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104명 참가 … 연인원 550명 해외여행
어르신 탐방단, 북경 일대 돌며 역사·문화 유적 관람

여행을 떠나는 이의 마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설레기 마련이다. 그것도 난생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5월 12일 북경 행을 앞둔 백발의 여행객들의 표정에는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이 뒤섞여있었다.

▲ 한건복지재단이 주최한 효 문화탐방이 5월 12일부터 4일간 중국 북경에서 진행됐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104명의 참가자들은 북경의 명소를 돌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천안문 광장 앞.
한건복지재단(이사장 이상훈)이 주최하는 ‘어르신공경 효 해외문화탐방’이 7회째를 맞이했다. 효 문화탐방은 도내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70세 이하의 노인들 가운데 가정형편 등의 이유로 해외여행을 경험하지 못한 지역민들에게 해외여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복지사업이다.

2003년 김경배 한국종합건설 대표(대한건설협회 충북도회장)가 2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한건복지재단은 현재 45억원의 기금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해마다 1·2회씩 효 문화탐방을 실시하고 있다.

민병국 한건복지재단 사무총장은 “지난 6회동안 550명의 어르신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104명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관광을 진행하다보니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들이 많다”며 “모두가 즐겁고 건강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한건복지재단은 참가희망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해 3박4일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참가자를 선발했다. 자원봉사자 10여명이 여행을 돕고, 만약을 대비해 의료진도 동행했다. 숙식은 물론 공연·체험 프로그램 등 일체의 경비는 한건복지재단이 부담했다. 민 총장은 “어르신들은 다른 걱정없이 처음 경험하는 해외여행을 즐기시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대륙의 거대함에 빠져들다
참가자들에게는 비행기에 오르는 것부터가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좌석을 찾느라 분주했지만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막연히 멀 것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의 심장부를 1시간 40분만에 도착하자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곳을 이제야 왔다”며 씁쓸히 웃음짓기도 했다.

북경의 3박4일 일정은 강행군이었다. 북경의 번화가인 ‘왕부정 거리’를 걷고, 산 속에 펼쳐진 드넓은 호수인 ‘용경협’을 둘러봤다. 케이블카를 타고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로 불리는 만리장성에 올라 2000년 전 중국의 숨결을 느끼고, 동시에 100만명이 모일 수 있다는 천안문 광장을 들렀다. 또한 명과 청 왕조의 궁궐인 자금성과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유명한 중국 최대 규모의 정원인 이화원까지 젊은이들도 소화하기 힘든 일정이었지만 지친 기색도 없이 모든 무사히 관광을 마쳤다.

참가자 전옥순 씨(67·청주시 사창동)는 “TV를 통해 봤던 곳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힘들다기보다는 하나라도 더 보고 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최정자 씨(68·청주시 개신동)는 “고단한 삶에 치여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마음 편히 여행을 다녀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없다. 북경에 와서 본 것들은 모두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탐방단은 청주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청주지역 노인들을 대상으로 첫 탐방을 시작한 지 3년만에 도내 모든 시·군을 돌아 다시 청주로 온 것이다. 3박4일의 일정을 마치고 청주공항으로 돌아온 뒤 민 총장은 “효 문화탐방은 한건복지재단을 대표하는 사업이다. 지속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어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효 문화탐방을 통해 해외여행의 기회를 얻으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준비는 하지만 항상 건강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다행히 전원이 무사히 일정을 마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북경에서 열린 칠순잔치
감사의 절, 감사의 술잔에 어르신 16명 '기쁨의 눈물'

3박4일간의 북경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칠순잔치였다. ‘어르신 공경 효 해외문화탐방’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여행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효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이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어르신들에게 자녀들을 대신해서 고마움을 전달하자는 것.

북경의 한 식당에서 열린 칠순잔치에는 올해로 70세를 맞은 16명의 참가자가 주인공이 됐다.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1일 자녀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은 부모님께 감사의 큰 절을 올리고, 술잔을 건넸다. 1일 자녀를 대표해서 김미정 씨가 부모님께 드리는 글을 낭독하자 칠순을 맞은 어르신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칠순을 맞은 16명에게는 한건복지재단이 준비한 칠순 선물도 주어졌다.

나머지 참가자들도 자신의 일처럼 함께 기뻐하며 한바탕 축제의 장이 열렸다. 자원봉사자로 동행한 충북 출신 가수 홍수라 씨가 자신의 대표곡 ‘니나니’ 등을 부르며 흥을 고조시켰다. 심정이 씨(70·청주시 수곡동)는 “칠순잔치를 열어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다”며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 46년만에 떠난 신혼여행
신현수·이정자 씨 부부, 손 맞잡고 만리장성 걷다

옥천군에 살던 스물넷 처녀는 스물여섯 청주 청년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리고 부부의 연을 맺은 지 46년만에야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하게 됐다. 이 시대의 부모님이 대개 그렇듯 온전한 자신의 삶이 없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5남매를 키우다보니 여행을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신현수(72·청주시 수곡동)·이정자(70) 부부에게 이번 여행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이 씨는 “간단히 혼례만 올렸지, 신혼여행을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아이들 키우고 나면 가야지 하던 것이 지금까지 미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금 일찍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음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남편은 몇해전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하고, 아내는 최근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출발하지 며칠 전부터 기대에 차있던 아내를 생각하니 남편은 힘들어도 내색할 수 없었다. 신 씨는 “언제 또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내가 지금을 즐겁게 즐겼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만리장성의 비탈길을 서로 의지하며 두손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믿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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