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 교수(충북대 국어교육학과)

나는 탄핵과 저항이라는 이 사태를 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분노하고 강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겠지만, 차분히 심정을 가라앉힌 다음 거시적으로 맥락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2004년 3월 12일(금) 국회의원 193명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놀라운 일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보니까 너무나 어마어마한 일이 생긴 셈이어서 탄핵의 주역(主役)들마저 당황하게 되었다. 좋게 보면 민주주의적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대의정치제도에서 국회의원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고 탄핵소추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그럴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존중되어야 한다.

노 대통령의 역사와 현실 인식 방식에도 문제
그러나 다수의 남한 시민들은 놀라고 또 분개하면서, 남한의 의회제도에 대한 심각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을 일으켰다. 정치 정쟁(政爭)의 분란이 국가의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나름대로 자기의 정치적 정체성을 되돌아보면서 정치의 주체로 자기 자신을 갱생시켜 나간다. 그것이 거대한 촛불시위이면서 국민저항운동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다. 이 국민저항운동이 곧바로 대통령지지로 연결되고 또 노무현대통령의 반민중적 정치철학을 은폐시켜 버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노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낳아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 역사나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까지 파묻혀 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다수의 국민이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이 연대하여 의결한 대통령탄핵소추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대립갈등이 생긴다. 즉, 자신들이 위임한 권한을 국회의원들이 행사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자기를 부정하는 셈이다. 여기서 그 다음 문제로 이행하는데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게 되고 또 국회의원을 불신하는 필연적 수순으로 직행한다. 극단적 대립의 국론분열이란 바로 이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정치이론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다윈이 생물진화론을 제기한 후에 이 학설은 사회진화론으로 발전했다. 요점만 말해보면, 산업은 물론이고 사회나 정치 경제 역시 생물진화처럼 순차적으로 발전하거나 성장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회진화론은 근대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토마스 쿤은 순차적 발전이 아니라 근본적인 틀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보자. 과거에는 천동설이 진리였다. 그런데 지동설이 등장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소수의 과학자들은 마침내 천동설을 밀어내고 지동설을 진리로 입증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지동설이 과학적이라고 입증되었는데도 천동설을 주장하던 이론가들! 은 끝까지 자신의 이론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과학이 아니라 감정과 신념으로 전이(轉移)한다. 하지만 이미 지동설은 다수가 지지하는 이론이 되어 버렸다. 당연히 천동설이라는 학설은 구(舊) 학설로 진리에서 퇴장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두 진영이 날카롭게 대립하다가 마침내 지동설이라는 새로운 틀이 정착된다는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탄핵과 저항은 표면적으로는 갈등이고 내면적으로는 정쟁이지만 실제로는 정치환경의 변화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남한 시민들의 인식과 삶의 방법이 달라졌고 그에 맞는 정치나 경제구조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치구조는 여전히 구시대적이다. 당연히 정치구조의 요구가 강력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탄핵과 저항은 남한 시민들의 틀변화에 대한 거대한 요구를 대리하고 있는 셈이다.
간단히 말해서 남한 시민들이 정치가로 하여금 진보적이고 통일지향적이며 시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현상을 좌파와 우파의 대결이라거나 친노와 반노의 대립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본질은 틀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명령이다. 탄핵과 저항은 그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이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정치구조가 해체되고 새로운 정치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진통인 것이다.

감성과 신념 대신 냉철한 머리로 생각해야
보수정치구조의 해체는 우리당이나 노대통령이 보수주의에 착지(着地)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거기에 한나라, 민주, 자민련의 건전한 보수층이 결집할 수도 있다. 한편 보수의 타자(the other)로써 민노당이나 다른 정치세력으로 대변될 진보 진영이 새롭게 부각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탄핵과 저항의 정국이 가져다준 최대의 선물은 노대통령과 그 세력이 진정한 보수주의로 정착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터전에서 진보의 새로운 싹이 커간다. 진정한 진보와 보수의 새 틀이 짜여지는 순간이다.
한편 이 과정이야말로 민족모순과 분단모순이 해체되는 장렬한 광경이기도 하다. 정경유착과 관언밀월 그리고 지역분할구도, 외세종속, 봉건잔재, 분단체제, 붕당정치 등의 구정치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면서 시민민주주의나 사이버적 의사결정구조, 탈식민주의, 세계체제 등의 새로운 틀이 정착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야3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고도의 전술적 덫에 걸렸다고 말한다거나, 대통령의 잘못이 이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호도(糊塗)해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국민들은 새로운 삶의 형식과 정치의 구조를 바라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때문에 탄핵과 저항의 이런 현상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혼란을 잘 극복하면서 국민국가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현상은 남한 정치사의 귀중한 희망일 수 있다. 아니 희망이어야 한다. 그 희망은 진정한 민족, 민중 중심의 삶의 틀을 지향하는 동시에 세계체제에서 인간주의를 지키는 길이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의 새로운 틀이 짜여지는 역사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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