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상 충청리뷰대표

지난 9월 6일 발족된 ‘혁신과 통합’은 친노 그룹과 시민사회가 주축이 돼 줄기차게 범야권 대통합을 주창해왔다. 특히 정치권 밖에 있던 안철수 대표의 급부상은 이들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시민후보인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은 실질적인 힘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
충북에서도 친노성향 인사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혁신과 통합’에 참여해 오는 15일 지역조직 발대식을 가질 예정이다. 모임을 주도해온 남기헌 충청대 교수,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을 비롯한 준비위원들은 기존 정당에서 벗어나 시민운동에 헌신해 온 인물들이다. 민주적 진보적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시민운동의 기본 가치가 기존 정당정치 틀에서는 구현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안에서도 ‘참여=정치 진출’ ‘정치=선거직 출마’라는 한국적(?) 고정관념 때문에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단체는 객관적 중립지대에서 기성 정치권을 감시견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백번 옳다. 하지만 보수적인 현 정권은 기존 시민사회단체를 반체제·반사회적 집단으로 매도해온 측면이 강하다. 보수 언론은 정파적인 올가미를 씌워 적대그룹으로 설정해 버렸다. 반면 회원 정보도 불분명한 민간 보수단체들을 등장시켜 민-민갈등을 조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정치공학적 구조속에서 시민운동 활동가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의 틀 안에서 ‘매도와 올가미’를 견디며 정세변화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국면전환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민단체 밖으로 나가 부딪칠 것인가.
그동안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커졌지만 실제 시민의 힘이 강화됐다고 보긴 힘들다. 수도권에 비해 중장년의 보수층이 두터운 지방에서는 시민운동의 힘을 발휘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생존에 급급한 서민들은 자기 일상생활과 직접 관련된 등록금이나 쇠고기 문제에 마음을 쓰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모래처럼 흩어지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모래알 시민들을 결집해 풀뿌리를 내리는 것이 바로 시민운동의 몫이다.
따라서 단체의 외형 키우기보다는 시민 소통을 우선하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소통의 기반위에 대안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대안과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시민운동가는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시민참여 예산제, 민관협의체 등을 통해 간접참여해 보지만 ‘들러리’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시민운동가들이 직접적인 사회참여의 길을 희망하게 되는 이유다.
충북에서도 지방선거 때마다 시민운동가들의 지방자치?생활정치 참여 문제가 논의됐었다. 하지만 시민후보가 조직과 돈을 가진 정당 후보들과 정면대결하기는 쉽지 않았다. 때문에 지방선거 참여는 논의수준에서 한발짝도 진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새로운 정치혁신을 바라는 시민세력의 부상과 구체적인 힘을 보여줬다. 지역 정치판에서도 ‘이젠 해볼만 하다’는 희망의 증거로 떠올랐다.
필자는 시민운동가들이 각 단체 차원에서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애초 특정 정당의 정강정책 지지를 공언하고 회원모집한 것이 아니라면 시민단체 본연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시민사회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정치세력화에 동참하는 것은 결코 비난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더 이상 ‘정치판은 진흙탕’이라고 오불관언(吾不關焉)할 때가 아니다. 해방이후 60여년의 4류 정치가 한 단계라도 도약할 가망이 있다면 과감하게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결심이 필요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