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주 항의하자 “불법건축물, 허가 내주겠다” 회유
타 지역 행정소송 官 패소…복구비용은 결국 혈세

음성군이 농로로 쓰이고 있는 사유지를 땅주인도 모르는 사이 확장, 시멘트 포장까지 해놓고 사과와 조치를 요구하는 땅주인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아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또 민원처리과정에서 음성군은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이후 문제를 삼지 않는 조건으로 건축물이 허가되지 않는 땅에 건축허가를 내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나타나 물의를 빚고 있다.

▲ 사진설명-음성군이 사유지를 점유한 농로에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고 시멘트 포장을 해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종교인(승려)인 A씨는 현재 음성 읍내 한 포교당에서 생활하고 있다. A씨는 2004년 사찰을 건립할 요량으로 음성읍 용산리 4구에 2640㎡의 땅을 매입했다. 하지만 건축비가 부족해 사찰 건립을 미루던 차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포교당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이 발생했고, 거처 마련이 시급해졌다.

A씨는 당장 사찰은 짓지 못하더라도 농가주택이 있는 용산리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마을을 떠난지 4년 만에 자신의 집을 찾아갔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둔 사이 자신의 땅에 있던 건물은 마을사람들의 창고로 이용되고 있었고, 자신의 집 앞에 나있던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돼 있었다.

주민도 모르는 주민숙원사업
문제는 이 도로가 A씨의 사유지라는 점이다. A씨의 토지 330㎡이상이 도로로 사용되고 있었다. A씨는 “땅을 매입했던 시점에도 길로 쓰이고 있어 사찰을 짓기 전까지는 마을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을 묵인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사찰을 짓고 사용해야 할 땅인데 음성군이 토지 소유주에게 한마디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포장을 했다”고 절차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방도나 군도 등 법적 도로를 조성할 때는 사유지의 경우 지자체나 정부가 땅을 매입하지만 농로와 같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도로의 경우 땅을 매입하는 등의 보상 근거가 없다.

최근 귀농이나 다른 여러 목적에 의해 농촌지역의 땅주인이 바뀌면서 농로와 관련된 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곳도 그런 곳 가운데 한곳이지만 다른 사례와 달리 도로를 포장하는 과정과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음성군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음성군은 2008년 2000만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흙길이었던 이곳을 시멘트로 포장했다. 통상 사유지가 포함된 도로를 포장하기 위해서는 토지 소유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토지주 A씨는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

음성군 관계자는 “2007년 용산리 주민들이 주민숙원사업으로 농로 포장을 신청해 사업이 진행됐다”며 “토지주의 사전 동의를 받았는지 여부는 당시 담당자가 자리를 옮겨 확인할 수 없다”고 무책임한 답변을 늘어놨다.

실제 사업을 진행한 음성읍사무소 관계자는 “예전 자료를 살펴봤지만 토지주의 동의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토지주의 주장이나 정황을 보더라도 동의를 구하지는 못한 것 같다”고 사실상 잘못을 인정했다.

음성군 관계자는 이러한 설명을 덧붙이자 “주민숙원사업은 주민들이 합의해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류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소유주가 동의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확인하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민원해결보다 잘못 감추기 급급
주민숙원사업을 진행한 마을 주민들도 A씨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 용산리 이장인 김장식 씨는 “당시에는 다른 사람이 이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A씨가 거주하지 않아서 만나서 물어볼 방법이 없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회의를 거쳤던 것은 아니고 포장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A씨는 “사찰을 짓지는 않았지만 사찰등록도 마쳤고, 114에 사찰이름만 물어봐도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며 동의를 위한 노력조차 없었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시정을 요구했지만 음성군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민원을 해결하기는커녕 잘못을 감추려는데 급급했다.

A씨는 “이의를 제기하고 수일이 지난 어느 날 군 관계자들이 찾아와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A씨에게 “오랫동안 관습도로로 써왔던 땅이기 때문에 재산권을 침해받아도 어쩔 수 없다”며 “더 문제를 삼으면 스님만 바보된다. 대신 건축허가가 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A씨는 땅을 매입할 당시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A씨는 사찰을 지으려고 이 땅을 샀지만 이 토지는 진입로가 없는 맹지다. 건축법상 첫번째 기준이 도로를 확보하는 것이고, 인접한 도로가 없는 맹지인 이 땅은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는 곳이다.

종교인으로 살아온 A씨는 세상물정에 밝지 못했다. A씨는 “땅을 매입할 때 주택도 있었고, 창고 건물도 2개나 있었다. 건물을 못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거처를 옮기기 위해 집을 수리할 생각으로 군에 알아본 결과 기존 주택이 불법건축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A씨는 “건축허가를 받기 위해 군을 찾아갔지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난 후 농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건축허가를 내주겠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음성군 관계자는 “도로는 없지만 현재 농로를 도로로 인정할 경우 도로와 인접했다고 해석할 수 있어 농로가 유지되면 건축허가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A씨가 민원을 제기한 것은 음성군의 태도 때문이었다. A씨는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땅주인에게 한마디 말조차 하지 않은 과정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사과라도 듣고 싶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누구도 사과를 하기는커녕 건축허가가 나지 않으니 딴죽을 건다고 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종교인의 양심을 걸고 두 가지 문제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옥천군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그곳 또한 주민숙원사업이라는 점을 내세워 소유주의 동의 없이 농로를 만들었다. 한 지역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주민숙원사업을 추진하며 민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혼선을 초래한 관련 공무원 3명에 대해 징계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고창에서도 올초 토지소유주의 동의없이 포장공사를 했다가 토지주의 승소로 포장을 다시 걷어냈다. 음성군 관계자도 “굳이 시정을 요구한다면 포장을 거둬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전에 동의만 구했더라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일을 2000만원의 사업비를 들인 도로를 다시 원상복구하기 위해 돈을 들인다는 자체가 혈세낭비라는 점에서 관련 공무원들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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