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도 시골마을도 아닌 뒤죽박죽...'문화를 입히자’
“명품 ‘에비앙’이 성공한 이유, 스토리를 마케팅에 활용한 것”

본격적인 관광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용한 시골마을도 아닌 청원군 내수읍 초정리. 목욕탕·식당·공장·모텔 등이 뒤죽박죽 들어서 있는 곳. 식당들도 오리탕·닭 백숙·삼겹살 등으로 특색없는 집들이 즐비하고, 모텔들은 주변 건물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알록달록 총천연색이다. 지역경제는 침체돼 행인들도 별로 없고, 그저 대형 목욕탕 한 곳이 붐빌 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초정리는 전혀 정체성이 없는 동네다. 이보다 한 발 나간 게 초정약수로 목욕을 하고, 몇 군데 샘에서 물을 떠가는 것이다. 아무리 훑어봐도 현재의 초정리는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구석이 전혀 없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동네가 돼버렸다.

하지만 초정리는 초정약수와 세종대왕과 한글이라는 귀한 얘깃거리가 숨어있는 곳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종대왕이 117일간 머물며 안질과 위장병을 치료한 곳 아닌가. 일찍이 세계3대 광천수로 인정을 받은 초정리에 이보다 더 좋은 ‘소프트웨어’는 없건만 ‘있는 것’도 못 써먹고 있다. 원탕 주변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홍보판들이 여기저기 난립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통일성도 없고 가독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초정약수와 세종대왕과 한글이라는 귀한 얘깃거리를 간직한 초정은 지금 잠자고 있다. 초정은 목욕하고 물 마시는 곳 이상의 가치가 있다. 초정에 문화를 입혀야 한다. 사진은 세종대왕의 에피소드를 형상화한 상징탑

이런 점에서 권희돈 청주대 국문과 교수의 지적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본지 4월8일자 신문 게재···스토리텔링을 만나다) 전세계인이 마시는 프랑스의 물 ‘에비앙’이 한 후작의 신장결석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로 산업화에 성공했는데, 초정약수는 세종대왕이라는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왜 살리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충북도가 나서 세종대왕의 에피소드를 유포시키고, 프랑스 에비앙마을을 벤치마킹하라. 명품 물로 작은 마을을 유럽 최고의 휴양지로 바꿔놓은 프랑스를 배워야 한다”며 “道는 (주)일화가 초정에 투자하도록 권유해야 한다. 에비앙 회사는 수익의 대부분을 스포츠대회 유치와 수자원 및 습지보호운동에 쓰고 있다. 그래서 물을 팔아 착한소비를 하는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초정을 명소화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기업·주민들의 노력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들어가야 한다. 충북도·청원군은 SOC사업 투자와 기반시설 조성에 매달려야 하고, 기업은 초정에 깃든 스토리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한편 지역사회를 친환경적이며 아름답게 가꾸는데 적극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은 난개발 방지에 합의하고 초정에 문화를 입히는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충북도와 청원군은 오랫동안 초정을 포기해 왔다.

초정 곳곳에 세워진 초정약수 홍보판.

프랑스와 한국기업의 차이
청원군측은 초정리 땅 대부분이 사유지라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고 지자체에서는 기반시설을 해주는 정도라고 밝혔다. 이종윤 군수는 “내수읍 소도읍 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126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초정문화공원’이 오는 6월 완공된다. 주차장과 연못, 한글공원이 들어서면 관광객과 주민들이 쉴 공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초정을 주거지역에서 관광휴양지역으로 변경하는 계획을 올해 충북도에 신청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간인들이 주체가 돼서 개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정스파텔 건물을 인수한 (주)알앤엘내추럴측이 스파와 노화방지센터를 갖춘 시설을 완공한다면 환경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일화 역시 초정약수를 이용해 사업을 하면서 초정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상당히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에비앙 회사와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초정약수와 세종대왕을 테마로 스토리를 개발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해야 할 쪽은 오히려 기업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홈페이지에 ‘세계3대 광천수인 초정리 광천수로 음료를 생산한다’고 간단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한편 청원군의 한 관계자는 초정의 침체에 대해 “모든 도시마다 목욕시설이 잘 돼 있어 굳이 멀리까지 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수안보나 부곡온천 같은 데를 봐도 쇠퇴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으나 초정은 온천 그 이상의 마을이다. 목욕하고 물 마시는 것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축제’도 일회적인 행사로 그칠 게 아니라 초정의 발전방안, 그 중에서도 초정에 맞는 문화의 옷을 입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하는 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인근의 운보의 집·구녀성·손병희선생 생가 등과 연계한 역사문화관광 또한 적극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인터뷰/ 나기정 전 청주시장
“세종교육문화특구 만들어 초정 활성화 시키자”

나기정 전 청주시장
나기정 전 청주시장은 틈날 때마다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초정리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세종교육문화특구 조성을 제안한다. 나 전 시장은 "청주는 지난 천년동안 인류문화발전에 가장 위대한 기여를 했다고 인정받는 금속활자 발명지로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의 본향이다. 그리고 초정리는 세종대왕이 병고와 싸우면서 세계 최고의 문자인 훈민정음 마지막 작업을 한 곳이다. 한글의 출생지다"라면서 "세종대왕이 한글창제 작업을 위해 행궁을 짓고 안질치료를 한 초정리에 세종교육문화특구를 만들자. 그래서 세종대왕의 애민사상과 훈민정음창제의 민본·민주정신을 본받자"고 주장했다. 활자로 얽힌 청주·청원에 이와 관련된 특구를 조성해 교육문화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찾자는 것이다.

나 전 시장은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어놓고 마지막 검토 때 초정을 다녀갔다. 한글창제에 전심전력 하느라 안질이 더 심해져 조정 신료들의 권유로 거둥했다고 전해진다. 임금의 지방거둥 때는 최소 500명이 수행을 했는데 세종대왕은 병 치료는 공식거둥이 아니므로 1/10로 줄여 50명만 수행하라고 했다 한다. 초정은 국민을 위한 지도자의 참모습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세종대왕이 초정에서 머물던 행궁은 비록 그후 화재로 소실됐지만 행궁이 있었던 이 곳은 주요 국정업무를 수행한 역사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거둥은 임금의 나들이를 말하는 순 우리말이고, 행궁(行宮)은 거둥길에 머물던 별궁을 뜻한다.

나 전 시장이 세종교육문화특구의 내용으로 제안하는 것은 행궁 복원과 세계문자박물관·세종박물관·세종학당 건립, 초정약수를 이용한 냉·온 광천탕 완비, 호텔 및 유스호스텔 건립 등이다. 청주시장 재임시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킨 나 전 시장의 고향은 내수읍 우산리이다. 초정리 옆 동네이다. 이 때문에 초정리 개발에 관심과 애정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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