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모 총영사 (이원배 캐나다 한국문협 회장)
서덕모 총영사가 밴쿠버를 떠난다. 3년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다. 그의 겸손하고 조용한, 그러나 친절하고 합리적인 모습을 이 밴쿠버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참 서운하다.
필자의 기억으로 그를 처음 본 것은 2008년 5월 노인회관에서 열린 어버이날 행사였던 것 같다.
“고향을 떠나 먼 타국에서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열심히 사시면서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하시어 캐나다 주류사회에 진출하도록 뒷바라지해 주신 어르신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또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치 고향마을에서 열리는 효도잔치를 보는 듯 하여 마음이 정겹고 푸근합니다.”
대충 이런 내용의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인사말에는 총영사로서의 의례적이고 공식적인 것이 아닌, 진심이 담긴 듯 했다. 식사시간에도 먼저 앞줄에 서지 않고 어르신들께 양보하다가 중간쯤 줄에 섰다. 부인은 아예 팔을 걷어 부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어르신들께 음식대접을 하는 수고를 했다.
그는 재임 중 시간이 허락된다면 교민들의 대소행사에 많이 참여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총영사란 교민사회의 최고위층(?)으로 얼굴 한 번 보기란 매우 힘든 것으로 여겨졌다. 하기는 교민들이 각자 생활에 바빠 총영사 얼굴을 자주 볼 일도 없었겠지만--- 그래서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꽉 짜인 일정 속에서도 교민들이 함께 하는 행사라면 가능한 참석하여 함께 울고, 웃고, 애도하고, 기념하고, 축하하였다. 흥겨운 장소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시도 낭송하였다. 고지식하며 권위를 내세우며 군림하는 공무원상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열린 마음으로 봉사하는 참 공무원상을 보여주었다.
비단 개인 뿐 아니라 총영사관의 대 교민 행정업무도 많이 바뀐 듯 하였다. 필자의 사적인 소견인지는 모르나 전화질의에 대한 응대도 한결 친절해졌고 민원창구의 업무처리도 신속해진 듯 했다. 이는 아마도 수장인 서 총영사의 소신과 봉사정신에서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서 총영사의 이임 예정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 6월 6.25참전용사 관련 어느 행사장에서였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은 생각에서 외교통상부에 ‘총영사의 근무연장에 대한 교민질의’를 민원으로 넣었다. 개인자격의 질의였지만 교민사회 각계각층의 의견들을 미리 물어본 뒤였다.
모두들 필자와 같은 의견이었다. 어떤 원로는 “이민생활 30여 년에 이런 좋은 사람은 처음이다”라는 표현까지 했다.
그러나 민원이란 어디까지나 “민”간인의 소”원”으로 끝날 뿐. 돌아온 답변은 ‘이미 후임자가 발령이 나 있는 상태에서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개인의 소원으로 정부의 인사정책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바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잘 알면서도 그런 질의를 한 것은 서 총영사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만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목에 힘주지 않고, 대접받으려 하지 않고, 군림하지 않으면서 교민사회의 발전을 기원하고 교민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교민봉사에 앞장서 왔던 그를 앞으로는 볼 수 없다는 서운함에서 였다.
충청도 양반 서덕모 총영사. 이제 몇 주 후면 밴쿠버를 떠나지만 3년간의 어려움은 묻어버리고 좋은 추억만 가슴에 담아 가시기를 빈다. 밴쿠버 교민들도 그를 좀처럼 잊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