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연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대외협력국장

야근을 마치고 힘겹게 몸을 실은 통근버스. 스멀스멀 온몸을 휘감는 피로. 점점 가빠지고, 잦아드는 숨결. 경직되가는 근육. 흐르는 식은땀. 조금만 있으면 도착할 집을 떠올리며 안간힘을 써보지만, 그의 의지보다 먼저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마침내 박동을 멈춘 심장.

죽은 자를 위한 산 자의 책임. 이대로 집에 갈 순 없다. 통근버스를 공장으로 돌려라. 그 날부터 시작된 5일간의 작업거부, 노동조합의 지침이 아닌 분노가 만든 현장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비공인 파업. 그리고 과로사로 인정한 노사합의.

월 90시간의 잔업으로 자신의 생명을 추가 소진해야 했던 故 이덕종 조합원의 과로사 인정투쟁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2007년 11월 23일 금요일 밤. 설렘을 안고 잠자는 여섯 살 남자 아이. 아침해가 밝으면 엄마는 구수한 미역국을 끓이고, 점심엔 온 가족이 맛난 음식에 둘러앉아 생일파티를 열 것이다. 그러나, 새벽녘에 터져버린 꿈. 토요일 새벽 4시. 이불 속에서 미동조합 없는 아빠. 그 곁에 오열하는 엄마. 어리둥절한 아이. 하지만, 이내 깨달아버린 죽음의 의미. 28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노동자 이상엽.

연이은 ‘과로사’. 과로사 대기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 예측 불가능한 대기순번을 찢어버리기 위한 ‘예비과로사 대상자’들. ‘불안정한 생명의 원인’을 찾아 나선 사람들. 그리고 깨달은 사실. 일본은 과로사를 사회학적 용어로 ‘직장사’로 칭한다는 것. 각종 연구소가 발표한 사실에 의하면 ‘야간노동’은 다이옥신보다 훨씬 유해한 2급 발암물질이자, 야간노동은 주간노동보다 13년 이상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사실.

‘심야노동’이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선택과 대안. 오래된 미래이자 선진화된 미래가 그 대안이다. 1993년 독일 폴크스바겐이, 1995년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실시한 ‘심야노동 폐지’. 현실이자 미래인 희망에 탑승한 566명의 유성기업 노동자들. 심야노동의 폐해를 막기 위해 ‘투쟁’을 시작한 한국의 프로메테우스 ‘올빼미’들

죽음의 어둠을 밝혀준 유성기업의 올빼미들은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떠안았다. 직장폐쇄. 공권력 투입. 집회의 자유 박탈. 구속, 수배.. ‘우리는 숨쉬는 것도 불법이라.’라며 자조했을 정도의 지독한 탄압.

그러나, 그들이 일궈낸 성과. ‘심야노동은 없어져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고 먼 가까운 미래 ‘심야노동 폐지’

그들은 아직 ‘올빼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던진 화두는 가까운 미래가 조속히 한국의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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