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2200여개 업소, 5500여명 종사자, 시간당 유동인구 5000여명 부적
과거 전국 3대상권으로 뽑혔지만 매출 줄고 일찍 문 닫는 업소 많아

도시의 현재 모습을 말해주는 곳은 시장이다. 대개 시장하면 전통시장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청주에서는 육거리시장이 좋은 예가 된다. 그 육거리시장에 인접한 성안길이 있다. 전국적으로도 전통시장과 시내가 인접한 곳은 드물다.
성안길은 ‘성 안 쪽 길’을 일컫는 말이었다. 청주읍성은 사라졌지만 이름은 남은 것이다. 과거 본정통이라 부르던 것에서 성안길이라는 새이름을 얻은 것은 1994년. 20대 젊은 층에서는 과거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적다.
성안길의 과거는 화려하다. 전국 3대 상점가로 뽑히기도 했다. 지금도 과거에 비해 매출이 떨어졌지만 아직 1년에 40~50억 이상 매출을 올리는 점포들도 여럿 있다. 명이 있으면 암이 있고 부가 있으면 빈이 있듯 성안길 속 사회도 다르지 않다. 억단위 매출은 고사하고 임대료를 내지 못한 채 6개월도 못가는 점포 또한 허다한 곳이 이곳 성안길이다.
현재 지난 4월 발표된 청주시의 성안길상점가 활성화 연구용역 결과 성안길에는 2196개 업소, 5484명 종사자와 함께 주말 최고 5126명(맥도날드 부근 관찰)의 유동인구가 지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집자>

성안길의 아침은 대체로 다른 곳보다 늦게 시작한다. 대신 끝도 늦다. 일반 직장인의 시계와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보통 가게 문이 열리는 시각은 아침 11시로 가게마다 한시간 정도의 차이가 있다. 10시 전에 가게 문을 여는 점포들도 있지만 드물다. 성안길의 아침은 여느 곳처럼 청소로 시작한다. 가게 문을 연 직원들은 부지런히 창문과 문을 닦는다. 아침 9시. 오가는 일반인들은 적은 시간, 청소에 바쁜 가게들 사이로 생수를 실은 차와 택배 차들이 바삐 오간다. 택배 차들은 가게마다 물건을 배달하기 바쁘다.

주로 옷가게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직원들은 이를 받아 정리를 한다. 그제서야 성안길의 아침이 끝났다. 청소가 끝이 난 뒤 폐지를 주우려 다니는 노인들의 발걸음이 바빠지는 때도 이와 비슷한 오전 11시 무렵이다. 상가사람들은 청소를 마친 뒤 이른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장사준비를 한다.

▲ 아침 08:00 상당구청 소속 미화원인 김만수씨가 이른 아침 성안길을 청소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오후와 밤 사이를 지나며 성안길에는 김만수씨의 표현대로 수많은 쓰레기가 뿌려진다. 사진/육성준기자

AM 8: 00 “가득 뿌려진 쓰레기들…치우고 나면 개운”
                 상당구청 미화원 김만수씨

“아침마다 고생이 많은 분이다”. 김만수씨를 두고 인근 상가주인이 전하는 말이다. 김씨는 청주시 상당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으로 이른 아침 성안길 지하상가 초입부터 CU 플라자 인근까지 청소를 한다. 곧고 긴 성안길을 세구역으로 나눠 미화원들이 청소를 하는데 김씨가 맡은 구간이 가장 쓰레기가 많은 곳이다.

김씨는 “매일 청소를 해도 아침이면 쓰레기가 한 가득”이라며 “사람들이 쓰레기를 말도 못하게 뿌려놓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시간 남짓 걸리는 청소를 마치고 뒤를 돌아보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김씨는 “성격이 유난스러워 작은 쓰레기까지 주워야 마음이 편하다”라며 웃었다.

올해로 근무한지 20년이 넘은 김씨는 정년퇴임을 6개월가량 앞두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쉽다”고 밝혔다. 김씨는 “며칠 전 성안길에 쓰레기통을 설치했더니 쓰레기 양이 더 늘었다”면서 “인근 상가가 생활쓰레기마저 버리고 있어 아쉽다”고 전했다.

김씨는 “시에서 호주로 선진문화체험를 보내줘 갔다 온 적이 있다”면서 “호주의 시드니의 경우 오페라하우스 인근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성숙되지 못한 시민문화가 아쉽다”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아침에 일부 상가에서 조금만 청소가 늦어도 시청에 전화해 ‘왜 청소를 안하느냐’고 민원을 제기할 때면 “섭섭하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AM 10:00 “남들 출근하는 시간이 내게는 퇴근시간”
                구매대행업체 사원 김종호씨

▲ 김종호씨가 옷더미를 부지런히 나르고 있다. 김씨는 아침 7시 30분이 아닌 전날 저녁 7시 30분에 출근해 아침을 맞는다. 사진/육성준 기자

쥬네스 상가의 옷을 중계하는 김종호(28)씨. 김씨에게는 아침 11시 무렵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12시 가량. 남들은 점심을 먹을 시간에 김씨는 잠을 청한다. 잠도 하루 5시간 이하에 불과하다. 이윽고 다시 출근 준비를 한다. 김씨의 출근시각은 7시 30분. 아침 7시 30분이 아닌 오후 7시 30분으로 전날 출근하는 것이다. 출근 한 뒤 김씨는 쥬네스 내 옷을 대주는 상가들을 돌며 수금을 하고 반품할 물건들을 모은다. 또 서울에서 사올 옷을 주문받는다. 이 작업이 끝나면 떠날 준비를 한다.

김씨를 만난 아치 10시 경, 그는 옷더미를 정리하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김씨는 쥬네스에 입점한 상가들과 가경동, 시내 외곽 등 옷가게들을 대신해 서울 동대문에서 옷을 떼다 주는 일을 대행해 주고 있다. 김씨는 수금부터 고객의 주문과 배달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다. 가는 비 사이로 김씨는 굵은 땀과 거친 숨을 몰아 내쉬고 있었다.

김씨는 “과거 apm 상가가 있을 때는 상점주인들이 버스를 대절해 서울에 직접 올라가곤 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됐다”고 전했다. 그 자리를 중계업체가 메우고 있다. 그 중 김씨가 속한 회사는 50여개의 상가에 옷을 중계한다. 곧 정리를 마친 김씨가 배달을 시작했다. 올해로 경력 2년 차인 김씨는 “그래도 여름이 낫다”고 전했다. 겨울이면 옷의 부피와 무게가 커지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갖고 내려온 짐들이 쥬네스 앞 마당을 가득 채운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부족한 잠은 서울로 가는 25인승 버스에서 쪽잠을 자는 것으로 보충한다.

PM 12:00 “매일 일해도 이 나이 일하는 게 즐거움”
                성안길 ‘문지기’ 홍순배씨

▲ 홍순배씨는 정오에 맞춰 성안길의 문을 닫는다. 밤 09:00에는 다시 문을 연다. 홍씨가 하는 일은 제 시간에 맞춰 주차봉을 꽂고 뽑는 것. 홍씨는 오늘도 차량통행을 위한 성안길의 문을 열고 닫는다. 사진/육성준 기자

성안길의 ‘키’를 쥐고 있는 이는 따로 있다. 바로 홍순배(66)씨다. 홍씨를 만난 낮 12시 무렵. 홍씨가 성안길의 차량통행을 막고 있었다. 홍씨는 성안길의 ‘문’을 열고 닫는다. 홍씨는 성안길 내 주차봉을 뽑고 다시 세우는 일을 한다. 밤 9시에는 주차봉을 뽑아 다음 날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하며 다음날 낮 12시에 다시 주차봉을 꽂아 차량 통행을 막는 것이다. 홍씨가 하루 문을 여닫는 곳은 여섯 곳. 택배차와 생수차 모두 홍씨의 영향력 아래 있다.

홍씨가 성안길의 문을 닫는 12시까지 모든 일이 끝이 나야 하기 때문이다. 주차봉의 무게는 15kg정도. 주차봉을 메고 이동하는 홍씨의 어깨에 힘이 실린다. 짧은 거리는 어깨에 봉을 메고 이동하지만 먼 거리는 리어카를 이용한다. 홍씨의 리어카에는 10여개의 주차봉이 실려 있다. 홍씨는 “365일 일을 한다. 매일 일해 힘들어보이지만 근무시간이 길지 않아 힘들지는 않다”고 밝혔다.

오후 2:00 “예전 영화 되찾기 위해서는…”
                 36년 성안길 지킴이 이평주씨

▲ 성안길 청주약국 인근에서 속옷가게를 하는 이평주씨. 이씨는 1975년부터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남문로 1가, 청주약국 인근 속옷가게의 점주인 이평주씨. 이씨는 1975년 처음 장사를 시작한 이래 36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침 9시 반에 문을 열어 밤 9시 30분까지, 12시간 동안 성안길을 지킨다. 이씨는 “과거에는 이곳 청주약국 부근이 성안길의 중심이었다”며 “시대에 따라 상가도 중심도 변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씨는 “과거 성안길에는 양복집과 양장점같은 맞춤옷을 파는 곳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성복을 파는 가게들이 그 자리를 매웠다. 또한 90년 이후 임대료가 비싸지며 직영점이 많아졌고 통신기기 관련 가게들이 늘어났다”고 과거를 돌아봤다.

이씨는 “벌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 원인을 택지개발로 인구가 외곽으로 분산되었고 그에 따라 상권도 함께 나눠진 점을 꼽았다. 청주시내 외곽의 아울렛 매장 또한 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씨는 내년 8월에 개점하는 현대백화점 때문에 근심이 늘었다. 이씨는 “백화점이 문을 열면 2500~3000명 정도의 종업원을 뽑아야 할 텐데 경험 많은 성안길 상가의 직원들이 옮겨갈까 상점 주인들이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또한 상권약화도 불을 보듯 뻔하다고 밝혔다.

이씨는 “과거 이곳에는 모든 관공서가 몰려 있었고 술집도 많아 새벽까지 붐비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상점주인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하고 성안길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볼거리가 가득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 지난 9일 오후 3시의 성안길. 거리에 사람이 가득하다. 지난 4월 청주시는 성안길 상점가 활성화를 위한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를 맡은 시장경제진흥원은 지난 1월 16일(토)와 18일(화), 양일에 걸쳐 1시간씩 3회에 걸쳐 유동인구를 모니터했었다. 당시 목지점으로 살핀 결과는 맥도날드 부근의 유동인구는 9758명(평일 4632명, 주말 5126명)으로 가장 많았다. 시간대 별로는 14~15시 사이가 세곳의 목지점(맥도날드, 커피빈, 롯데리아 부근)을 합쳐 9746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18~19시 사이로 8479명을 기록했다. 사진/육성준 기자

▲ 불꺼진 성안길의 밤. 낮에 비해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줄었다. 사람이 사라진 거리에는 때론 오토바이가 속력을 내며 달리곤 한다. 거리에 청소년들이 정처없이 떠돌기도 한다. 어둠이 찾아온 성안길의 새벽1시. 사람이 없어 가게 문을 닫은 것일까, 가게 문을 닫아 사람이 없는 것일까. 사진/육성준 기자

PM 10:00 불꺼진 성안길, 오토바이만…

▲ 불꺼진 성안길에 홀로 부적이는 한 패스트푸드점. 사진/육성준 기자

대다수 상가의 불이 꺼졌다. 오가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었다. 낮에 부적이던 인파는 다 어디로 갔을까. 다시 홍순배씨가 성안길의 ‘문’을 열었다. 열린 문으로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오토바이와 자전거, 승용차들이 성안길을 오간다. 네온사인과 가로등이 켜진 성안길의 중심길은 그나마 밝지만 그 골목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그런 성안길 가운데 홀로 북적이는 가게가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한 패스트푸드점이다. 주문을 하기 위해 늘어선 줄이 가게 안을 채웠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려 해도 10분은 기다려야 했다. 성안길 맞은 편 영동에 사는 김모씨는 “집 근처라 밤에도 자주 오가는 길이지만 갈 곳이 없다”며 “인근 주성초등학교나 중앙초등학교에 학생들이 줄었듯 성안길도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성안길`육거리시장 100억 지원
상권활성화구역 시범구역 선정

지난 5월 성안길과 육거리시장이 중소기업청이 선정하는 ‘2011년 전통시장 상권활성화구역’으로 선정됐다. 지난 5월 24일 도에 따르면 이번 전통시장 상권활성화구역사업에 신청을 한 전국 18개 사업지를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청(이하 중기청)이 실시한 실사에서 청주 성안길과 육거리시장이 시범구역 중 한 곳으로 선정됐다. 이번 사업에 선정된 곳은 총 7곳으로 서울 마포구 도화동과 용강동 일대, 부산 동구 조방 앞 상권, 강원도 동해시 중앙시장 등이다. 선정된 시범구역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상권의 크기, 특성을 고려해 올 8월부터 3개년에 걸쳐 지원하게 된다.

이번 상권활성화사업은 전통시장과 인근의 상점가를 지원하는 것으로 민간 전문가가 참여해 법인형식의 상권관리기구가 중심이 돼 상인회와 지차체가 함께 상권활성화구역의 관리와 운영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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