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전개 따라 발언 수위 조절하는 정치9단 행보
행동 같이하자던 도의원, 탈당·불출마 ‘나 몰라라’

▲ 세종시 원안고수를 천명한 정 지사가 말과는 달리 뚜렷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상황전개에 따라 발언의 수위를 조절해 ‘세종시 보다 선거를 걱정하고 있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세종시 원안고수를 공식입장이라고 밝혀온 정우택 지사가 미묘한 상황전개에 따라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때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중대결심을 내릴 수도 있다’던 정 지사는 현재 ‘세종시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슈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수준으로 물러섰다. 이는 이른바 ‘조찬결의’를 통해 정 지사와 정치적 행동을 같이하겠다던 충북도의회 의원들의 불출마·탈당·정계은퇴 선언이 잇따르는 것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정우택 지사는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을 놓고 실익을 따져보라고 부서에 지시했을 정도로 관망하는 자세였다. 이완구 충남지사가 수정추진에 반발해 사퇴할 때까지도 정 지사는 정치적 소신을 밝히지 않았다. 정 지사가 확실하게 원안고수를 천명하기 시작한 것은 충북도의회 한나라당 소속 의원 20명과 조찬회동을 가진 지난해 12월3일 이후다. 이날 회동에서는 정 지사가 원안을 고수하다 정치적 불이익을 당할 경우 도의원들도 행동을 함께하겠다는 결의가 이뤄졌다.

세종시와 관련한 정 지사의 발언은 1월11일 정운찬 총리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투사형’으로 변모했다. 정 지사는 이날 기자 간담회를 갖고 “세종시 원안 추진이란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정부와 여당에 다시 한 번 원안 추진을 촉구한다”며 “충청권의 민심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계속 밀어붙이면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 지사는 또 “방법과 시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제 세종시 문제는 원안 추진이냐 수정안이냐 둘 중 하나다. 현재 찬반이 갈리는데 충북 민심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2월까지 지켜본 뒤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겠다”며 2월이 결행의 시점임을 내비쳤다.  


MB 충북방문으로 ‘행복한 허니문’

그러나 정 지사의 2월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행복한 허니문’으로 시작됐다. 허니문의 시작은 2월9일 이 대통령의 충북방문에서 시작됐다. 이날 지역 언론이 일제히 ‘선물보따리’라는 단어로 제목을 뽑았을 만큼 대통령이 준 ‘혼수(婚需)’는 정 지사의 말문을 닫아버렸다. 물론 이 대통령도 세종시와 관련해 일언반구 입을 열지 않았다.

정 지사는 대통령이 돌아간 뒤 성과를 정리하는 기자회견에서 세종시와 관련해 ‘대통령의 발언이나 지사의 건의가 없었냐’는 질문에 대해 “대통령이 여기서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다른 곳에서도 세종시 문제를 일체 언급하지 않는 것 같다. 국회통과를 앞둔 상황에서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고 참모의 건의도 있었던 것 같다. 충북의 현안을 약속받는 자리인데 (나도) 언급하지 않는 게 예의가 아니냐. 기회가 될 때 얘기하겠다”며 얼버무렸다.

이후 세종시 문제는 전국적으로도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여야 갈등에다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고조되는 상황이었다. ‘세종시 원안 플러스 알파’를 주장해 온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도가 전국적으로 하락세를 보인다는 보도가 잇따랐던 것도 이 즈음이다.

‘2월까지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겠다’던 정 지사는 그야말로 어떤 판단도 공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3월을 맞았다. 그러나 이후 정 지사의 행보는 ‘심경의 변화’를 미뤄 짐작케 하고 있다.

3월 “세종시 문제 도민 식상해 한다”
변화의 기류가 처음으로 감지된 것은 10일 증평군을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정 지사는 이날 증평군청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해 “너무 일찍 터진 데다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한나라당과 민주당 간) 지루한 싸움이 지속되면서 도민들이 식상해 한다”며 “특히 자신은 원안 고수 입장이기 때문에 세종시가 지사 선거에서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원안고수에 발을 걸쳐놓고 있지만 세종시 문제가 쟁점화 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정 지사는 이어 ‘남부 3군에서 자유선진당이 도지사 후보를, 민주당이 단체장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했다’는 야권 공조설에 대해 “민주당은 남부 3군에서 군수 후보로 내세울 인물이 없기 때문에 야권 공조는 큰 의미가 없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16일을 기점으로 정 지사의 세종시 전략은 4개월 전으로 완전히 회귀했다. 정 지사는 이날 청주시와 청원군을 방문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세종시 원안추진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지만 세종시 때문에 충북도가 피해를 보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자신감을 회복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수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논리에 접근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정 지사는 이날 장충동족발의 원조논쟁을 운운하며 “민주당이 세종시 원안고수 입장을 원조처럼 행동하는 것은 정치적 코미디다. 세종시 원안의 원조는 박근혜 전 대표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등 ‘정치 9단’ 수준의 양다리 전략을 펼쳤다.

문제는 정부가 23일 세종시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함에 따라 다시 이 문제가 쟁점화 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정 지사가 원안고수라는 공식입장에 따른 행보를 확실히 보여주지 않을 경우 정치적 공세를 마냥 피해갈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으면 유권자가 심판”
이두영 충북경실련 사무처장은 “이제는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 정부가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에서 애매모호한 언행으로 소속 정당과 지역의 눈치를 보는 처세는 오래갈 수가 없다. 정 지사가 원안고수를 밝혔다고 하지만 어벌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수정안을 밀어붙이는 이상 유권자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본다”고 경고했다.

이대원 충북도의회 의장의 6.2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필두로 불출마, 정계은퇴 선언 등으로 현역의 3분의 1이 자동물갈이 된 상황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출사표를 던진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 지사의 애매한 행보에 대해 어떤 심경을 느끼고 있을까?

이는 크게 ‘아쉽다’와 ‘우리도 고민 중’으로 나뉜다. A의원은 “정 지사가 원안고수에 뜻을 같이해서 힘을 얻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행보를 보면 내부에서도 ‘이 건 아닌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러다가 총대를 멘 도의원들만 총알받이가 되는 게 아니냐는 불만도 적지 않다. 정 지사야 공천을 받겠지만 일부 강성 의원은 공천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B의원은 “수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어차피 국회로 공이 넘어갔고 ‘친박라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통과가 어려울 것이다. 어떤 쪽으로든 빨리 결론이 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 지사도 상황의 가변성에 대해서는 주시하겠지만 기본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며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국회 처리결과에 따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러한 가운데 정 지사는 22일 이범윤 부의장의 탈당을 앞두고 동반탈당 등을 고민했던 의원들에게 “일단 공천은 신청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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