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만난 후보들 표심 향해 ‘구애공세’
경대수·정범구·정원헌·박기수·김경회 후보 탐구

정치는 다중의 유권자를 향한 구애작전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극단논리만 존재할 뿐이고, 결과적으로도 승자는 단 1명뿐이다. 이미 4강 구도에 안착한 후보도 있지만 누구도 안심할 수는 없다. 일단 경쟁구도에 진입하려는 후보들의 전력질주에서는 투혼이 느껴진다.  4강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군 5명을 9~11일 현장에서 만났다.    

후보탐구1-한나라당 경대수 후보
“지난 선거 패배는 주자선정의 실패”
검사장 출신, 여당프리미엄=지역발전 열쇠論

한나라당 경대수 후보는 18대 총선에도 출사표를 던졌으나 한나라당으로부터 낙점을 받지 못해 본선을 포기해야 했다. ‘2012년에는 기회가 있겠구나’ 싶어서 그의 표현대로 논두렁, 밭두렁을 누비며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찾아왔다.

경 후보는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 지지도가 40%를 넘었고 민주당은 20% 미만이었는데 충북에서는 1곳 빼고 몰살을 당했다. 실패한 이유는 지역발전을 위해 적재적소에서 일할 인재를 공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며 그동안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내왔음을 토로했다.

경 후보는 제주지검 검사장,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 등 23년 경력의 베테랑 검사 출신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때 묻지 않은 신인이다. “괴산고추축제가 끝나는 날 팔리지 않고 쌓여있는 고추더미를 보며 ‘축제를 가장한 슬픔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쓰렸다”는 고백은 예민한 소년의 감성을 느끼게 했다. “국회임기 중간에 사표를 던지더라도, 한 번을 하고 말더라도 정치지도를 바꾸겠다. 바위에 부서지는 계란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겠다”는 항변에서는 정치물이 들지 않은 초년의 치기(?)가 느껴졌다.

괴산 장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달동네에서 고교시절을 보내며 서울대 법대 입학과 사시합격, 검사장 승진까지 꿈 너머 꿈을 이뤄온 경 후보가 한나라당을 택한 이유는 ‘일 열심히 하는 사람, 정직한 사람이 잘 살게 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슬로건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남의 불행을 한풀이하는 정치가 돼서는 안 된다. 계층 간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는 끝내야 한다”는 역설에서 경 후보의 성향과 정치철학이 더욱 뚜렷하게 읽혀졌다.

경 후보는 “집권 이후 충북에서 민주당으로 도배를 해서 얻은 게 무어냐. 지역현안을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국회의원은 고사하고 보좌관 만나기도 어렵다고 하더라. 한나라당 의원이 반만이라도 있었으면 좀 더 빨리, 크게, 폭넓게 지역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선거를 중부4군의 선거로 의미를 축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여당에 힘을 실어줄 것을 호소했다.

후보탐구2- 민주당 정범구 후보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
방송인 출신, 정치인생 마지막 고향서 배수진

민주당 정범구 후보는 설마 했던 김종률 전 의원의 낙마에 따른 깜짝 카드다. 라디오와 TV에서 명성을 날렸던 방송인인데다, 의정활동 경력이 있는 유일한 후보다. 거기에다 알고 보니 음성사람이었다는 것은 공천의 당당한 명분이면서 취약점이기도 하다.

정 후보는 이번 선거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먼저 정 후보는 “의정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김종률 전 의원이 정치보복의 성격이 강한 판결로 낙마했다. 대여투쟁의 선봉에 서다보니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는 김 전 의원뿐만 아니라 지역유권자들에게도 상처를 줬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는 또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지역균형발전정책과 사업이 모두 멈췄다. 세종시와 혁신도시가 왜곡되면서 충청지역이 느끼는 소외감은 대단하다. 이번 선거는 민심을 무시하는 MB에 대한 중간평가와 연결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 후보는 경기도 고양에서 1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구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열조짐에 반발해 17대는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당선 이상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대선정국에서는 창조한국당 창당에 가담했다. 18대 선거를 앞두고 현 민주당에 복당해 서울 중구에 출마했지만 나경원 의원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정 후보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단순한 문국현 지지가 아니라 당시 통합민주당의 분열된 구조에 가담하지 않고 시대흐름을 반영하는 정당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문 후보와 힘을 합치려 했으나 (문 후보가) 대주주의 입장에서 당을 운영하는 등 민주적 리더십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서 ‘실험은 실패했다’는 선언과 함께 복당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알짜배기 지역구를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정 후보는 어떤 고민을 했을까? 정 후보는 이에 대해 “상황이 급박했다. 대법원 판결(24일) 직후 김 전 의원이 전화를 해서 출마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수감 이후에는 면회를 가기도 했다. 당명이었기에 나를 중심으로 고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 후보는 또 “이제는 여기가 정치인생의 마지막이다. 고향발전을 위해 배수진을 치겠다”며 지역구 수성 의지를 분명히 했다.

후보탐구3-자유선진당 정원헌 후보
“진짜 음성사람, 늘 고향을 섬겼다 ”
자수성가형, 충청도 자존심 때문에 정계입문

자유선진당 정원헌 후보는 음성 출신의 후보를 찾던 당 지도부에 의해 전격 발탁된 신인이다. 지역정당을 자처하는 자유선진당은 중부4군 선거에서도 전체 유권자의 40%를 차지하는 음성에서 후보를 찾기 위해 돋보기를 들이댔다.

11일 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동행한 이용희 의원은 “음성이 진천보다 2만2000표나 많다. 어차피 공중전이기 때문에 이회창 총재만 뜨면 해볼 만하다. 모 언론사 편집국장의 추천으로 만났는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음성에서 학교를 다녔고 자수성가한 뒤 지역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한 좋은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정 후보도 “자유선진당은 음성에서 출사표를 던져야만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 같다. 무극초와 무극중을 나왔고 초등학교 총동문회장, 중학교 부회장을 맡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정 후보는 특히 “정치를 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지만 결식아동 돕기, 수재의연금, 장학금 지급 등 고향을 위해 할 일이 없는지 늘 관심을 기울여 왔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정범구 후보와 동향인 정 후보는 음성 표에 대한 강한 집념을 숨기지 않았다. 정 후보는 “유권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고 본다. 그동안 어떻게 해왔느냐가 중요하다. 중부4군을 위해 봉사할 각오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 후보가 고향이외의 지역에서는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에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정 후보는 “충청도가 어렵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안타깝다”며 지역정서에 호소하면서도 자수성가로 재력을 키운 자신의 인생역정에 대해서도 자랑을 숨기지 않았다. 금광에서 일했던 선친 광산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귀금속 유통에서 금맥을 찾았다는 것이다. 정 후보는 현재 한국귀금속보석단체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정 후보는 “찹쌀떡, 아이스케키 등을 팔며 사업의 기반을 마련했고, 학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 결코 좌절하지 않는 추진력이 내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라고 자랑했다.

후보탐구4- 민주노동당 박기수 후보
“쌀값폭락, 농민퇴출 정권 심판의 장”
농민회 활동, 유권자 中 26% 농심으로 승부

민주노동당 박기수 후보는 제2의 강기갑 의원을 자처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대풍임에도 불구하고 쌀값이 폭락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의도적으로 전국 농민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박 후보는 “농업선진화라는 것이 결국 농민들은 농업에서 몰아내고 기업농을 육성하려는 것이다. 10년 전 정미소 기준 쌀값이 80kg에 13만9000원이었는데, 지금은 12만원 대로 떨어졌다. 그 사이 영농자재비나 비료값, 기름값은 2,3배 이상 뛰었다”며 탈출구가 없는 농촌의 현실을 폭로했다.

벼농사의 몰락은 농업전반의 붕괴라는 도미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박 후보의 주장이다. 이미 상당수 농민들이 벼농사를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시설농업으로 전환했는데, 벼농사 상황이 더욱 악화됨에 따라 시설농업의 과잉이 가속화될 경우 그 끝이 멀지않았다는 얘기다.

박 후보는 “농촌사회가 고령화되고 빈농이 늘다보니 떠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경비나 청소부 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골프장이라도 들어오면 땅을 팔아 이참에 농사를 정리해야 하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사실 이 같은 개방농정이 추진된 것은 이미 30여년 전부터다. 1986년 27살의 나이로 대학에 진학해 출세(?)의 길을 모색했던 박 후보는 사회현상에 눈을 떠 미등록 제적된 뒤 다시 농촌으로 돌아와 농민운동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진천군 농민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전농 충북도연맹 부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박 후보는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을 법제화하고 공공 비축미를 추가 확보하는 등 재고미만 줄여도 쌀값을 잡을 수 있다. 정부 의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가 국회로 가는 길은 전체 유권자의 26%인 농민들이 힘을 모아주는 것이다.
박 후보는 “여기에 지역 민주노총 조합원 3000명 등 농민의 자식들이 충북의 강기갑을 만들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당선도 문제가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후보탐구5-무소속 김경회 후보
“공천탈락, 시대착오적 정치공작 결과”
전 진천군수, 반발표 3000표 이상 추가 자신

무소속 출마가 유력시되는 김경회 후보는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다가 김종률 후보에게 3000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김 후보는 이번 공천과정에서도 중부4군 당협위원장이었다.

김 후보는 “당연히 공천을 받을 줄 알았다. 로비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공당이 인맥에 휩쓸리고 말았다. 경대수 후보와 임태희 노동부장관이 동창이고 사무부총장도 동문이다. 공천탈락은 밀실야합과 힘의 논리, 시대착오적 정치공작의 결과”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사실 김 후보가 끝까지 완주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김 후보는 12일 이에 대해 쐐기를 박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내가 곧 사퇴할 것이라는 흑색선전으로 당원과 유권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이처럼 무리수를 두는 것은 민심을 외면한 억지공천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라며 완주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김 후보는 11일 취재과정에서도 “탈당 직후 ‘살아서 돌아오겠다’며 한나라당에 대한 미련을 보였지만 그건 홧김에 한 얘기였다. 지방을 알며 애착을 갖고 뿌리를 내린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 희생이 되더라도 고쳐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후보는 불과 7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로 유턴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완강히 부인했다. 김 후보는 “한나라당에서 지방선거 공천보장을 제안했다. 그러나 단체장(군수)은 이제 후배 몫이다. 내년 주자들은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며 항간의 소문에 대해 일축했다.

그렇다면 김 후보의 필승전략은 있는 것일까? 김 후보는 “지금까지 국회의원 5분을 모셨다. 이제야 지역에 내려온 후보들이 언제 지역을 파악해서 활력을 불어넣겠냐. 아직도 한국정치가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한 건 개탄할 일이다. 근거 없이 공천을 한 것은 시골사람 정서에 맞지 않는다. 3000여표 이상이 추가로 결집될 것”이라며 진천의 동정여론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는 한나라당을 업지 않았을 경우 진천 이외 지역에 줄어드는 조직표는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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