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대가 돌아온 것에 대한 반발?
가려져 있고 왜곡된 세상에 카타리시스!

▲ 왼쪽부터 정봉주 전 국회의원, 주진우 <시사IN>기자, 김용민 교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방송 녹음에 앞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시사IN> 제공
소위 버라이어티 가카(각하) 헌정 콘서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보수적 정서를 가지고 있는 청주에 침입(?)한다.

오는 12월 2일 금요일 청주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나꼼수 콘서트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나꼼수 충청권 폐인'들은 벌써부터 티켓을 예약할 수 있는 창구가 빨리 오픈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미 다른 도시에서도 나꼼수 콘서트는 연일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나꼼수의 인기가 검증됐다. 무엇이 이리도 이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나꼼수'의 인기는 기성 정치와 보수 언론에 대한 질타이자 조소이며 새로운 언론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보여준다. '제4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죽은 언론'에 대해 갑갑증과 분노를 느끼던 대중은 쾌도난마 같은 정치방송 '나꼼수'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나꼼수'는 대안언론 중에서도 특히 파격적이다. '감옥갈 각오로'진행하는 그들의 언어는 거칠고 무례하다. 그래도 그 안에 담긴 진실을 향한 거침없는 입담에 대중은 왠지 막혔던 언로가 뚫리고 정치적 체증이 가라앉는 듯한 후련함을 느낀다.

보수언론은 '나꼼수'를 통해 나타난 국민들의 함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꼼수가 대한민국 '희망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정치 영역과 언론 영역에 적색 경고등이 켜져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 보여줘야 VS ‘가카’ 존재하는 한 파워 계속

'나꼼수'의 앞길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엇갈린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나꼼수가 장기적 생명력을 가지려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성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반면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열기야 좀 식겠지만 '가카'가 존재하는 한 '나꼼수'의 파워는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은 나꼼수의 인기는 경제를 망가뜨린 이명박 정부를 불신하는 동시에 젊은 세대가 정치적으로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2곳의 방송국 사장. 주요일간지 3개의 언론에서 밝히지 못하는 것을 자세히 전해주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한 여론조사 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 유권자 600만명이 "나꼼수를 한 번 이상 들어봤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30대의 19.5%, 20대의 17.2%, 40대의 15.8%가 "1회 이상 나꼼수 청취 경험이 있다"고 했다.

국민들은 지금 답답하다. 이 세상에 뭔가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데 공적인 장이 그런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여긴다. 방송뉴스의 신뢰도도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추락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자유롭게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때 활성화됐었던 아고라나 블로그의 여론형성 기능이 최근 들어 축소됐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웃음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표현 중의 하나가 '현직 대통령도 코미디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나라'라는 말이다. 그래서 민주화된 이후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대통령 성대모사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요즘엔 이명박 대통령이 코미디 소재가 되는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다.

기성세대와 보수언론들 ‘나꼼수’ 열풍 돌아봐야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노무현은 그냥 노무현이었다. 지금은 이명박을 이명박이라고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다시 대통령 이름을 영어 약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명박이라고 하면 불경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권위주의의 시대가 돌아온 것이다.

대통령에 대해선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회. 사람들은 진실한 '말', 후련한 '말'을 원하고 있다. 기득권 체제의 문제가 공적인 장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자, 풍자가 됐든 인터넷 방송이 됐든 현실에 대한 생생한 고발을 찾는 것이다. 답답증을 뻥 뚫어줄 통쾌한 말을 갈망하는 시대다.

이명박 정부 말기가 되면서 온갖 측근 비리가 터져 나올 것이고, 진실에 대한 요구는 더 커질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의 실체, 흑막 속에서 벌어지는 밀실거래의 실체를 점점 더 알고 싶어 한다.

누군가 입바른 소리를 하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은 상식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풍자가 더욱 대비되어 사람들 마음속에 깊숙이 와 닿는 것일 것이다.

그러한 풍자가 "X발 X됐어요" 등 비속어들과 같이 결합되어 오묘한 시너지효과를 통해 많은 이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2040들의 반란과 '나꼼수'의 폭발적 인기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안철수보다 김어준(나꼼수 총수)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보수적 사고를 가진 기성세대들은 ‘나꼼수’가 불경스럽다고 판다하기보다 왜 그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그것에 열광하는지를 되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을 바라본다면 울타리 밖의 세상에 대해선 이해를 못할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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