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군 단위 초등학교, 보충수업으로 방학실종
부진학생·특기적성 변질…8교시, 5주 간 등교도

▲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로 인한 여파가 초등학교까지 내려와 군 단위 학교에선 여름방학이 사라졌다. 사진은 전국 평가에 앞서 자체 평가를 3차례나 실시하는 옥천교육청이 일선 학교에 보낸 공문. 방학 중인 8월12일에는 관내 초등학교 6학년 전원이 등교해 중간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다.
집중해부, 초등 방학보충수업 논란
도내 초등학교에서 여름방학이 실종됐다. 방학의 한자 뜻풀이는 놓을 방(放)에 배울 학(學)으로, ‘잠시 학문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지만 도내 군 단위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시 단위 초등학교에서 6학년, 또는 전 학년을 대상으로 보충심화학습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충북도교육청이 ‘학력신장’을 명분으로 교감연찬회, 수시장학(장학사의 학교방문) 등을 통해 학교단위의 수업진행을 독려한데 따른 것이다.

군 단위 초등학교에서 더욱 강력한 보충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이른바 ‘실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보충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수업시수에 따라 지도수당을 지급해야 하고, 오후수업을 위해서 급식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따른 예산이 읍면 단위 학교에 더 많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돈이 전체학생의 보충심화학습을 위한 예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력 부진아를 보충지도하기 위한 예산과, 상대적으로 보육환경이 열악한 농촌지역 초등학생을 위한 보육명분의 예산이 학력신장이라는 미명아래 보충심화학습 예산으로 사실상 전용되고 있는 것이다.

부진아를 특별지도하라는 예산이 전체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보충심화학습 예산으로 사용될 경우 학력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성장이 더딘 나무에 뿌려주라고 내려 보낸 거름을 밭 전체에 뿌렸을 때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전교조 등 교원단체와 일부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다.

옥천에 있는 K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대입 수험생활’을 미리 체험하고 있다. 이 학교가 편성한 ‘특별보충과정 시간표’에 따르면 7월20일부터 8월27일까지 방학 전 과정을 기본학습과정, 보충심화과정, 종합정리과정으로 나눠 대부분 8교시까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과정의 사이에 3일씩 휴업이 있을 뿐이다.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과목이고 오전 9시에 시작해 4시10분에 수업이 마무리된다. 총 수업시수는 192시간에 이른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이처럼 ‘가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는 옥천교육청이 일선학교에 내려 보낸 ‘2009년도 초6 학업성취도평가대비 자체평가 계획’이라는 공문을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옥천교육청은 10월13~14일 실시되는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에 대비해 이미 7월13일 자체평가를 실시했고, 방학기간인 8월12일에도 관내 초등학교 6학년 전원을 등교시켜 국, 영, 수, 사, 과 5과목에 대한 중간평가를 실시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옥천교육청은 9월3일에도 자체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다.

전교조 충북지부 김명희 수석부지부장은 “K초와 W초의 경우 지난 7월13일 옥천교육청이 실시한 자체평가에서 성적이 저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추가수업을 요구하는 수시장학지도가 이뤄졌고, 다른 학교에 비해 무리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학교 P교감은 취재가 부담스러운 듯 “다른 학교도 다 똑같다. 어차피 담임과 학생, 학부모들의 뜻을 모아 진행하는 것이다. 솔직히 찔끔찔끔하느니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가 높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P교감에 따르면 K초의 6학년은 약 70명인데, 학생들의 자율 선택에 맡긴 결과 90% 이상이 등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름방학기간 중에 8교시 수업을 진행하려면 당연히 점심식사를 학교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P교감은 이에 대해 “급식은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간단히 먹을 만한 것을 주고, 평소에 급식원으로 활동하던 분들이 방학기간 중에는 무료로 봉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8교시 수업에 개학 당긴 곳도
앞서 언급했듯이 방학 중 보충수업은 주로 군 단위 학교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청주시내 초등학교의 경우 아예 진행하지 않거나 짧게는 2,3일 정도로, 도와 시교육청의 등쌀에 못 이겨서 시늉만 내는 학교가 많다.   

그러나 청주지역에서도 방학 내내 토요일까지 등교계획을 잡아놓은 J초를 비롯해 K초와 W초(2주), B초와 또 다른 W초, Y초(10일) 등 10일 이상 등교를 시키는 곳도 6,7개 학교에 이르는 등 일부 학교에서는 교장의 소신(?)이 두드러졌다. 또 1,2주 정도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는 대부분 개학 직전에 수업을 진행키로 해 사실상 방학이 줄어든 것이나 다름이 없다. 청주 N초, W초 등은 아예 개학 시점을 사흘 정도 앞당기기도 했다.

충주도 보충수업을 하지 않는 5개 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교가 10일 안팎에서 일정을 통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충주의 8개 학교는 현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제천은 대부분 학교가 2주 정도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학력증진 예산이나 같은 명목으로 전용(轉用)이 가능한 예산이 비교적 풍부한 군 지역은 기본이 2주이고 4,5주에 걸쳐 보충수업을 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청원, 단양 등은 대부분 학교가 2주에 걸쳐 수업을 진행하고, 옥천은 4주, 괴산·증평은 3~5주 동안 수업이 이뤄지는 학교가 많다는 것이 전교조 충북지부의 조사결과다. 이처럼 시군교육청 별로 산하 학교의 방학 중 보충수업 시수가 대체적으로 통일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시군교육청의 입김이 작용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시군교육청이 윤곽을 잡아주고 학교형편에 따라 현실적으로 수업계획을 잡고 있는 것이다. 괴산 Y초 관계자는 “6학년의 경우 5주 동안 보충수업을 실시하고 저학년의 경우 가정에서 보육이 어려운 아이들을 대상으로 보육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7월에는 오후 3시까지 수업을 진행했고, 8월에는 4교시 수업만 운영할 계획이다.

Y초가 8월부터 오전수업만 하는 것은 급식에 드는 예산 때문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학교발전기금에서 한 끼에 1500원인 정도인 급식비를 7월에만 기원하기로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공부의 본질은 ‘답 찾는 요령 배우기’
문제는 초등학교의 방학보충수업이 사실상 ‘답 찾는 요령 배우기’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는 6월30일 청주교육청의 교감단 연찬회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시험 보는 방법 익히기’라는 항목 아래 ‘지문에서 답을 찾는 요령, 도표 해석 요령, OMR카드 작성 요령을 익히라’고 지시하고 있다. 전교조에 따르면 이 연찬회에서는 학력제고와 관련해 ‘선서식’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교조는 또 도교육청의 모 장학사가 일선학교 교장, 교감에게 보낸 이메일을 공개했다. 이 이메일에 따르면 ‘7~9월의 전략이 중요하고, 앞으로 학업성취도평가 예상문제, 5개 과목 핵심개념 추출자료, 기초학력 선도학교 개발자료, 교육과학연구원 개발자료 등을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방학 중에 교사연수가 집중돼 있는 여건에 비춰볼 때 보충수업은 근무가 가능한 교사 한 두 명이 출근해 문제를 풀도록 지시하고 답을 맞춰보는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옥천 K초, 청주 J초의 시간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K초의 경우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4과목을 교사 서너 명이 붙박이로 담당하고 있으며 8월10~14일까지 나흘 동안은 교장과 교감이 수업을 담당할 정도다.

그러나 충북도교육청의 주장은 이와 달랐다. 도교육청 윤병준 초등교육과장은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 국어 문제지를 보여주며 “학교에서 교사들이 내는 문제로 100번 시험을 보면 뭐하냐. 교사들이 출제하는 시험은 단순지식을 암기해 답을 고르는 수준이다. 이 문제지는 지문의 분량의 어마어마해 A4용지로 10쪽에 이르는 수능수준이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찍기도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도록 공부를 시켜야 진짜 실력이 느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과장은 또 “교사들이 편한 것만 좋아한다. 부진아가 몇 명이 나와도 관심없다”며 전교조의 반발을 교사들의 ‘게으른 탓’으로 돌렸다.

학부모들 “공부시킨다는데…”
어찌 됐든 학교가 방학에도 아이들을 붙잡고 공부를 시키는 것에 대해서 학부모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초등생의 경우 보육의 문제에 직면하는 사례가 많고, 이는 결국 사교육비의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학부모회 등을 열어 적극적으로 설득에 나선 것도 한몫을 했다. ‘학교에서 방학에도 공부를 더 시킨다고 발 벗고 나선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라는 얘기다.

충북도교육청 초등교육과 이상희 장학사는 “사실 농촌지역에서 방학아카데미(특기적성교육)나 보충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농촌의 현실을 고려할 때 돌봄(보육)기능도 있다. 학교에서 이런 역할을 하지 않으면 결국 사설기관으로 갈 수밖에 없다. 초등 보충수업문제가 논란이 되다보니 학부모들로부터 간혹 항의성 전화를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학원이 공익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냐’고 반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초등학생부터 획일적인 입시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비교육적일뿐더러 가혹행위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청주시 상당구에 사는 학부모 박세희(가명·42)씨는 “개성을 말살하고 얕은 지식만 평가하는 학교교육 때문에 사교육시장이 기형화된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학교마저 학원을 따라가서야 되겠냐”며 반론을 제기했다.

흥덕구에 사는 김혜정(가명·44)씨도 “솔직히 우리 아이의 성적이 중하위권인데, 부진아를 지도하라는 예산이라면 쓸데에 제대로 써서 학력격차를 해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대로라면 우리 아이는 학원을 더 다녀야만 다른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다른 각도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교육감 정치적 행위에 아이들 희생”
남성수 전교조 충북지부장의 ‘선거용 치적쌓기론’

1등은 어렵게 수성을 해야 본전이지만 꼴찌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남성수 전교조 충북지부장은 이기용 충북도교육감이 지난 2월, 지난해 실시한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 결과와 관련해 ‘도내 학생들의 학력이 전국 최하위로 드러났다’며 ‘희망을 줘야할 충북교육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은 교육감인 내 탓으로 도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공식 사과한 것은 진정성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니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남성수 지부장은 “정부와 도교육청은 물론 군에서까지 예산을 줘서 성적 올리기 몰입교육에 역점을 두는 것은 내년 선거를 염두에 둔 교육감의 정치적 행위다. 이런 ‘치적 쌓기’에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다”며 독설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 지부장은 또 “승진에 목매는 교육 관료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며 싸잡아 비난했다.

남 지부장은 다만 방학 중에 학교가 꼭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부진아와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교육적 견지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 지부장은 “이런 뜻을 교육감에게 전달했음에도 ‘내가 책임지겠다. 다 공부시켜서 성적을 올리면 좋은 게 아니냐’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며 “방학기간에는 학교에서 공사도 많이 이뤄지고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조기방학 얘기까지 나왔던 마당에 초등 보충수업은 아동학대다. 솔직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초등 기초 흔들리면 좋은 대학 못 가”
윤병준 충북도교육청 초등교육과장의 ‘학교책임론’

초등학교 보충수업과 관련해 언론의 공세에 직면한 윤병준 충북도교육청 초등교육과장은 비장함을 감추지 않았다. 윤 과장은 “열심히 잘 가르치겠다는데 이를 하지 말라는 것은 교육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냐.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학력신장과 관련한 윤 과장의 입장은 확고했다. 특히 전반적인 학력제고에 앞서 지역인재를 양성해야한다는데 뚜렷한 소신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윤 과장은 “제2의 반기문이 나와야 한다. ‘하지마라’는 여론 때문에 우리가 손을 놓고 있으면 인재들이 대도시로 나갈 것이다. 그러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자꾸 교란시키는데 지역에서 인재를 키우자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과장은 특히 “초등학교 때 기초가 미달되면 절대로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 광주에서는 언론까지도 학력신장 문제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 않기로 했다더라. 우리도 대승적 관점에서 언론이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윤 과장의 주장은 학교책임론으로 이어졌다. 점수를 못 올리면 문을 닫아야하는 학원이 학력신장을 책임지는 것보다는 학교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윤 과장은 “학력은 전국경쟁이다. 도시보다는 농촌이 문제다.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학기 중에 불가능하다. 방학 때 해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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