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석 행동하는복지연합 사무국장

다시 인도를 찾았다. 늘상 오는 곳이라 이젠 고향집에 온 듯한 느낌이다. 현재 나는 ‘오래된 미래’의 주인공 지역인 인도 라다크의 주도 레 한복판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레시내 중앙 중심부 산 정상에 대피해 있다.

지난밤부터 폭우로 인해 물이 범람해 도시 하류지역이 붕괴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수 없이 목숨을 잃었다. 오늘밤도 역시 고비라며 대피령이 떨어져 산 정상에 있는 곰빠(티벳절) 입구 마당에서 간신히 비를 피하며 하념 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

라다크는 우리들의 가슴에 인도의 티벳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실제 그들의 삶은 티벳인들과 흡사하다. 이곳은 지리적으로도 티벳고원을 중국령의 티벳과 인도와 반분하고 있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통해 한국사회에 알려진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비행기 이외에 인근 도시 마날리나 스리나가르에서 버스로 이틀을 4~5000미터 고산을 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또한 6~9월까지만 개방된다니 그만큼 인간의 발길을 자연은 제안하고 있다. 이곳 라다크어 인사말은 ‘줄레’로 인사와 안부, 감사의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 레 시내의 미로 같은 흙담길들을 지날때마다 ‘줄레’라는 인사는 그들과 친구를 만들어 준다. 처음 쑥쓰러워 작은 목소리로 ‘줄레’하면 그들은 너무도 반가이 ‘줄레, 줄레’로 화답 해주신다.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마니차’라는 티벳불교의 묵주 같은 수행도구로 원을 돌리며 티벳 진언들을 암송하신다. 6년전 방문했을 때 보았던 익숙한 상인할아버진 역시 장사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생계일텐데… 그들은 그렇게 일상을 욕심 없이 서로 나누며 반기며 소박하게 살아간다.

이곳의 사람들은 물론 이곳의 자연환경을 보고 있노라면 “아, 평화롭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런 이곳에 지구인들의 이기적 생활로 인해 이상기온이 발생하고 그들의 삶을 해하고 있다. 이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절절하다. 나의 이기적 삶이 나만이 아닌 지구를 힘들게 하는구나라는 생각들이… 폭우로 집이 매몰되어 수많은 자원봉사들에 의해 실려 나오는 시체를 보았다.

온통 진흙 범벅이다. 미안하다. 슬프다.
인도인들에게 죽음이란 우리들의 죽음과는 사뭇 다르다. 라다크에 오기전 바라나시에 들렸다. 바라나시는 인도인들에게 어머니의 강이다. 강가 한 켠에는 버닝가트라는 화장터가 있다. 24시간 내내 시체가 타오른다. 이젠 어색하지도 않다. 한 구의 시체가 타들어간다. 아마도 키가 크신 분인가 보다. 해골이 보이고 온몸의 살점이 탔지만 하얀 발은 그대로 장작에서 똑 떨어진다. 브라만이 꼬챙이로 잘 타도록 불에 올려준다. 갠지스강을 배로 들러보는 데 하얀 거죽에 쌓인 물체가 우리 배 주위로 다가온다. 시체다. 아마도 급사하거나 장작을 구입할 돈을 마련하지 못한 망자일 것이다.

인도는 신비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문화를 가진 지구인 일뿐이다. 그런데 왜 우린 인도를 신비해하는가. 오로지 필자만의 생각이겠지만… 우리들과 달리 인도인들은 죽음을 늘 ·효�두고 살아간다.

그로 인해 이승에서의 삶의 욕심을 우리보다 덜 갖고 살아가게 되고, 그로 인해 나누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수많은 언어와 문화와 기후, 종교들이라 말할 수 있는 세상 모든 현상의 집합체속에서도 “다양성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동물이 존중 받고 카스트가 낮더라도 사회적 지위에서 배제되지 않고, 교통수단과 재산 취득에 있어 여성이 배려 되는 나라... 우리에겐 아직 미약할 뿐이다.

많은 인도 여행자들의 인생의 답을 얻으려 인도를 방문한다. 인도는 답을 주려하기 보다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복잡 다양한 현상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줄뿐이다. 라다크인들의 평화로운 인사말 ‘줄레’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듯이… 오늘밤은 긴 시간이겠다. 폭우로 더 이상 이들의 삶의 기반이 사라지지 않기만을 빌어본다. 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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