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토론 “충북 위한 새로운 계획 없다” 결국 부분편집
정운찬 총리 세종시 실언 ‘실수라기보다는 솔직한 고백’
전국을 돌며 말실수를 남발하고 있는 정운찬 총리가 충북에 와서도 주워 담기 어려운 실언을 연발했다. 이 같은 정 총리의 설화(舌禍)는 결국 정치권의 성명 포화(砲火)로 이어져 정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정 총리는 특히 23일 청주지역 방송3사 초청토론회에서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해 ‘충북을 위한 새로운 계획이 없다’고 단언했다가 녹화가 끝난 뒤 부분편집을 고집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정 총리의 말실수는 정운찬 어록을 만들어도 될 정도다. 분야도 다양해 인사청문회에서 유명 모자 회사 회장으로부터 받은 뇌물 1000만원을 “궁핍하게 살지 말라고 준 용돈”이라고 대답한 것은 도덕불감증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731부대와 마루타를 각각 ‘항일독립군과 전쟁포로’로 대답한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를 드러냈다.
고(故) 이용삼 의원의 빈소에서 4선 의원을 초선으로 칭하고, 독신인데 자제분의 안부를 묻고, 고인의 동생을 ‘형님’이라고 부른 것은 정 총리는 물론 보좌를 맡은 총리실의 아마추어리즘을 노출시켰다.
이에 반해 세종시와 관련한 발언은 보다 도발적이고 맹목적이다. 17일 대전지역 여성단체와 가진 간담회에서 “행정부 일부만 온다고 하는 것은 앞으로 거덜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본다” “원안사수대라고 해서 지역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다른 지역과 정당에서 온 사수꾼이더라”라고 발언한 것은 충청권 전체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총리실 녹화 끝나고 부분편집 요구
23일 수정안 발표 이후 처음 충북을 방문한 정 총리는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청주MBC 공개홀에서 녹화가 진행된 충북언론인클럽 초청 토론회(23일 밤 10시45분 방송)에서도 속내를 솔직히 드러내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정 총리는 이날 “도내 일부 자치단체장들은 수정안이 나오기 전에 이미 수정안에 찬성했다. 이유는 수정안에 반드시 충북의 발전을 위한 후속대책이 있을 거라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타 지역의 역차별 반발을 들어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혹시 충북을 위해 준비하는 후속대책이 있는가”라는 MBC 송재경 보도국장의 기대 섞인 질문에 대해 “충북을 위한 새로운 발전계획은 없다. 세종시가 잘되면 오송·오창이 잘될 것이다. 교통망이 세종시를 중심으로 펼쳐져 충북이 덕을 볼 수는 있지만 세종시와 별도로 충북개발계획은 분명히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날 토론은 ‘NG로 인한 중단은 없다’는 원칙에 따라 진행된 까닭에 정 총리의 발언은 녹화가 끝난 뒤 문제가 됐다. 총리실 관계자들이 이 부분을 다시 녹화해서 인서트 편집을 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고 5분에 걸친 실랑이 끝에 결국 부분 재녹화에 들어가는 해프닝을 빚었다.
송재경 국장은 “총리실 관계자가 ‘후속대책이 분명히 있는데 그냥 방송이 되면 오보’라며 부분편집을 강력히 요구해 ‘방송이 나간 뒤에 내용에 오류가 있었다’는 보도자료를 뿌리라고 권고했음에도 막무가내여서 결국 부분편집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송 국장은 또 “토론이 끝난 뒤 정 총리에게 ‘난이도가 어땠냐’고 물으니 ‘긴장했기 때문에 예리한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고 대답하더라”며 “총리도 총리실도 미숙함이 역력했다”고 촌평했다.
KBS 보도국장은 패널 돌연 사의
정 총리는 이날 토론회에서 충북을 달랠 특별한 대안이 없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 외에도 지역의 현안과 관련해 시각차를 노출했다. 청주공항 활성화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화물도, 승객도 수요가 많지 않다. 세종시가 오면 공항 수요도 늘고 기초산업이 일어나 화물 수요도 많아진다”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쳤다. 이에 반해 전투비행장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알아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날 방송은 충북언론인클럽이 정몽준(한나라), 정세균(민주), 이회창(선진) 등 3당 대표를 초청한 토론회를 기획하고 진행 중인 가운데 총리실이 정 총리의 참여를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당초 보도국장단 회의에서는 KBS 스튜디오를 사용하기로 협의했으나 고화질방송(HD)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MBC로 장소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신모 청주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은 이밖에 방송 하루 전에 패널이 바뀌기도 했다. 논의단계에서는 방송3사 보도국장이 패널로 나서기로 했으나 KBS 이재호 국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해 MBC 송재경 국장, CJB 홍순목 국장 외에 국민일보 이종구 사회부장이 긴급 투입된 것.
토론회를 주관한 송재경 국장은 “방송3사의 토론회 형식을 취했지만 콘텐츠는 충북언론인클럽(회장 지용익 중부매일 사장)에서 만들었다. 신문사의 대표, 편집국장들도 질문지 구성에 직접 또는 서면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정치권 정 총리 발언 놓고 설전
정운찬 총리의 발언을 둘러싼 여야의 설전은 지방선거 정국을 겨냥한 듯 정우택 지사에게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민주당 충북도당은 25일 성명을 내고 “정우택 지사는 충북의 발전을 위한 길에 좌고우면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지난 23일 충북언론인클럽이 주최한 TV토론회에 참석한 정운찬 총리는 충북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관련해 ‘현재로서는 시기상조다’라며 충북도가 야심차게 준비하는 '오송 메디컬 그린시티' 조성 사업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이 같이 촉구했다.
민주당 홍재형 (청주 상당)의원은 공격의 범위를 넓혔다. 홍 의원은 25일 “대한민국 총리 입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말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는데 제대로 된 총리인지 묻고 싶다”고 정 총리를 비난한 뒤 “어떻게 충북도민을 대변했던 전직 도의회 의장과 청주시장이 총리의 기쁨조를 자처하고 나서는가”라며 오장세 전 의장과 남상우 시장을 몰아세웠다.
한나라당은 반박성명을 통해 “민주당의 저급 정치가 도를 넘었다"며 맞받아쳤다. 한나라당은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의식해 얼마 전에는 정우택 도지사를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더니 오늘은 이때다 싶어 한나라당의 차기 시장후보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고 반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