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국회의원·기업가 삼위일체…재일사업가 박승국 씨 큰 몫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잘 모른다. 충북은행이 조흥은행에 인수 합병돼 사라진 지금, 당시를 기억하는 지역 경제인들은 지방은행이 존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972년 경력사원으로 충북은행에 입사해 여신관리부장으로 일하던 1998년 퇴사한 김동훈 청주직지신협 이사장(67)의 말이다.
충북은행 설립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지방은행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때다. 1967년 정부의 지방은행설치 정책에 따라 전국 곳곳에 지방은행이 설치됐지만 충북만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 충북의 경제규모는 지금에도 미치지 못했고, 군 지역에는 은행조차 없었다. 제천시에 1곳, 충주시에 2곳의 은행 점포만 있을 정도로 금융시설은 열악했다. 이는 지역자본의 역외유출로 이어졌다.
지방은행을 두고 흔히 지역경제의 핏줄이라고 부른다. 지방은행 설립의 중요성은 지역 경제계는 물론 정관계에서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10개 지방은행 가운데 마지막으로 1971년 충북은행이 설립됐다.
제역할한 청주상공회의소
충북은행 설립 당시 충북은 딱히 지역경제라고 할 것도 없었다. 지방은행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를 책임질 거대 자본이 없었다. 충북은행 설립을 가능하게 한 인물은 충북 출신 재일교포 사업가인 박승국 씨다.
그 무렵 지방은행 설립을 고민하던 정해식 지사와 안동준 국회의원(5·6·7대), 그리고 지역 경제인들이 일본에서 열린 ‘엑스포70’에 참가해 박승국 씨를 만났다. 일본에서 카지노 사업 등으로 큰 재산을 모았던 박 씨도 때마침 “고국을 위해 할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였다. 일본 회동 이후 박 씨는 입국해 정 지사와 육인수 국회의원(육영수 여사 동생)을 만나 설립에 합의했다.
하지만 박 씨의 결심만으로 충북은행이 세워진 것은 아니다. 박 씨의 결심을 받아내고 투자자를 모집하는데 정 지사는 물론 육인수·안동준 의원 등 충북 출신 국회의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또한 충북은행설립추진위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설립이 진행되는 데에는 김우현 청주상공회의소 회장(초정약수·국제산업공사 대표)을 비롯한 지역 경제인사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어 가능했다.
김 회장을 비롯해 청주상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의기투합한 경제인들은 충북출신 경제인사와 출자예상자 명단을 작성해 청주는 물론 서울·충주·제천 등지의 경제인을 방문해 출자권유에 나섰다.
25만주(1주 1000원)를 목표했던 추진위는 발기인 총회 전 이미 21만주를 확약받았고, 무난히 25만주를 달성했다. 박승국 씨는 1억원을 출자해 10만주를 배당받아 대주주가 됐다.
한 경제인사는 “박승국 충북은행 명예회장의 역할도 컸지만 정관계 인사는 물론 지방은행 설립에 뜻을 함께한 지역 경제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선뜻 투자를 결심하고 발기인으로 나선 인물들은 당시 충북을 대표하는 기업가들이었다. 15인의 발기인을 살펴보면 충북은행 설립을 주도한 김우현 당시 청주상의 회장을 비롯해 김종호 한국도자기 대표, 김준철 충북석유 대표(청석학원 이사장), 민철기 신흥제분 대표, 이도영 남한제사 대표, 장인환 삼화물산 대표 등 지역 경제인들과 박용학 대농그룹 회장, 김성곤 국회의원(쌍용양회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도 참여했다.
청주은행과 충북은행을 놓고 은행명을 고민하던 추진위는 발기인 총회를 통해 충북은행으로 이름을 결정하고, 1971년 4월 24일 북문로 1가 본점에서 역사적인 개점식을 열게 된다. 첫 예금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고, 개업 당일 예금 총액은 148만원이었다.

28년만에 사라진 지역금융
결과적으로 충북은행은 1978년 거액의 대출을 해줬던 대봉산업(주)이 도산하면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이후 20년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다 결국 1999년 조흥은행의 인수합병으로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28년의 충북은행이 지역에 남긴 흔적은 적지 않았다.
1991년 발간된 ‘충북은행20년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창립 이후 경제의 고속성장과 함께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으며 특히 서민가계와 멀어져 있는 소형점포 위주로 금융 대중화에 선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충북지역에 중추적인 금융기관으로 지위를 착실히 다졌다”고 자평했다.
20년사에는 또 “자금운용(여신) 면에서 설립이념에 입각해 지방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과 서민가계금융을 위주로 지역금융발전에 힘써왔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지방은행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의무비율을 지킨다는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충북지역산업발전이 곧 충북은행발전임을 인식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동훈 직지신협 이사장은 “지역 대소사에 참여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체육·문화·교육 등 지역에서 일어나는 진행되는 모든 사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