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명이 마시는 산소를 공급하다니, 그동안 미처 몰랐다
청주시 4만 그루 가로수, 은행나무-느티나무-플라타너스 순

내가 처음 심겨진 것은 약 145년 전이다. 조선 고종 2년 1866년에 ‘도로 양 옆에 나무를 심으라’는 왕명으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로수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특히 12월에서 2월은 우리들에게 ‘고난의 시기’다. 헐벗은 데다 이 기간에 대대적인 전지작업이 이뤄져 애써 키운 가지들이 툭툭 잘려나간다. 내가 놓인 곳은 도청 앞. 그나마 공공기관 앞에 놓인 가로수들은 처지가 나은 편이다. 적어도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가지들을 조금 더 원형대로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 크면 전지 더 많이

전지작업이 시작될 때 전지업체와 상점 주인과는 은밀한 거래가 이뤄진다. 목소리가 큰 점포 주인을 만난 가로수들이 제일 불쌍하다. 전지할 때 더 많이 잘려나가기 때문이다. 전지를 해도 성에 차지 않는 점포주는 밤에 몰래 가지를 쳐내기도 한다. 심지어 소금을 뿌리는 불상사도 일어나지만 사방 1m 박스 안에 갇힌 우리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 청주시청에서 시내방향으로 놓인 가로수는 전지작업을 통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진=육성준 기자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수난사는 끝이 없다. 사람들은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에 플래카드를 걸기위해 못질도 서슴지 않는다. 살갗에 차가운 못이 박혀도 하소연할 때가 없다. 또 지북동에는 인근 논밭에서 불을 놓아 밑둥이 다 타들어 가 겉만 멀쩡하지 골병 든 녀석들이 많다.

30년, 50년 된 나무지만 고사 증세를 앓고 있는 것들도 많다. 좁고 병든 흙에 뿌리박고 자라는 우리들의 생육 여건은 정말로 최악이다.

시에서 전지작업을 하기 전에는 한전에서 했다. 전지는 나무를 위해서가 아닌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한다. 한전은 전선에 닿지 않게 가지를 쳐내는데, 그렇지 않으면 감전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가지뿐만 아니라 몸둥이를 보존하기도 어려웠다. 톱으로 마구 쳐내 목만 겨우 드러내기 일쑤였다.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시와 한전에서 각각 3~4억씩을 지원해 공개 입찰을 통해 전지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현재 청주시에 있는 전지업체만 40~50군데, 1년에 6건 정도 구간별로 대대적인 전지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청주시는 그나마 ‘조형전지’라고 해서 가지의 모양을 살리는 작업이 전국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한다.

분재가 된 가로수

하지만 조형전지를 했다고 하더라고 겨우내 우리들의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도시의 가로수는 이제 ‘나무’가 아니라 ‘분재’다. 화분에 심어 억지로 모양을 만들어가는 분재처럼, 도시의 가로수들은 도로에서 지속적인 가위질을 통해 모양을 잡아나간다.

정작 억울한 것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가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차량 배기가스를 온몸으로 맞서고 있으면서 평균 온도를 2.6~6.8℃ 낮추며 습도 또한 평균 9~23% 높게 한다.

가로수 한그루는 15평형 에어컨 7대를 10시간동안 가동하고 하루 4명이 마실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한다. 차량이 많이 이동하는 곳에서는 소음 방지효과도 내는 우리들은 도심에서 꼭 필요한 존재다.

청주시내에도 가로수가 4만 1484그루가 있다. 시민들은 가로수하면 플라타너스를 떠올리지만 사실 은행나무(7958본)가 제일 많다. 그 다음 느티나무, 버즘나무, 이팝나무 순이다.

요즘에는 이팝나무가 인기가 좋다. 워낙은 남부지역에 서식했지만 기후변화로 중부지방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이팝나무는 꽃도 간간히 피우고 문학작품에도 등장해 호감도가 높다. 게다가 수명까지 긴 편이라 이팝나무의 열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자체 특산품이 가로수로 등장, 마케팅 효과 ‘쏠쏠’
영동의 가로수는 전부 ‘감나무’다. 영동에 감이 특산품이라 70년대 감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린 것이다. 영동의 감나무는 인근 상가 주인들이 관리하며 때에 따라 수확을 하기도 한다.

충추는 20년 전 사과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시에서 날을 정해 수확한 후 사회복지시설에 사과를 기증하고 있다. 보은은 대추나무, 살구나무를 심었고 조치원은 복숭아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실나무가 가로수로서는 부적합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나무가 작아 미관이 수려하지 않고, 시멘트로 뒤덮인 도로에서 맺는 과실이 상품성을 갖기도 어렵다. 다만 시를 상징하는 마케팅 차원에서 지자체 특산품 나무심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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