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기 맞았지만 초라한 추모제…몇몇 지인들만 참배
주차장 및 편의시설 들어선 땅 경매 나와 관심 쏠리기도

1월 15일 찾은 운보의 집은 여전히 고요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받던 직원은 “지난 여름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이곳에서 촬영할 때는 손님이 꽤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운보가 생전에 기거하고 작업했던 곳은 ‘탁구 엄마집’으로 소개됐고 촬영당시 사진이 액자에 담겨있었다.
붓과 벼루, 물감들이 주인을 떠나보내고 쓸쓸하게 놓여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전기 스위치를 켰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청소를 하던 관리인은 “전기가 나갔다”고 귀띔했다.
또 한 때 운보의 집 후원회장인 황인연 씨가 세운 ‘운보와 정원’ 표지석은 보이지 않았고, 수억대라던 그의 분재들도 날씨가 추워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다.
펜스를 쳐놓았던 한동균 씨의 땅은 지금 오픈돼 있지만 관리를 안 해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최근 이 땅은 또 다시 경매시장에 나왔다.
운보미술관에는 여전히 황인연 씨가 운영하는 제주아트랜드와 ‘운보와 정원’팸플릿이 놓여있었다. 미술관 관리인은 “아직 운보의 집 팸플릿을 만들지 못해 예전 것을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에서도 지난 2년 전 작품이 교체된 이후 단 한차례의 전시회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 2009년부터 운보미술관장을 맡고 있는 홍병학 전 충북대 교수는 “운보선생을 보면 예술을 길고, 인생을 짧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화단의 거목인데 청주미술계가 그 가치를 알아야 한다. 전시회 및 관련행사들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전시일정에 대해서는 “천천히 갈 생각이다”라는 답변만 되풀이 했다. 다만 운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전시회가 해마다 서울에서 열렸는데 올해는 청주 전시도 계획중이라는 것. 아직까지 결정된 사항은 없다. 홍병학 관장은 “김동연 이사가 미술관을 맡아달라고 해서 고사하다가 맡게 됐다”고 말했다.

“충북도가 매입하라” 주장도
모든 문제는 운보의 아들 김완 씨가 (주)운보와 사람들에게 주차장을 비롯한 공방, 아트숍 등을 팔면서 시작된다. 김완 씨는 현재 도미해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운보 관련한 장애인 단체의 명예이사장직마저 모두 내려놓아 운보의 집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 됐다.
(주)운보와 사람들은 결국 부도처리가 됐고, 이 땅은 서울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했던 한동균 씨에게 2005년 18억 1000만원에 낙찰된다. 개인이 매매를 했지만 운보문화재단에 사용권을 허락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옴짝달싹 못하는 땅이다.
그러다가 한동균 씨 마저 부도처리가 되면서 이 땅(2만 5772㎡)이 경매로 넘어갔다. 그리고 지난 10월부터 1월 17일까지 4차례 모두 유찰됐으며 현재 최저가는 13억 2963만원이다. 다음번 경매는 2월 21일 이뤄지며 경매가는 10억 6300만원이다. 경매전문가들은 “금액이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다음번에는 임자가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운보문화재단 현 이사진은 후원회장을 자처하고 있는 황인연 씨가 이 땅은 인수해 재단에 기부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통해 운보문화의 집이 정상화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운보의집 정상화대책위원회는 반기를 든다. 먼저 이사진 구성 자체가 파행적으로 이뤄졌고, 현 재단이 인수하면서 운보의 집의 가치가 훼손됐다는 주장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운보의 땅이 경매시장에 나돌아 다닌 게 말이 되냐. 충북도가 하루빨리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보고 매입해야 한다. 동양의 피카소로 추앙받을 수 있을 운보를 저렇게 방치하고 있는 게 말이 되냐”며 발끈했다.
또한 “외지인들로 구성된 현 이사회가 지금까지 정상화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북도는 2008년 문화부는 지지부진하게 이어온 운보의 집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북도에 관리운영을 타진했으나 운영인수를 거부했다. 결국 2009년 외지인들로 구성된 새 이사진이 꾸려졌고, 지금까지 운영을 맡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