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고발권 폐지· 조합 협상권 도입·선별적 담합 허용돼야”
15일 중소기업 살리기 토론회서 경제 전문가들 한 목소리
지난 15일, 청주예술의 전당 대회의실은 토론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토론자들은 중소기업의 열악한 경영환경에 대해 성토했고,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경제 전문가와 중소 기업인들이 말하는 중소기업 경영악화의 주범은 불공정 하도급이었다. 열심히 일하고도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하니 일을 하면 할수록 빚만 늘어난다는 푸념이 터져 나왔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로 볼 때 대기업과 하도급기업의 거래관행 구조만 개혁되더라도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는 홍재형 국회의원실 주최로 열렸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박사의 발제로 시작된 토론회는 ‘중소기업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큰 주제 속에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인 불공정 하도급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모색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됐다.

위 박사는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만 고발이 가능하도록 돼있는 전속고발권(공정거래법 제71조) 폐지와 하도급법 개정을 통한 3배 손해배상제도 도입, 배상명령제도 도입, 선별적 담합 허용, 조합협상권 도입, 서면조사 의무화와 공개, 권고사항인 표준하도급계약서의 의무화, 서면교부의무 위반업체에 대한 제재 강화, 하도급법 개정을 통한 ‘부품수요지배적사업자’ 신규 지정 또는 공정거래법의 ‘시장지배적사업자’ 지정 제도의 실질적인 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위 박사는 “우리나라 경제가 보다 더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체제가 되려면 모두가 참여하는 경제체제가 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재벌과 대기업으로 이뤄진 시장의 독과점적 구조는 모두가 참여하는 구조의 장애물이다. 전 세계는 자국에 맞는 법제도를 통해 독과점을 억제하고 있다. 앞서 말한 법제도 개선을 통해 우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내재된 불공정한 거래관행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승화 대한전문건설협회 경영지원본부장과 김진일 (주)프로웨트 대표는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는 어음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중소기업의 고민이 결국 자금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이들은 주장은 방청객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정 본부장은 한마디로 제때주고 제값을 치러달라고 호소했다. 정 본부장은 “불공정하도급이 가장 심한 곳이 건설업계”라며 “협회 자체조사결과 어음 발행으로 인한 하도급자 부담금융비용이 지난해 8350억원에 달했다”라고 말했다.
韓·日만 있는 어음 결제 사라져야
정 본부장은 “원도급자는 현금을 받고도 하도급자에게는 현금이 아닌 2~4개월짜리 장기어음으로 지급하면서 어음할인료나 지연이자는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하도급자는 근로자 임금과 자재비 등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어음을 만기까지 가져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제2금융권이나 사채시장에서 15%~30%에 가까운 할인율을 부담하며 현금화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어음 지급의 문제점과 더불어 하도급대금지급보증서 의무 교부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일 (주)프로웨트 대표는 “50인 이하의 사업장에서 대금결제 문제는 회사의 존폐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토론회에 참석하기 전 50인 이하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20여명을 만나 이야기 한 결과 어음 결제가 가장 큰 고통이라고 입을 모았다”며 “언론에서는 결제의 현금 비중이 높아졌다고 말하지만 300인 이상 대기업인 1차 하도급 업체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재하도급, 3차 하도급을 하는 작은 업체들은 현금결제가 전무한 지경”이라고 말했다. 특히 소규모 기업들은 신용거래도 할 수 없고, 이로 인해 금융비용의 손실은 물론 기회비용의 손실도 초래된다. 김 대표는 “현금화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일훈 중소기업중앙회 충북지역본부장은 대·중소기업간 하도급 불공정 거래 현황을 설명했다. 정 본부장은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생산·수익성 격차가 커졌다. 대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며, “최근 1년 사이에 대·중소기업간 영업이익 우위가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역전됐다”고 말했다.
특히 불공정 거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수직적 관계에서 오는 불합리다. 중소기업중앙회 충북본부가 실시한 ‘중소기업의 대기업 등 원사업자와의 납품애로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 48.4%가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요구가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답변했다. 다음으로 일방적 발주 취소, 대금 지연, 어음할인료, 지연이자 미지급 순으로 나타났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대기업의 횡포에도 거래단절 우려로 그냥 참는다는 답변이 55.8%에 이른다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중소기업 관련법 벌칙 조항이 미약한 것이 법은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이유”라며 “‘납품단가(원자재가격) 연동제’와 협동조합에 납품단가 협상권 위임,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홍재형 국회 부의장
지난 국정감사에서 홍재형 국회부의장은 하도급대금 부당감액의 입증책임 전환과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납품단가 조정협의의무제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홍 부의장의 주장은 일부 정부정책으로 반영되며 성과를 거뒀지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 홍 부의장의 생각이다.
지난 15일 중소기업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마련한 홍 부의장은 “중소기업이 활성화되지 않고는 국가 경제가 나아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부의장은 “우리나라 기업의 99.9%가 중소기업이고 전체 고용의 87%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살아야 바닥경기가 살고, 서민들 살림도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홍 부의장은 중소기업의 경영환경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불공정거래를 꼽았다. 그는 “정치권에서도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개선을 도모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토론회를 통해 일선 현장의 목소리와 하도급 거래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보다 심층적인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