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번터티에서 데울라리까지
神들의 땅 히말라야에 가다 ④

▲ 꽃 위에 내려앉은 눈이 너무나 눈부셨다.
새벽에 천둥소리에 잠에서 깬다. 밤새 비가 내리고 있다. 굵은 비는 아니지만 비가 내리는 산의 날씨는 조금은 선선하다. 많이 내리는 비가 아니라서 아침을 먹은 다음 바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다들 첫날밤의 설렘을 뒤로 하고 산길을 나선다. 고도가 조금 높아져서인지 개간한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말 그대로 밀림이 펼쳐진다. 이곳까지는 개간을 하지 못했던지 아니면 아마도 날씨가 곡물을 경작하기에는 알맞지 않은가 보다.

이곳에서부터 많이 보이는 꽃은 마치 한국의 동백꽃과 진달래를 혼합한 듯한 모습의 빨간 꽃이다. 한국의 동백꽃보다 나무의 덩치가 훨씬 크고 잎도 좀 큰 것 같고 꽃의 모양은 진달래를 축소한 것을 수십 송이 묶어 놓은 듯한 모습이다. 또한 꽃송이 위로 내려앉은 눈송이는 이곳만의 진풍경이다.

이슬비의 고요 속에 우리는 길을 걷는다. 누구는 앉아서 참선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걸으면서 참선을 하는 모양이다. 이슬비가 내리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산길을 걸으면서 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기를 소망해 본다. 맑디맑은 이곳의 공기를 온몸에 불어넣으면서 산길을 걸으며 선을 해 본다.

비가 오니 가끔 짐을 나르는 이곳의 짐꾼들과 당나귀 소리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자연의 소리이고 고요처럼 느껴진다. 아니 짐꾼들과 당나귀 소리조차도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누가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진다. 그래서 꼭 비가 온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동행자 2800m에서 고산병 시달리기도

점심때가 조금 넘은 시간에 우리는 점심 목적지인 고레파니라는 지역에 이르렀다. 그런데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였다. 같이 간 일행 중 스님이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카가 속이 메스껍다며 토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2800m 밖에 오르지 않았는데 고산병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급한 대로 고산병약을 먹여 산장에서 쉬게 하고 두 명이서만 푼힐전망대로 다녀오기로 하였다.

푼힐전망대는 원래의 코스와는 약간 다른 길을 약 두 시간에 걸쳐 왕복을 하는 곳으로 우리가 갔을 때는 워낙 구름이 많아서 안나푸르나의 아름다운 산군을 볼 수가 없었다. 간간이 구름사이로 보이는 설산을 감상하며 온산을 붉게 물들인 랄리그라스의 모습을 감상해 본다. 이렇게 비가 내리고 사람이 없는 추운 날씨에 차와 비스킷을 팔고 있는 노파와 그의 딸인가 손녀인가 모를 그분들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냥 내려오기가 차마 섭섭하여 차를 한잔 하고는 내려 왔다.

다녀오니 스님은 조금 괜찮아졌다고 하는데 조카는 그냥 이곳에서 쉬었으면 하는 눈치다. 하지만 우리가 정해 놓은 일정상 이곳에서 지체하면 마냥 일정이 늦어지기 때문에 다음 롯지까지 길을 재촉했다.

▲ 흐린 날의 푼힐전망대. 표지판만이 선명하다.

무모함 마냥 존경할 수만은 없어

가는 길에 멋진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니 다름 아닌 대한민국 아줌마였다. 대나무 지팡이 하나와 일반 조깅화를 신고는 포터도 없이 베이스캠프를 다녀온다는 분이었는데 그분의 말이 걸작이었다. 자기는 올라본 산이 청계산밖에 없는데 그곳보다는 올라가기가 쉽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위대한 대한민국의 아줌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등산할 때 만나면 이야기하는 “정상이 조금밖에 안 남았습니다” 정도로 이해해야 할까? 여하튼 대단한 분이셨던 것 같다.

▲ 푼힐 전망대 입구의 표지판.

▲ 햇살에 비친 랄리그라스의 모습.

그런데 마냥 존경할 수만은 없는 것이 무모함 때문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발생한다. 몇 년 전 안나푸르나 지역 묵티나트 4000m가 넘는 고지에서 찬물로 샤워를 하던 젊디젊은 20대 처자가 그대로 숨을 거두는 모습을 아는 분이 목격하기도 했다.

▲ 윤성희/정치인에서 여행가로 전업한 그는 2004년 이후 17차례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고레파니에서 2시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곳이 데울라리라는 곳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둘째 날 밤을 맞이한다. 특히 이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오랜만에 촛불에 의지하며 잠을 청한 곳이다. 촛불을 켜고 있다가 끄는 순간의 적막을 즐겨본 사람은 그 순간의 느낌을 알 것이다. 그 느낌 그대로 잠을 자는데 이곳의 롯지는 말 그대로 산골의 오두막이다. 산골에 부는 바람소리에 문은 삐거덕거리고 이 높은 산중에도 고양이는 있어서 그 소리들을 자장가 삼아본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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