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로 고립된 마을, 크리스마스카드 그림처럼 정지된 듯
요즘은 지구온난화 큰 문제, 모두가 환경문제 생각해야 할 때

산골의 겨울은 유난히 춥다. 산으로 둘러쌓인 산골마을은 늦게 해가 뜨고 일찍 해가 지는데 해가 없으면 훨씬 더 춥다. 산골생활의 경험을 쓴 ‘선우야, 바람보러 가자’에서 그런 겨울나기의 어려움을 읽은 한 독자는 울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산골의 매력은 이런 한 겨울에 있음을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된다.

▲ 흰 눈에 덮인 산골마을. 그곳에는 휴식이 있다.
더우기 요즘처럼 눈이 펑펑 내리기라도 하면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곤 하는데 환경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산길에 눈이 쌓여 마을을 오가는 차량이 통제되어 며칠씩 고립되곤 했던 산골 생활의 초기 시절,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미소가 나온다.

폭설로 차량 통제됐던 기억
산골에서 맞은 첫 겨울의 일이다. 남편은 시내에 볼일을 보러나갔다가 눈이 너무 오는 바람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승용차는 물론이고 버스도 들어올 수 없어서 며칠간 마을은 크리스마스카드의 그림처럼 정지된 듯했다. 그 사이에 지붕과 지붕을 받치고 있던 나무 기둥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고 뒷산의 소나무도 몇 그루나 쓰러졌다. 마당의 눈은 계속 쌓여갔다. 몇 번인가 눈을 쓸었지만 계속 쌓이는 눈을 감당할 수가 없어 포기하고 간신히 화장실 가는 길만 낸 것이다. 내심 불안하긴 했지만 해가 나면 자연히 눈도 녹을 것이고 그동안에 실컷 눈을 즐기자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을 눈 속에 파묻혀 지냈는데 드디어 남편이 눈이 무릎까지 쌓인 산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만에 만난 재회의 기쁨도 잠시, 남편은 오자마자 마당의 눈을 삽으로 떠내며 이렇게 되도록 눈을 치우지 않았다고 야단을 했다.

▲ 눈사람, 아들 선우와 함께 한 필자
이렇게 생존한 것만도 대견한 일인데 왜 화를 낼까 의아해하니 남편이 차분히 설명해준다. 우리집 마당처럼 흙으로 되어 있는 마당은 눈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면 땅이 질척거릴뿐 아니라 마당이 내려앉게 되고, 그로 인해 집도 기울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 눈이 쌓이기 전에 바로 바로 쓸어서 치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나도 미안한 마음으로 삽을 들고 하루종일 남편과 함께 눈을 치웠다.

사실 시골 어른들은 참 부지런하다. 어떻게든 눈을 치우지 그대로 쌓이게 하지 않는다. 아무튼 폭설로 인해 차량이 통제된지 닷새가 지나자 마을 이장님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관에서 헬기로 비상식량을 날라올테니 그릇들고 준비하라고. 나는 그런 신기한 경험에 흥분하여 소쿠리를 준비해서 기다렸지만, 제설차가 들어오는 바람에 헬기의 식량공수가 취소되었다고 다시 안내방송이 나왔다.

또 다른 기억은 남편의 오랜 지인인 이 선생님이 서울서 오셨을 때였다. 이 선생님은 하룻밤 묶고 가실 예정으로 오셨지만 눈 때문에 며칠을 더 묵으셔야 했다. 처음엔 무리를 해서라도 차를 운전하여 올라가려고 했지만 눈이 계속 내리고 쌓이자 포기하신 것이다.

날은 춥고 물은 꽁꽁 얼어붙어 세 사람 모두 세수할 생각은 엄두도 못냈고, 식사 메뉴도 점점 간단해져 김치를 쌀과 함께 넣고 지은 김치밥이나 라면 정도로 해결해야했는데 그 맛이 꿀맛이었다. 이 선생님은 조용히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렸다.

▲ 한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연상케 하는 시골풍경.
또 무료해지면 남편과 함께 장작을 패기도 했고, 한 번은 다함께 샘봉산을 오르기도 했다. 간단히 산책이나 하자고 했던 이 선생님과 나는 눈길에 미끌어지고 넘어지면서 이게 무슨 산책이란 말인가 하며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이선생님은 닷새 만에 서울로 올라가셨는데 모처럼 좋은 휴가를 보내셨다고 하셨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 때문에 걱정
그 때의 시간들이 비록 춥고 옹색한 환경이었음에도 내 기억 한 켠에는 왠지 행복하고 포근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도시의 현대인들에겐 그런 오롯한 시간을 가질 기회가 별로 없을 것이다. 시간이 금인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한가롭게 지낸다는 것은 마음으로나 상황으로나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휴식을 한번 경험하게 되면 과연 무엇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관점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겨울이면 한번쯤 그런 시간을 기다리는데 점점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눈으로 인해 며칠씩 고립되던 시간이 하루로 줄더니 지금은 거의 그런 일이 없어졌다. 물론 산길이 포장이 된 후로 눈이 와도 전보다는 잘 녹고 통행이 수월해진 점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한겨울에도 눈이 그렇게 쌓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점점 더 겨울이 따뜻해지고,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 어떤 때는 때 이른 매화봉오리가 맺히기도 한다. 아마도 따뜻한 기온에 봄인줄 알고 착각하고 나왔다가 당황했을 것이다. 산골에서 겨울나기가 아무리 힘들다고 하여도 겨울이 겨울답지 않은 이상기후는 반갑지 않다. 그것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살면 기후에 더 민감해지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산골의 생활이 계절의 리듬과 밀접하기도 하지만 자연의 변화를 늘 곁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에너지를 아끼고 적어도 환경에 누는 끼치지 말자고 노력해왔지만 항상 미약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몇해 째 계속되는 이상기후를 실감하며 좀더 적극적인 대안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느껴왔는데, 이번에 나라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에도 참석하고 ‘글로벌 녹색성장연구소’도 설립한다 하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많은 기대가 된다.

많은 대안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방법도 많이 연구해서 알려주면 좋겠다. 그동안 몇몇 환경단체와 일부 생각있는 개인들이 주도해왔지만 이젠 우리 모두가 책임의식을 갖고 해나가야할 일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줘야할 이 땅,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이 땅이 건강해야 한다. 겨울이 겨울다운 세상을 그리워는 것은 지구가 다시 건강해지기를 기원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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