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훈 흙살림 감물면지회장

배추 한 포기 1만5000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제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배추값도 웬만큼 떨어졌으나, 아픈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날마다 김치를 먹어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1만원 넘는 가격으로 배추를 사라고 하는 것은 살림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이번에 또 한 번 현 정부의 무능과 농업정책의 문제를 읽었다. 이렇게 되도록 대통령은, 장관은, 정치인들은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문제가 터진 뒤 ‘天災보나 人災’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쓴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이번에도 잦은 비와 한여름의 무더위라는 자연재난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엄연히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는 급하게 중국산 배추를 들여왔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농민들은 이 참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8일 충북 괴산군 감물면 백양리 배추밭에서 이도훈 흙살림 감물면지회장(53)을 만났다. 이 회장은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유기농 방식으로 배추농사를 짓고 있다.
괴산은 최근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줬던 ‘괴산시골절임배추’의 고장이다. 이 곳은 배추값을 올리지 않고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세의 1/5 가격에 주문을 받아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장관도 이 곳을 방문하고 고마움을 표시한 바 있다. 물론 이런 행정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미리 대응하지 못하고 문제는 문제대로 터지게 둔 뒤 모범지역을 방문하는 게 장관의 역할은 아니기 때문이다.
- 배추 한 포기에 1만5000원,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나쁜 날씨로 인해 배추값이 조금 인상될 수는 있지만, 이 가격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봄에는 가을보다 날씨가 더 나빴는데도 이 정도로 폭등하지는 않았다. 중간상인들이 밭떼기로 포기당 800~850원에 사서 그 만큼 올린 것이다. 300평 전체 배추값이 작년에는 100만원이었는데 올해는 200~250만원이었다. 배추는 통상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경매를 붙인 뒤 중간상인에 의해 도매-소매-소비자에게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마진이 붙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4대강 개발로 인해 한강 유역의 여주, 낙동강 유역의 김해 농경지까지 없어져 물량이 더 줄었다.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로 인한 영향도 크다.”
농민들에게는 포기당 800원에 산 배추가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눈덩이처럼 커져 시장에서는 1만5000원에 거래되는 이 유통구조를 대체 누가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 회장에게 “악천후로 인해 생산량이 줄었으면 중간상인들은 오히려 마진을 덜 남기고서라도 배추값을 인상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정말 순진한 질문을 했다. 그러자 “장사꾼들이 이런 ‘호기’를 놓쳐? 그 사람들은 김장철까지 물량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더 많은 이익을 남긴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말도 마라. 오히려 손해다. 농민들은 작년까지 중간상인들에게 포기당 500~600원에 팔았다. 올해 250~300원 더 받은 것인데 원가는 훨씬 더 들어갔다. 올해 대체로 배추농가의 수입이 30~40%는 떨어졌다. 나도 귀농한 사람 두 명과 함께 2만5000평 농사를 짓는데 작년보다 절반가량 줄었다. 날씨 때문이다. 날씨가 원만하고 싸게 파는 게 오히려 이익이다. 올해는 봄에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여름에는 너무 더워 모종한 게 많이 죽었다. 가뭄에는 곡식을 먹어도 장마에는 못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습한 날씨는 농사에 매우 좋지 않다.”
- 농사에는 날씨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왜 정부는 대비를 안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정부는 몰랐을까? 아니다. 관련기관에서는 수시로 작황조사를 한다. 이런 일 하기 위해 앉아있는 관리들이 얼마나 많은데···농민들은 정부가 농업을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는 소고기 시장, EU에는 돼지고기 시장, 중국에는 모든 시장을 다 내주고 우리는 자동차나 수출하겠다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의 주소득원이 쌀, 과일, 축산물인데 FTA를 통해 이 시장을 외국에 다 내준 이상 농업은 희망이 없다.”
배추값 파동에 손놓고 있던 정부는 뒤늦게 당·정·청 ‘배추 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버스가 지나갔어도 한 참 지난 시간에 손들고 있는 정부의 모습이 참으로 우습다.

“그렇다. 소비자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킨다.”
생협과 한살림 같은 단체는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 때 한우로 가치를 한 껏 높인데 이어 이번에는 정상적인 배추가격으로 다시 한 번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계약재배를 통해 채소값이 아무리 폭등해도 일정한 가격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흙사랑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생산물을 도시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한편 생협·한살림 등에도 공급하고 있다. 인터넷 다음 카페 ‘감물 느티나무장터’에서는 김장용 절임배추를 한 박스당 3만원에 예약을 받아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와 동일한 가격이다.
괴산군은 유기농 농가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한살림운동을 해온 조희부 씨와 풀무원 창업자인 원경선 씨가 둥지를 튼 곳이고, 아이쿱생협연대가 대규모 친환경유기식품밸리를 조성중에 있으며 흙살림연구소도 있다. 괴산은 이런 점을 특성화시켜 친환경단지로 자리매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회장은“괴산의 친환경 역사는 25년가량 된다. 귀농인구도 많다”고 동의했다.
- 배추값 파동 같은 문제를 다시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근본적으로는 농업을 살리고 잘못된 유통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생산자-소비자간에 직거래를 많이 하는데, 이 제도가 활성화돼야 한다. 유기농에도 중간상인이 끼어들면 현 유통구조와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 회장은 온통 푸른색인 자신의 배추밭에서 우리 농업의 앞날을 걱정했다. 멀리서는 고르게 보였던 배추포기가 자세히 보자 다소 들쭉날쭉했다. 그는 고라니가 배추를 뜯어먹어 다시 심은 게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악천후와 짐승들의 피해로 농사를 망쳐 다시 모종한 게 많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도 농민들의 힘든 과정을 알 수 있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웃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