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배, 강도, 강간 강력범들과의 대면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형사와 감미로운 색소폰은 ‘절대’ 어울릴 수 없다.

충북 제천경찰서 정관헌 수사과장(47.경감)은 그런 선입견을 깼다. 그 역시 일과의 대부분을 강력범들과 보내는 다른 형사들과 다르지 않다.

제천시내의 한 동호인 연습실에서 만난 정 과장은 '터프한' 형사에서 부드러운 색소폰 주자로 변신해 있었다. "아직 어디에 소개될 실력이 못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가 색소폰을 접한 것은 3년 전. 한 방송사 악단에서 퇴직한 뒤 제천에 거주하는 노(老) 색소폰 주자가 정 경감의 스승이다.

천인공노할 인면수심의 범죄자들과 접할 때면 그 역시 인간이기에 형사로서의 평정심을 잃기 십상이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동료들과의 폭음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색소폰의 매력을 알게 되고 그 매력에 푹 빠지면서 정 경감은 화가 날때면 소주병 대신 색소폰을 잡는다. 18번 연주곡인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연주하고 나면 시름과 분노도 어느덧 '낙엽따라' 사라진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장이 투신자살하는 등 요즘 공무원 자살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정 경감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색소폰 형사 정 경감의 외유내강형 수사는 제천지역 범죄 검거율 증가와 범죄 발생률 감소로 이어졌다.

2007년 인구 10만명 당 살인사건 발생 전국 1위의 불명예를 안았던 이 지역은 5대 강력범죄 발생건수가 동반 하락하고 있다. 반면 검거율은 지난해에 비해 올들어 1.6% 증가했다.

자신이 색소폰 주자로 참여하면서 경찰관 밴드 '이글스'를 조직한 정 경감은 2007년 제천시승격 28주년 행사에 팀을 이끌고 나가 무대에 서기도 했다. 경찰관들의 변신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직장 회식자리에서 그의 색소폰 독주는 단골 프로그램이 된지 오래고, 지역 불우이웃돕기행사나 경로잔치 출연섭외도 적지 않다.

정 경감은 "경찰업무는 너무 삭막하고 정서적으로 메마를 수 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늘 슬프다"면서 "애절함과 희노애락이 담긴 색소폰은 늘 큰 위안을 주고 스트레스도 줄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뮤지션으로 변신한 경찰관들은 시민들에게 보다 친근한 경찰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는 것 같다"며 "이글스 동료들과 함께 여건이 허락하는 한 지역주민 행사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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