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탓 번호 홍보 우선"
"시의원이 되면 적어도 우리동네에 무슨 무슨 일은 해보겠다고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기호만 강조하고 있으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선거인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부터 본격화된 6·2지방선거 선거운동을 접한 청주시내 한 유권자의 반응이다.
공식 선거운동은 이번 주를 고비로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후보자들의 공약이 실종되고 있다.
대다수의 후보자들이 공약보다 기호(번호) 알리기에 급급하면서 '공약은 없고, 기호만 있는' 선거운동이라는 불명예를 안을 수밖에 없는 선거가 되고 있다.
특히 정당 공천 배제로 기호가 없는 교육감 및 교육의원 후보들이 '몇 번째 칸' 등의 투표용지 위치 알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데 이어 중대선거제인 기초의원 후보들도 자신의 기호 알리기에만 치중, 유권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휴일인 23일 청주 성안길에 나온 김모씨(56)는 한나라당 소속 기초의원(3명 선출 지역)의 명함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소한의 공약이나 슬로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해당 후보자의 명함 뒷면에는 투표용지와 '1-다 한나라당 ○○○'에 기표도장을 찍은 그래픽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김씨는 "최소한 '우리 동네에 뭘 하겠다' 정도는 명함에 들어 있어야 되지 않느냐"며 "일면식도 없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뭘 보고 이 후보자에게 투표하겠느냐. 이는 '그냥 찍으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기호 '1-다' 후보의 선거사무소 외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도 "'일-다'하겠습니다"라는 문구 외 다른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다른 지역의 '1-다' 후보 운동원들은 '1-다'라고만 쓰인 팻말을 들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는 게 목격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보다 정당이 한참 뒤에 있어 번호 프리미엄이 없는 후보들의 이런 현상은 더하다.
이번 선거가 '공약보다 기호 알리기' 위주로 흐르고 있는 것은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가 처음 시행된 2006년 5·31 지방선거 결과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당시 지역에서 한나라당 소속 '1-가' 후보 대부분이 당선된 반면 일부 '1-나'와 '1-다' 후보들이 대거 탈락했다. 이 때문에 '1-나', '1-다' 후보자들은 '우리도 한나라당 후보'라며 기호 알리는 데 필사적인 것이다.
지역 기초의원 후보는 "다른 선거와는 달리 기초의원 선거는 중대선거구제여서 지인이라 할지라도 투표장에서 실수할 수가 있다"며 "공약이나 인물 홍보보다는 기호를 알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털어놨다.
정당별 번호가 없어 '투표용지의 순서 알리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의 경우도 현수막과 명함에 투표용지가 등장했다. "○째 칸에 찍는 날", "투표용지 ○번째"라는 문구도 동원됐다.
공약 없는 기호 선거에 유권자들의 표심은 냉담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