다.

    ▲ 남권희
    남권희 교수 - 특별전, 활자복원 등 주요사업 자문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남권희(56) 교수는 그동안 직지 및 고인쇄문화에 관한 이론적 체계들을 제공해왔다. 한국서지학회장으로 권위자인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으로 학계에서는 인정하고 있다. 단행본 ‘고려시대 기록문화 연구’와 ‘직지와 금속활자의 발자취’를 고인쇄박물관에서 펴낸 바 있다.

    그는 박물관 개관 이후 각종 학술회의에 단골로 참여했고, 개관 10주년기념 ‘조선초기 금속활자 특별전’을 자문했다. 또 2006년부터 해온 조선시대 금속활자 복원사업 책임연구원으로도 활동하면서 고인쇄박물관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박물관에서 유물을 구입할 때도 감정위원으로 자문을 해왔다. 지난 2010년 직지 활자보다 앞선 ‘증도가字’가 발견됐다고 해서 화제의 중심에 선 적이 있으나 이에 대한 진위여부는 가려지지 않았다.

    ▲ 남윤성
    남윤성 국장 - 직지관련 다큐 7편 제작, 직지홍보 앞장
    또 남윤성(54) 청주MBC 편성제작국장은 직지를 대내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동안 직지 관련 다큐멘터리를 7편이나 제작했다. 지난 95년부터 ‘직지’, ‘금속활자, 그 위대한 발명’ 3부작, ‘세상을 바꾼 금속활자, 그 원류를 찾아서’ 2부작, 그리고 2006년 ‘직지의 최초 발견자 콜랭 드 플랑시’까지. 그리고 지난 99년에는 생방송 토론 ‘직지를 찾습니다’를 방송해 직지찾기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어떤 방송인도 하지 않았던 작업이다.

    남 국장은 이후 ‘직지 PD’라는 별명이 붙었다. 프랑스·독일·중국·일본 등을 거쳐 실크로드에 이르는 곳까지 다니며 역사적 사실들을 추적했다. 자료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끈질기게 한가지 주제에 천착한 그는 직지 다큐로 한국방송대상 방송인상 등 화려한 상을 모두 휩쓸었다. 지난 2005년에는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기념 국제학술회의가 열리는 평양에 가서 개성 고려박물관과 고인쇄박물관과의 적극적인 문화교류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직지는 우리나라가 최초의 금속활자발명국이라는 사실을 실물로 증거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주장한다.

    ▲ 임인호
    임인호 씨 - 금속활자장으로 고려·조선시대 활자 복원
    임인호(49) 금속활자장은 조선왕실주조 금속활자와 고려금속활자 복원사업을 마무리했다. 그는 지난해 직지 금속활자본 하권 13장과 목판본 6장 등의 활자를 복원했다. 이는 청주시가 2015년까지 18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직지 상·하권과 목판본 상·하권을 연차적으로 복원하는 사업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지난 2010년에는 조선시대 주요 금속활자 48종을 복원했다. 지난 3년 동안 해온 거대한 작업이었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동국여지승람’등의 대표적인 금속활자본에 쓰인 활자들이 살아나 후손들도 볼 수 있게 된 것. 현재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중요무형문화재 101호인 임인호 금속활자장 밖에 없다. 故 오국진 선생으로부터 금속활자 주조법을 전수받은 그는 지난 2009년 밀랍주조법과 사형(沙型)주조법의 핵심기술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시연하며 자신의 기량을 뽐내 오 선생의 뒤를 이어 금속활자장 기능 보유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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