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 3069m, 나성 8km 달해, 서원경성 추정도
국립청주박물관·도문화재연구원 연구 성과 발표
청주 와우산 유적 학술회의
청주시민들은 숙명처럼 우암산을 바라보며 살지만 그곳에 성(城)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우암산의 배후에 남아있는 석축 상당산성을 봐오면서 ‘성은 돌로 쌓는다’는 학습효과에 세뇌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흙을 다져쌓은 토성은 분명히 존재했다. 가까이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에 정북토성이 있고 서울에는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있다. 상당산성도 초기에는 토성이었던 것을 훗날 석성으로 거듭 보수한 것이다. 한자 단어 성(城)도 뜻을 나타내는 흙 토(土)와 소리를 담당하는 이룰 성(成)이 결합된 형성자다.
역사학자들의 눈에만 보였던 우암산 토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국립청주박물관과 (재)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0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4년에 걸쳐 진행한 학술조사 결과를 2월15일 ‘청주 와우산 학술회의’를 통해서 발표한 것. 박물관에서 열린 이날 학술회의는 와우산의 역사·지리·풍속, 옛터와 삶의 흔적, 청주를 지켜온 와우산성, 와우산이 품은 민속신앙 등 모두 4가지 주제로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또한 연구결과는 국판 320여 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로 집약됐다.
우암산 토성에 대한 연구결과를 결론부터 말하면 내성의 외곽둘레가 약 3069m에 이르고, 내성과 외성의 공유벽 부분을 제외하고 외곽을 따라 잔존하는 성벽의 길이와 유실된 부분을 연장해 보면 청주나성의 외곽은 7~8km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특히 내성의 성곽이 3개에 달한다는 것과 나성을 연결하는 부분을 발견한 것은 큰 성과로 꼽힌다. 성곽 주변에서 발견되는 기와와 토기편으로 미뤄볼 때 백제 상당현의 요충지였으며, 신라가 삼국통일 이후에 쌓은 서원경성 또는 서원술성일 수도 있다는 것이 연구자의 주장이다. 같은 장소에서 발견되는 고려시대의 유물은 산성이 고려초기의 청주성, 나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돌무더기 등 전투흔적 산재

발표를 맡은 노병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학술회의에서 “그냥 등산로처럼 보이겠지만 깎아낼 곳은 깎아내고 쌓을 곳은 흙을 다져가면서 쌓아 인위적으로 성벽을 만든 것이다. 토성이지만 구간에 따라서는 기와나 돌을 밀어 넣어 성을 쌓았다. 또 토성의 내벽 윗부분에는 돌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노 실장은 성벽 안쪽 곳곳에서 투석전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발견된 것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노 실장은 “서쪽 능선 2곳, 동쪽 능선 5곳에서 발견된 돌무더기는 석질이 산의 것과는 전혀 다른 천석(川石)이어서 투석전에 쓰기 위해 노력을 들여 운반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노 실장은 또 “성벽유구로 보아 동쪽 성벽이 서쪽보다 견고하고 혐요한 점으로 미뤄 청주의 동쪽에 위치하면서 동쪽에 대비했음을 느끼게 한다”고 덧붙였다.
노병식 실장은 청주시가 충북과학교육연구원(상당공원 인근)에서 용담·명암·산성동사무소를 연결하는 새 도로를 내기 위해 토성(土城)을 절개하는 개착공법으로 공사를 발주한 것과 관련해 지난해 10월 기자와 함께 우암산을 답사하며 이와 같은 현장을 직접 설명한 바 있다.
내성 안 3개의 성곽 확인

이번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기존의 연구에서도 그 존재가 언급됐던 우암산의 내성이 크게 3개의 성곽으로 이뤄졌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쉽게 말해 성을 집이라고 했을 때 집안에 3개의 방이 있었다는 얘기다. 제일 윗방은 방송사 송신탑을 기준으로 그 위쪽이고 두 번째 방은 그 아래로 현재 복천암이 있는 곳까지, 세 번째 방은 산 아래 문수암이 있는 곳까지다.
두 번째 성과는 내성에서 나성을 연결하는 성벽이 확실치 않았는데 이번 조사로 그 실체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우암산 토성이 외성을 통해 청주시 읍성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도심개발로 연결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노 실장은 “삼일공원 아래 브룩스스튜디오가 있던 민가 쪽으로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찾았는데 이것이 바로 평지에 있던 성과 산성을 연결하는 외성의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 성과는 우암산 토성과 도심의 나성을 연결할 경우 그 연장이 7~8km에 이를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물론 이는 외성의 대부분이 도심개발로 사라졌다는 점에서 문헌 상 기록을 통해 추정한 것이다. 노 실장은 “조선후기 읍성도와 일제강점기의 지도, 문헌 등을 참조할 때 외성이 무심천 남석교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렇게 볼 때 내성의 안쪽 성곽은 빼고 내성과 외성의 둘레만 7~8km에 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학술보고회와 보고서에서는 우암산이라는 지명 대신 와우산(臥牛山)이라는 지명이 사용됐다. 이는 일제강점기 이전 지도와 고문서에는 와우산이라는 지명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성명 국립청주박물관장은 “와우산과 관련한 본격적인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봐야한다. 수습된 유물의 개별 설명과 실측, 탁본 등에 대한 연구결과는 보다 깊은 연구를 거쳐 이후 다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공무원들 역사식견 좀 넓혀라”
한범덕 시장 지시로 학술토론회에 78명 참가

내용은 이렇다. 학술토론회 주최자인 김성명 국립청주박물관장과 장호수 도문화재연구원장이 지난 10일 한범덕 시장을 방문해 자료집을 전달하고 환담하는 과정에서 한 시장이 김선호 문화관광과장에게 공무원 동원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김선호 과장은 “한 시장이 그 자리에서 자료집을 가리키며 ‘정말 귀중한 자료다. 이런 기록화 작업이 필요하다. 공무원들도 식견을 넓혀야한다’며 학술대회에 참가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후 문서로까지 지시가 내려와 78명을 차출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한 시장은 또 와우산 자료집에 대해 “2006년 역시 국립청주박물관이 발간한 ‘무심천사람들’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좋은 자료집”이라며 구매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청주시가 발주한 우암산 토성을 관통하는 개착식 터널공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한 시장이 공무원들에게 ‘우암산 토성의 문화적 가치를 판단해 보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날 토론회에는 김선호 과장 외에도 청주시 도시관리국, 건설교통국 소속 공무원을 비롯해 문화관광과, 상당구청 건설과 공무원들이 방청객으로 참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